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저널 백두산 기자] 대학 입시에서 논술전형은 오랜동안 ‘계륵’ 같은 존재로 통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 대비로 바쁜 마당에 논술까지 하려니 너무 번거롭고, 그렇다고 완전히 배제하기에는 그 기회가 아쉽다. 그러다 보니 등장하는 선택은 ‘준비는 안 하되 지원은 하는 것’이다. 어차피 제시문 읽고 글 쓰는 시험일뿐이니 따로 준비하지 않더라도 시험장에서 여차저차 글자 수만 채우면 혹시나 합격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시중엔 이러한 선택을 뒷받침하는 달콤한 말들이 쏟아진다. ‘누구누구는 수능 뒤에 논술 수업 딱 한 번 듣고 합격했다더라.’ 이쯤 되면 논술전형은 더 이상 입시가 아닌 미신의 영역이 된다.
물론 아주 단기간의 논술 준비만으로, 또는 아무런 준비 없이 시험장에 다녀와서 대뜸 합격의 결과를 받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논술 결과는 랜덤’이라거나 ‘논술은 로또’라는 뜻은 아니다. 입시는 확률 게임이며, 전형의 특성을 잘 파악해 확률 높은 쪽에 승부를 걸면 그만큼 합격의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뿐이다. 따라서 미신적 사고를 버리고 논술전형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한다면 논술은 허황된 꿈도 불가능한 목표도 아닌 합리적 입시 전략이 된다.
전략적 사고의 시작은 수능 최저학력기준부터
논술전형에 대한 합리적 접근의 시작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입시 전략을 고민하는 수험생, 학부모와 상담을 하다가 논술전형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자주 나오는 반응이 “우리 학교에 논술로 대학 간 선배가 하나도 없어요”, “아는 선배는 1년 동안 논술을 준비해서 6곳에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어요”라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불합격한 선배들이 수능 최저는 맞추고 나서 떨어진 건지, 수능 최저를 맞췄다면 6장의 원서 중 몇 개나 맞춘 것인지에 관한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떨어졌으면 떨어진 거지 “나는 수능 최저도 못 맞춰서 논술 떨어졌다”고 떠들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논술전형의 명목상 경쟁률이 대체로 30~40대 1에 달하지만, 수능 최저기준을 충족한 경우로만 따지는 실질경쟁률은 높게는 명목경쟁률의 3분의 2에서 낮게는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수능 최저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논술전형에서 불합격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은 ‘수능 최저기준은 자신 있다’는 생각으로 상위권 대학에만 집중해 원서를 쓰고, 결국엔 수능 최저기준도 맞추지 못해 기껏 준비한 논술실력은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낙방하게 된다.
따라서 ‘기껏 2과목, 3과목만 맞추면 되는데 앞으로 몇 달 동안 고작 그걸 못 해낼까’하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어느 과목을 어떻게 준비해 어느 대학까지 수능 최저기준을 충족하겠다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논술로 붙기 쉬운 대학은 따로 있다?!
논술전형은 전반적으로 경쟁률도 세고 문제 난이도도 높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합격하기가 다 똑같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상대적으로 합격이 수월하고 단기간 대비만으로도 합격자가 많이 나오는 대학들이 존재한다. 중앙대나 이화여대는 수능 최저기준이 서강대나 성균관대와 동일한 수준이어서, 서강대나 성균관대에 비해 수능 최저 충족률이 낮아 실질경쟁률이 떨어진다. 또한 홍익대는 경쟁대학인 건국대, 동국대, 숙명여대가 수능 최저기준에 2개 영역만을 반영하는 것과 달리 3개 영역을 반영하다 보니 수능 최저기준 충족률이 낮아 실질경쟁률이 떨어진다.
이처럼 경쟁대학 대비 실질경쟁률이 떨어질 경우 약간의 논술 실력만으로도 합격을 노려볼 수 있다. 따라서 논술전형에서 수능 최저기준은 단지 그 자체로 높은지 낮은지만 봐선 안 되며, 동일 수준의 경쟁대학들 대비 수능 최저기준이 높은지 낮은지를 살펴 실질경쟁률이 낮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한 수학에 거부감이 없고 수능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 수리논술이 포함된 대학과 학과에 지원하는 것도 합격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중앙대 경영경제계열, 이화여대 인문II, 경희대 사회계열, 건국대 인문사회II, 숭실대 경상계열 등은 언어논술 문항과 함께 수리논술 문항이 출제되는데, 인문계 학생들의 특성상 수학에 대한 거부감이 커 명목경쟁률 자체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논술 준비기간이 짧다거나 글쓰기에 자신감이 없는 경우에는 언어논술만 치기보다 수리논술을 포함하는 것이 논술에 대한 부담감을 더는 방법일 수 있다.
논술, 체계적 교육과 학습이 중요
논술과 관련해 상담을 하다 보면 꼭 나오는 얘기가 하나 있다. 수업을 몇 번 해본 후 논술에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수능이나 내신고사를 대할 땐 어느 과목은 잘하고 어느 과목엔 취약하다는 평가를 하긴 해도 학생의 소질을 따지진 않는다. 하지만 유독 논술에 대해서는 소질이 있어야 합격할 수 있고 소질이 없으면 합격할 수 없다는 생각이 흔하다. 이는 논술고사에 대한 큰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다.
논술은 단지 학생의 생각을 조리 있게 잘 쓰면 되는 글짓기가 아니다. 제시문이 여러 개 주어지고 그것들을 활용해 문제의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에 대해 명확한 답을 서술해야 한다. 대학의 기출문제들을 보면 학생의 자유로운 생각이나 주관을 밝히는 유형의 문제는 거의 없고, 제시문의 내용과 제시문 간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추론적 사고를 수행하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논술을 잘하는 데 필요한 것은 체계적인 교육과 꾸준한 학습이지 글짓기 재능이나 소질이 아니다. 이는 마치 영어로 자유롭게 일상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당장에 준비 없이 토플 성적을 잘 받기는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것이든 현실의 시험을 잘 치기 위해선 그 시험의 특성과 출제경향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그저 평소 실력이나 재능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논술 또한 대입 수시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엄격한 출제와 채점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 하나의 ‘시험’이기에 그에 맞는 철저한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논술전형은 또다른 좋은 기회, 합리적 사고 필요
논술전형은 자신의 성적으로는 정시에서 또는 수시 학생부(교과, 종합)전형에서 합격하기 힘든 대학에 상향해 지원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그럼에도 합리적이지 못한 미신적 사고를 바탕으로 준비 없이 마구 상위대학에 지원해 그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린다거나, 부담감에 지레 포기해 수시 원서 6장을 합격 가능성도 없는 학생부전형에 던져버리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특히 지난 2022학년도 대입부터 일선 고교에서 대학별 교과전형 추천 인원을 채우지 못해 추천장을 마구 뿌려대는 통에, 내신 4점대 학생들까지도 추천장 받아서 교과전형에 지원하겠다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입시는 확률 게임이다. 자신의 입시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합리적 사고가 필요하며, 그 합리적 사고의 끝엔 논술전형이라는 좋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그 기회를 잡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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