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류 사흘째 오전 강한 기운이 느껴져 !!
나 아닌 또 다른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그동안의 불안함과 무기력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하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수학의 표류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온 것 같다. 혼자일 때 보다는 둘이서 힘을 합치면 뭔가 지금과는 다른 돌파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빨리 달려가서 얘기를 나눠야겠다. 어떻게 표류를 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날 것인지 등 나눠야 할 얘기들이 참 많다.
그런데 점점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이 기운은 뭘까? 분명히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드디어 서로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거리가 되었을 때 너무나도 확실한 느낌이 들었다. 이 여학생은 나처럼 수학에서 표류하는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 눈에는 총기가 넘쳐나고 온몸은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진 것과 같은 느낌이 나는 이 여학생. 나에게 또 다른 좌절을 맛보게 할 모양인가?
표류 사흘째 오후 수리영역은 당근 파운드 케이크 만들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 이 여학생. 나랑 눈을 마주치자마자 미소를 머금으며, “너 수학 때문에 많이 힘들지?”라고 말을 건넨다. 난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조금의 틈도 없이 이 여학생은 나에게 밑도 끝도 없이 “너, 수리영역과 언어영역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라는 질문을 던진다. 난 대답 대신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다. 이내 그 여학생이 내게 대신 답을 내놓는다. “수리는 당근 파운드 케이크 만들기야!”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안 그래도 배가 고픈데, 당근 파운드 케이크가 있다는 소리도 아니고 만든다고?
표류 사흘째 저녁 당근 파운드 케이크는 없다.
정신이 없어서 여학생의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다. 수리를 못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본적인 분별력마저도 잃어버리게 만드는 모양인가? 여학생의 이름은 월리라고 했다. 이름이 참 신기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멍멍이 이름 같은 느낌도 조금 든다.
월리는 언어영역은 만들어진 음식의 재료를 맞추는 것이고 수리는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언어영역이 주어진 제시문을 통해 출제자가 물어보는 내용에 대해 판단만 하면 되는 다소 쉬운 과정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제시문이 만들어진 음식이고 문제 하나 하나가 그 재료를 물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수리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당근 파운드 케이크를 비유로 든 이유는 우선 케이크를 만드는 것이 매우 민감한 과정이라고 했는데, 그냥 자기가 당근 파운드 케이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다소 생뚱 맞은 이유를 댔다.
그런데 당근 파운드 케이크 만들기는 그렇게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똑같은 밀가루인 줄 알았는데 박력분이나 강력분이 아니라 중력분을 사용해야 하며, 설탕을 녹일 때에도 세 차례에서 네 차례에 걸쳐 넣어야 뭉치지지 않고 골고루 단맛을 낸다고 했다. 뭐가 이리 복잡하지? 설명을 열심히 듣는다고 당근 파운드 케이크가 툭 하고 내 앞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표류 사흘째 밤 월리, 그림을 남기고 사라지다.
내가 계속 허둥대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니까 월리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월리는 이 그림을 보면서 수리영역과 당근 파운드 케이크 만드는 과정이 도대체 어떤 비슷한 점을 갖고 있는지 열심히 생각해 보라는 얘기와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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