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의 잡스러운 대학’이란 뜻의 지잡대는 언제부터인가 지역 대학을 호칭하는 용어가 돼버렸다. 지역 거점국립대와 지방 명문 사립대들이 서울 소재 유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 지역 대학의 현실은 분명 녹록치 않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하는, 이른바 ‘in 서울’ 현상은 매년 심해지는 반면 지역 대학은 점차 외면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위기의 지역 대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 대학은 지역 인재 육성은 물론 지역 산업까지 책임진다는 점에서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다. 즉 지역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국가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서울-지역, 부익부 빈익빈 심화’
지난 7월 서울 삼성동 소재 COEX에서 열린 ‘2013 수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이하 수시박람회).’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 주최로 4일 간 진행된 수시박람회에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서울 소재 대학들이 마련한 부스에는 상담 인원이 몰려 분주했지만 지역 대학들이 마련한 부스는 다소 한산했던 것. 특히 서울을 기준으로 먼 거리에 있는 대학의 부스일수록 상담 발걸음이 뜸했다. 당시 한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이것이 지역 대학의 현실 아니겠는가. 예전에는 서울 소재 중하위권 대학을 갈 바에야 지역 거점 국립대나 지역 유명 사립대에 진학했지만 지금은 모두 서울로 대학을 가려고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서울 소재 대학들과 지역 대학들 간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민주통합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지역별 고교졸업자의 수도권 대학 진학 비율은 충남 21.5%, 전남 18.3%, 충북 15.6%, 광주 14.4%, 대전 14.5% 등으로 나타났다. 교육·연구 여건과 취업 격차 역시 두드러진다. 취업률의 경우 서울 소재 대학의 평균 취업률은 57.1%로 지역 대학의 평균 취업률 53.7%보다 높았다.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서울 소재 대학과의 교육·연구에 있어 질적 수준 격차는 지역 대학 졸업생에게 일종의 낙인효과를 발생시켜 지역 대학 졸업생의 취업난 심화로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외면 받는 지역 대학, 위기의 시대
지난 5월 제주대에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세대공감팀 주최로 개최된 토론회. 이날 ‘청년, 청와대를 만나다-지방대생, 스펙과 편견 사이’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한 학생의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이 학생은 “취업 경험이 있는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모집할 때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A, B, C등급을 매기고 지방대생에게는 F등급을 책정, 원서를 제출해도 읽어보지 않는다고 한다”면서 “기업들이 수도권 대학 출신자들만 우수한 인재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지역 대학 위기의 근본적 이유는 무엇보다 차별과 편견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른바 ‘대학 등급제’다. 지역 대학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정당하게 실력을 평가 받지 못하고 기업 채용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 물론 최근 기업들이 지역 할당제를 도입하면서 지역 대학 출신 채용 비율이 늘고 있다. 하지만 지역 대학 출신을 가로막는 벽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또한 서울 중심의 산업구조가 지역 대학을 위기로 몰고 있다. 즉 현재 기업과 공공기관 등은 대부분 서울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서울 소재 대학 출신들이 취업 정보 등에서 유리하다. 실제 한 중견 기업인은 “서울 출신들이 정보력이 뛰어나고 세상과 시장이 돌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서울 중심의 산업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지역 대학 위기 또한 해결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함인석 대교협 회장은 “수도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현상으로 수도권과 타 지역 간 격차가 커지고 우수인재는 물론 많은 학생들이 지역 대학 진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됐다”며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대학 규모가 앞으로 1/3 정도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지역 대학들은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역 대학이 지역과 국가의 경쟁력
‘아이비리그(Ivy League)’, 함브라운대·컬럼비아대·다트머스대·코넬대·하버드대·프린스턴대·펜실베이니아대·예일대 등 미국 동부지역에 위치한 8개 명문 대학을 일컫는 용어다. 이들 Ivy League는 미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문으로 인기가 높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영남지역, 또는 호남지역의 명문 대학을 통틀어 부르는 호칭이 있을까?
지역 대학이 차별을 받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일 수 있다. 선진국의 경우 대학이 소재한 위치가 아니라 대학의 교육·연구역량과 졸업생 수준 등이 우수 대학을 가늠하는 주요 기준이다. 물론 KAIST나 POSTECH처럼 예외도 있다. 하지만 이들 대학은 지역에 위치해 있을 뿐 과학기술특성화대학으로 일반 지역 대학과는 다르다.
분명한 것은 지역 대학이 살지 않고서는 지역, 나아가 국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즉 지역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지역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지역 대학을 통한 지역 발전은 곧 국가 발전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지역 대학 위기론은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과제다.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명문 대학이 소위 SKY대 등 수도권 소수 대학에 한정돼 대학 진학의 병목현상이 심각하다”면서 “수도권 중심의 소수 명문 대학체제에서 전국에 다수의 명문 지역대학을 육성해 왜곡된 대학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초중등교육 정상화를 유도하며,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 정책위의장은 △국립대 공동학위제 실시 △지방 국립대부터 연 200만 원대 등록금 실현 △공무원 지역인재 채용 목표제와 공공기관·대기업의 지방대 출신 채용 의무 할당제 실시 △지방 국립대 교원확보율 획기적 제고를 골자로 한 ‘지방대 육성을 위한 4대 발전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함인석 회장은 “지역 대학 육성문제는 단순히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정책적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이에 발맞춰 지역 대학에서도 각 대학의 역할 모델을 스스로 정립하고 산학협력 특성화 방향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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