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저널 백두산 기자] 최근 수년 사이 대입 공정성 논란으로 시끄럽다. 누구는 공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고, 누구는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입시에 다양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 입시정책의 역사를 한눈에 담은 책이 출간됐다. 교육부에서 차관과 장관을 지낸 서남수 전 장관과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저술한 ‘대입제도, 신분제도인가? 교육제도인가?’는 대입제도의 개념부터 역사, 뒷이야기까지 자세히 다루고 있다. 배 교수를 만나 우리나라 대입제도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 우리나라 대입제도를 총망라한 책을 출간한 이유는.
“대입제도가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대입제도에 우리 교육이 지향할 방향을 충실히 담아야 한다. 동시에 새 제도가 불러올 계층 간 갈등이나 정치적 파장도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 사교육과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을 세밀하게 살피고, 경제적 효과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살펴봐야 한다. 특히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대입제도에 대해 학부모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고려해야 한다.
대입제도를 개편할 때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보는 경우가 많다. 서남수 전 장관과 이 책을 통해 대입제도라는 거대한 빙산의 위와 아랫부분, 보이는 부분과 드러나지 않고 숨겨진 복잡한 부분까지 철저히 해부해 들춰내고자 했다.
하나를 바꿀 때 다른 것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어떤 정책들이 서로 얽혀있는지를 설명했다. 대입제도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살피고, 앞으로 대입제도를 개편할 때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제시했다. 이를 통해 향후 대입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할 정책 수립자, 정치인과 보좌진, 대학 관계자, 교사와 학부모, 언론인, 학자와 교육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책을 집필했다.
또한 이 책은 대입제도의 형성 및 변화와 관련해 여러 정책 사례를 담고 있다. 특히, 서 전 장관이 대입 정책과 관련된 실무를 하면서 직접 겪은 뒷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대입 정책을 교육행정학과 교육정치학, 교육법학, 교육사회학, 교육철학 등 여러 학문적 렌즈를 가지고 분석하고 해부했다. 이 책이 앞으로 대입제도를 연구하고자 하는 학자와 교육 정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좋은 연구자료이면서 교재가 되리라 기대한다.”
-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변화가 잦은 편이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대입제도는 교육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지고, 이를 해결하라는 정치적 압력이 커질 때 개편된다. 예컨대,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라는 요구가 커지거나, 암기 위주 획일적 교육을 탈피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 대입제도의 개편이 이뤄진다.
대입제도는 다른 교육 정책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일반 국민의 경우 새로 바뀐 대입제도가 자녀의 입시에 유리할 것인지 생각한다. 정부가 교육 정책을 바꾸면 학생과 학부모는 당장 그것이 대입에 어떻게 반영될지를 생각하면서 대응한다. 그런 이유로 정부는 어떠한 교육 정책이든 시행에 앞서 대입제도와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교육 정책이 대입이라는 거대한 블랙홀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흥미와 진로에 부응하는 학습을 도모한다는 취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관심은 선택한 교과목의 수강이 대입에서 얼마나 유리할 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교육적으로 타당하다는 이유만으로 제도가 성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대입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개혁하려면 교육 정책 전반의 연계 구조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 개정부터 대입제도 개편과 학교 또는 학생의 교과목 선택이 이뤄지기까지는 적어도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래서 교육과정 개정의 시작과 마무리는 5년 단임의 한 정부에서 끝내기 어렵다. 교육과정이 개정돼도 정부가 바뀌면 대입과 관련된 제도의 변화가 뒤따르지 못할 수 있다. 나아가 새로 들어선 정부의 교육 철학과 비전이 이전 정부와 다르면 교육과정의 개정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대입제도가 개편될 수도 있다.
설령 대입제도를 개정 교육과정에 맞춰 개편한다고 하더라도 대학들이 이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입학 전형을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교육과정 개정과 대입제도 개편은 명확한 정책 비전과 목표, 이해관계 집단의 공감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긴 안목에서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
- 대입제도를 이루는 핵심으로 공정성, 교육적 타당성, 대학의 자율성을 꼽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대입제도가 지향할 3가지 원칙은 공정성과 교육적 타당성, 대학의 자율성이다. 3원칙의 균형이 깨졌을 때 대입제도를 개편하라는 압력이 커질 수 있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공정은 사회 정서의 문제다. 명문대 입학이 출세를 의미하는 한국 사회에서 입학 기회는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하고, 선발과정이 최대한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다. 최근에는 입시 부정을 미리 방지하는 차원의 공정성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입제도가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유리 또는 불리한지를 바라보는 공정성 관점도 증가하고 있다.
이제 공정성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다. 외형적 객관성과 기술적 공정성만을 추구하면, 누구나 같은 조건에서 나홀로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가장 공정한 시험일 수 있다. 하지만 표준화 시험인 수능은 고액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고소득층 자녀, 문제풀이 학습을 잘하는 학교, 수능 시험에 특화된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유리하다. 그런 의미에서 수능 점수 기반의 학생 선발은 일견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생의 가정 배경이 영향을 미치는 제도일 수도 있다. 또한 문제 해결력과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대입제도는 대학이 학생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지를 규율하는 제도다. 따라서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하는 주체로서 대학의 교육 철학과 가치가 반영돼야 한다. 학생 선발에 대한 대학의 자율성은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이고, 선언적 의미 이상의 실질적인 원칙이다. 규제보다는 정책적 지원과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대학이 정부의 정책에 자발적으로 호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교육적 타당성이다. 대입에서 절차적 공정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중대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적 타당성이 가장 중시돼야 한다. 대입제도의 개편이 교육 외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돼서도 안 될 일이다.”
- 3원칙을 포용한 대입제도는 없는지.
“정부가 대입제도를 개선할 때는 이념과 이상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인 연구 결과와 사실을 바탕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새 제도의 장점은 물론 파생하는 문제까지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을 기반으로 국민을 설득을 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대한 피상적 이해나 맹목적인 이념에 휘둘려 대입제도를 급하게 바꾸면, 실질적인 공정성의 확보나 교육의 기회균등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학생과 학교의 부담만 커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대입제도의 개편이나 운용에서 대학의 역할은 자못 크다. 대학이 결정하는 입시요강이 실질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이 입시요강을 결정할 때는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 억제, 교육격차 해소와 기회균등 같은 공익적 가치를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면 국민도 자율성을 염원하는 대학의 편에서 대학을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다.
헌법 제31조 제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는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조화가 헌법 정신임을 뜻한다. 헌법은 능력에 따른 실력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교육 기회를 국민에게 균등하게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대입제도와 관련해 우리 사회가 한쪽 이념에 치우치거나, 이념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거시적 담론과 극단적인 주장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언뜻 보기에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막상 실천 단계로 넘어가면 수많은 암초와 부딪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대입제도는 중용과 균형의 길을 가야 한다. 지금까지 대입제도 개편의 역사는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수렴돼 왔다. 이를 무시하고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면 오히려 교육현장에서 혼란이 생기고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은 나름의 대책을 세워 정부 정책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공정성과 교육적 타당성,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3가지 가치를 염두에 두고 조금씩 절충하고 균형을 추구할 때 대입제도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
- 학생부종합전형이 신뢰를 잃은 상황이다.
“대입제도는 기본적으로 교육제도다. 하지만 대학 진학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신분제도의 역할도 한다. 그래서 사회적 이목을 끄는 입시 부정이나 청년을 비롯한 특정 사회 집단의 불만이 커지면 대입제도 개편에 관한 논의가 촉발된다. 특히 공정성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입제도의 변천사를 보면 대입제도에 내포된 공정성이라는 신 분제도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때 비로소 개혁안이 효과를 발휘했다. 역설적이지만 대입제도 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정성이라는 날카로운 화살들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지혜가 필요하다.
객관성이나 공정성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게 되면 교육적 타당성이나 대학의 자율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 대학의 서열구조가 지속하는 가운데 대입제도가 공정성에만 집착하면 대입제도의 신분제도적 특성이 더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즉 대입제도의 형식적 공정성만 과도하게 강조하고 소수 집단이나 사회적 약자 집단을 적극적으로 배려하지 않는다면, 대입제도의 정당성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공정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대입제도의 교육적 타당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대입제도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과 성장에 미칠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미래 사회를 전망하면서 그 세상을 살아갈 필요한 능력과 성품을 길러주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 교육제도라고 할 수 없다.
공정하기는 하지만 교육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운 대입제도는 교육제도가 아니라 냉혹한 신분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입학사정관제 또는 학생부종합전형이 도입된 것이다. 이처럼 교육적 타당성을 강화하는 대입제도가 자리잡기 전에 공정성을 훼손하는 상황이 발생해 안타깝다.
- 학생부종합전형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학생부종합전형과 관련해서는 보완할 점이 많다. 학교생활기록부 성적, 즉 내신 성적은 절대평가 방식인 과목별 성취도 평가 결과와 상대평가인 석차를 병행해 제공하는 것을 제안한다. 교육적 이상으로는 절대평가가 당연히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평가를 완전히 없애면, 한 학생이라도 상위권 대학으로 보내고자 하는 학교들은 ‘성적 부풀리기’ 유혹에 빠진다. 이렇게 되면 학교생활기록부 내신 성적의 변별력이 약화되고, 대학들이 이 자료를 쓰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외면하게 되고, 교육의 중심축이 학교에서 학교 밖, 사교육으로 바뀔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절대평가는 교육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전면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반대로 상대평가는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선발의 측면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면이 있다. 결론적으로 학교생활기록부 성적은 현재와 같이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2가지 방식을 병행하고, 내신 성적의 구체적인 반영 방법은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부의 ‘고교 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과 연계해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지나치게 축소돼 전형 자료로 유명무실한 비교과 활동 기재 사항을 좀 더 확대하고, 입학 전형과정에서 심층면접 등의 방법으로 기재 사항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평가하는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교육 내실화와 정상화, 진학지도 강화 차원에서는 폐지한 교장·교사 추천서를 부활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학교장이나 교사의 추천서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활동과 성적을 반영하는 전형은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실현되려면 학생들에게 다양한 활동의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대입 공정성과 관련해 문제가 생기면 대학 스스로 해명하고 결백을 입증하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심각하면 정부가 나서서 조사나 감사를 해 책임을 규명하고, 해당 대학이 고교 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을 받고 있으면 사업비 배정을 철회하거나 불이익을 줘야 한다.
이러한 방안을 통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입학사정관 전형이 정착하면 고교 교육 정상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같은 선순환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한 선결 조건은 고교와 대학 차원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진학지도와 입시 관리이고, 이를 통해 쌓인 대입제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일 것이다.”
- 오는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된다. 많은 문제가 예상되는데.
“문재인 정부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고교학점제를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해 2025년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하겠다고 예고했다.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개정도 2015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사례처럼 적지 않은 암초를 만나게 될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무엇보다 대입제도와 연계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반감되거나 심지어 정책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모든 과정에서 일관된 교육 철학이 효과적으로 작동해야만 새로운 교육과정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현장을 돌아보면서 준비하기를 권유한다. 그것이 오히려 고교학점제의 정신과 취지를 최대한 지키는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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