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정권이 새로 들어설 때마다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교육정책을 총괄‧책임지는 교육부장관은 단명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정부를 감독하고, 교육 관련 법안을 책임져야 할 국회는 정쟁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현실이다. <대학저널>은 신년특별기획 ⑤회를 맞아 '교육은 백년지대계는 옛말, 지금은 일년지소계 시대'를 주제로 문제점과 대안을 각각 part1과 part2에 걸쳐 연재한다.
■정권 따라 교육정책 갈짓자 행보="누리사업은 지방대 입장에서 매우 유용한 사업이다. 이명박정부에서도 누리사업은 계속 진행돼야 한다." 이명박정부 출범 당시 노무현정부가 추진했던 누리사업(New University for Regional Innovation·NURI, 지방대혁신역량강화사업)이 중단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지방대 A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A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누리사업은 중단됐고 지방대들의 아쉬움은 컸다.
그렇다면 누리사업은 왜 중단됐을까? 대학가에서는 이명박정부의 기조에 누리사업이 맞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누리사업은 노무현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의 일환으로 도입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 1조 4000억여 원이 투입, 지방대 교육과정 개편과 경쟁력 강화 등이 추진됐다. 특히 사업 선정에 있어 가급적 많은 지방대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교육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조금씩이라도 많은 대상에 지원하는' 것보다는 '우수한 역량을 갖춘 대상을 집중 지원한 것'이 이명박정부의 특징이다. 따라서 누리사업은 이명박정부와 성격이 맞지 않았고 지방대들의 반대에도 불구,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누리사업을 단적인 예로 들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교육정책이 바뀌는 것은 이제 일상이 돼 버렸다. 실제 박근혜정부가 출범하고서도 이명박정부 시절 도입됐던 선택형 수능은 폐지 수순을 밟게 됐으며 국가영어능력시험(NEAT)은 수백억 원의 예산만 투입된 채 사실상 폐지될 예정이다. 또한 이명박정부의 대표적 고교정책이었던 자율형사립고 역시 박근혜정부 들어 학생선발방식이 개선되는 등 수정노선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역대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93년에 출범한 김영삼정부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설치, 대학입시 자율성 확대, 대학설립 준칙주의 도입, 대학평가인정제 실시, 초등학교 영어교육 실시 등 외국어교육 강화 등을 추진했다. 또한 1998년 출범한 김대중정부는 초·중등학교 교원 정년 단축, 각종 교육기관과 교육행정관서의 평가 강화, 두뇌한국 21(BK21)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학령인구감소시대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박근혜정부에서 수정작업에 들어갔고 BK21은 1단계와 2단계 사업이 종료된 후 현재 BK21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명맥은 유지되고 있지만 언제 사업이 종료될지 모르는 운명이다.
■교육부 장관 평균 임기 1년 2개월, 단명 장관도 다수='문교부→교육부→교육인적자원부→교육과학기술부→교육부', 우리나라 교육부가 걸어온 역사다. 1948년 '정부조직법' 제정에 따라 문교부가 출범했다. 이후 1990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문교부 명칭은 교육부로 개칭됐다. 이어 교육부는 노무현정부 들어 교육인적자원부로 변경된 뒤 이명박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로, 현 박근혜정부에서 다시 교육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특히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장관이 부총리로 승격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교육부의 수장인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임기는 얼마나 될까? <대학저널>이 역대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임기를 분석해본 결과 약 1년 2개월로 나타났다. 즉 문교부가 출범한 1948년부터 2014년까지 안호상 1대 문교부 장관부터 서남수 현 교육부 장관까지 총 54명의 장관이 재임했다.

눈에 띄는 점은 단명 장관들도 적지 않다는 것. 이명박정부 초대 교과부 장관이었던 김도연 전 장관(2008년 2월~ 2008년 8월)을 비롯해 김병준 전 부총리(2006년 7월 21일~2006년 8월 8일), 이기준 전 부총리(2005년 1월 5일~2005년 1월 10일), 윤덕홍 전 부총리(2003년 3월~2003년 12월), 송자 전 장관(2000년 8월 7일~2000년 8월 29일), 박영식 전 장관(1995년 5월~1995년 12월)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2년 이상 임기를 지낸 장관은 백낙준 전 장관, 이선근 전 장관, 최재유 전 장관, 이규호 전 장관, 홍종철 전 장관, 민관식 전 장관, 유기춘 전 장관, 손제석 전 장관, 정원식 전 장관, 안병만 전 장관, 이주호 전 장관 등 10명 남짓에 불과했다.
장관 교체가 가장 빈번했던 시기는 1960년대로 이 기간 이병도 전 장관(1960년 4월 취임)을 시작으로 홍종철 전 장관(1969년 4월 취임)까지 모두 13명의 장관이 역임했다. 또한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도 장관 교체가 적지 않게 이뤄졌다. 1998년 김대중정부 초대 장관이었던 이해찬 전 장관을 비롯해 2008년 퇴임한 김신일 전 부총리까지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배출된 장관은 모두 9명이었다. 반면 이명박정부에서는 김도연 전 장관이 6개월여 만에 물러난 뒤 안병만 전 장관과 이주호 전 장관이 남은 임기를 지냈다.
■국회도 직무유기, 파행만 거듭=교육정책이 백년의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데에는 국회의 책임도 크다. 즉 교육부 소관 상임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가 전신인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교과위) 시절부터 '파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교과위는 국정감사 때마다 파행을 거듭하며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는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증인 불출석을 두고 파행이 이뤄졌으며 2009년에는 정운찬 전 총리의 증인 채택 문제로 여야의 공방이 치열했다. 이후 국정감사에서도 증인채택 문제 등을 이유로 교과위는 정상적인 국정감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또한 교과위는 18대 국회 기간 내내 법안 처리율이 최하위권에 머물러 '파행 교과위', '불량 교과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박근혜정부와 함께 교과위는 교문위로 새 출발했지만 현재까지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해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두고 여야가 대립하며 파행을 겪은 것이 대표적 예다.
※part1에 이어 part2 기사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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