[연재]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 5화 -
[연재]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 5화 -
  • 대학저널
  • 승인 2019.08.22 20: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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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 지리산에 오른 슬픈 중년

서울 지하철 신사역 6번 출구에서 150미터가량 거리에 있는 편의점 앞.
봄밤의 시원한 바람 속에 큰 덩치의 관광버스 한 대가 정차해 있고, 주변에는 등산배낭을 둘러메고 모자를 눌러쓴 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거나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다.

 버스 앞유리창에는 ‘○○산악회’라는 엘이디(LED) 글자가 반짝거리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기를 반복했고, 유리창 아래쪽엔 ‘지리산’이라 적힌 팻말이 꽂혀 있었다. 
 
 시간은 밤 11시를 향하고 있었으므로, 도로의 차들도 잦아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뜸해 한산했다. 오직 편의점 유리창에서 흘러나오는 환한 불빛 앞 인도, 그리고 자정을 타넘어 달릴 채비를 한 버스 주변만이 야밤이 아닌 듯했다.
 “자 이제 3분 후에 출발합니다. 모두 탑승하세요”
 산 대장으로 보이는 날렵한 몸매의 남성이 버스 탑승구에서 큰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자, 산객들은 하나둘씩 익숙한 몸놀림으로 버스 옆구리 짐칸에 배낭을 넣고는 사뿐사뿐 차에 올랐다.

  지리산행 버스 탑승객은 대부분 초로(初老)였는데, 간혹 일흔을 넘긴 듯 보이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과 물 두 병을 사고 차에 오른 황상무는 중간 지점의 창가에 지정된 자신의 자리에 털썩 앉았다. 

  황상무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H전자에서 27년간 줄곧 인사부서에서 근무하고 상무 직책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온 후, 지방의 공공 연구기관에서 2년 계약직으로 센터장 역할을 맡아 근무했다. 4월부터는 퇴직자의 신분으로 살고 있다.

 부장 시절이던 50대 초반부터 지인의 소개로 인터넷 산악회 카페에 가입해 가끔씩 소백산, 덕유산, 속리산 등 유명한 국립공원뿐 아니라 경기도 북부 지역의 용문산, 천마산 등 많은 산을 오른 경험이 있는 그에게 산은 안식처이자 휴양지였다. 잦은 야근과 회식, 거래처 접대 등으로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한 즈음부터, 산행은 건강 챙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올봄 30여 년 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황상무가 꿈꾼 계획은 원 없이 산에 다니며 지친 심신의 피로를 푸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 지리산을 찾은 건 지난해 9월. 직장생활의 종착역을 반 년가량 앞두고 있을 때였다. 황상무는 갑자기 지리산을 떠올렸다. 제주 한라산을 제외하고 내륙에서 가장 높다는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황상무는 온몸이 전율한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자정 무렵 지리산으로 향하는 심야버스에 홀로 올라 세 시간가량 새우잠을 자고 도착한 백무동. 당일치기 산행만 해본 황상무에게 새벽 산행은 처음이었다. 9월 중순이었지만 새벽 날씨는 마치 초겨울의 문턱처럼 한기로 가득했다. 지척에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는데, 마치 홍수물이 거대한 울음을 쏟아내듯 세차게 들여왔다. 

  김밥 반 줄로 요기를 하고, 바람막이 가을 점퍼를 걸친 황상무는 새벽 3시 반경부터 천왕봉 길을 올랐다.
 칠흑 같은 어둠과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는 적막함 때문에 그는 두려움이 앞섰다. 버스 정류장에서 보았던 산객 몇 무리는 다른 길로 향했는지 앞뒤 어디에서도 인기척조차 없었고, 어둠에 휩싸인 거대한 지리산 자락의 산길을 외롭게 걸어야 했다. 다행히도 국립공원인지라 반가운 이정표는 중간중간 헤드랜턴에 의해 환한 글자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너무 조용하다보니 육중한 돌계단을 오르면서 혹시 잘못된 길로 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 반을 오르자 사위가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정상의 2/3가량, 해발 약 1200m 고도를 오른 황상무는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풍광에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9월이지만 알록달록 단풍이 물든 나무 군락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건너편엔 거대한 산자락들이 하얗게 떠다니는 운무 속에서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지리산의 웅장한 자락들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장터목 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제석봉을 넘어 가파른 돌 산길을 올라 마침내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본 풍경은 난생 처음 받는, 신이 내린 축복의 선물 같았다. 수십, 수백 개의 산너울은 마치 초록 파도가 일렁이는 듯 춤을 추고....지리산은 정녕 세상의 모든 산하를 품고 있었다.

  이젠 30여 년 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백수’ 신분으로 다시 지리산 정상에 선 그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자조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직 환갑도 안 된 나이고 이렇게 험난한 고준산령도 오를 체력을 갖고 있음에도, 세상은 왜 이리 일찍 나를 산으로 보내고 있나...”

  장터목 산장을 지나 세석 산장을 거쳐 긴 한신계곡을 내려오는 길섶에는 앙증맞은 노란 양지꽃과 민들레가 옹기종기 피어있었다. 길고 지루한 하산길이었지만, 콸콸 쏟아지는 계곡의 폭포 소리는 청량했고 서서히 고여 흐르는 물 향기는 영롱하게 빛나면서 황상무의 지친 이마를 시원하게 적셨다. 황상무는 “언제까지 이러고만 살 수 없지. 저 꽃과 물처럼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새롭게 할 일을 도전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여름이 오면 참나리, 산수국, 원추리 등 야생화가 지리산 능선길을 알록달록 물들일 것이란 기대를 하며 어느새 하산 종착지에 다다른 황상무는, 하늘까지 솟은 듯한 지리산 능선이 아슴푸레 올려다 보이는 상점에 앉아 시원한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두 잔째를 들이켜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형님, 그간 잘 지내셨어요? 또 산에 갔나요? 그러다가 에베레스트까지 등반하시겠어요.”

  H전자 협력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하는 후배였다. 황상무가 퇴직했음에도 가끔씩 안부 전화를 하거나,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사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절친한 사이였다.

 “한미래대학에서 장기현장실습제돈가 하는 새로운 정부 사업을 시작하는데, 기업체에서 20년 이상 재직한 분들을 산학협력 교수로 초빙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이거 형님 같은 분에게는 아주 제격인 거 같아 연락 드려봤어요. 형님 댁과도 가까운 대학이구요.”

-다음 화에 계속-

< 연재 보기 >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1화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2화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3화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4화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6화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7화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8화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9화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10화

황의택 박사의 '소설로 배우는 장기현장실습제'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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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 2019-08-22 22:21:36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잖아요.
앞만 보며 달려왔을 황상무님, 홧팅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