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교과형 논술 완전 정복2
통합교과형 논술 완전 정복2
  • 대학저널
  • 승인 2011.07.0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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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함정을 의심하라

 


최근 연세대 논술고사에 등장하는 지문들엔 출전이 명시되지 않는다. 널리 알려진 저작을 제시문으로 사용할 경우,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해당 작가나 저술에 대한 교과서적 지식을 나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답안들은 상투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암기된 답안이라는 혐의를 받는 경우도 많다. 논술고사의 주제나 제시문의 출처가 수백, 수천이나 되는 것을 감안할 때, 사실 준비된 답안이란 있을 수 없는 데도 말이다.

유명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예로 들어보자. 데카르트가 이 소책자에서 다루는 주제는 단순하고, 의도는 명료하다. 방법적 회의를 거쳐, 근대적 철학체계의 구축에까지 이르는 데카르트의 지난한 사유과정은 교과서에서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논술고사에 등장한 데카르트의 글은, 교과서에서 다루는 빈약한 특징들을 열거하는 수준에서 이해되어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출제자들이 의도하는 논술고사의 주제의식의 관점에서 새롭게 읽어야 한다. 때로는 ‘철학적 이원론’의 관점에서,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논하는 문제(경희대)도 가능하며, 경우에 따라선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을 문제 삼기도 한다(서강대).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기계론적 사고’나 ‘인간 중심주의’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과학 지상주의와 연결될 수도 있고, 동양의 조화로운 우주관과 비교되기도 한다. 요컨대, 수험생들은 일체의 편견을 버리고, 주어진 제시문 자체의 독해와 제시문들 간의 관계를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성적인 눈길로 논제와 제시문들을 독해한 성과는 개요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논제의 요구에 답하는 논지의 내부 구조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제에 지시된 몇 개의 요구사항에 분명히 응답하는 각각의 소주제들로 가닥을 잡아줘야 한다는 말이다. 대개 이 각각의 소주제들이 하나의 의미단락(=문단)을 형성하게 된다. 좀 더 정밀한 개요에선, 각 단락에서 활용할 제시문들의 핵심 논지도 개략적으로 기술해둘 필요가 있다. 대체로 이런 과정을 밟아나가기만 해도 답안의 완성도는 높아지게 된다. 여기까진 상식이 도움을 준다. 그러나 때론 상식이 우리 사고를 옥죄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상식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 실험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주어진 개념이 세 개면서, 제시문도 세 개일 때, 각각의 개념을 각각의 제시문에 적용하려는, 습관적 사고에서 벗어나긴 힘든 일이다.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논제의 경우, 대체로 이런 일대일 대응이 올바른 선택인 경우가 많다. 다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수험생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습관적이고 정형화된 사고에 따라 판단하기 전에, 다각도의 검증 작업을 거쳐야 한다. 또 다른 시선으로 논제와 제시문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때, 취해야 할 또 다른 시선은, 바로 출제자의 시선이다. 이 눈길로 자신의 답안을 정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논제가 자유로운 사고 실험의 중요성을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이 되길 바란다.

이달의 미션
아래 논제를 읽고 논술문을 작성해보자. 2008학년도 연세대학교 수시2 기출문제 중 배점이 가장 크고, 분량도 길며, 난이도도 가장 높은 3번 문제다. 개요부터 작성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논지의 구성을 간결하게 정리한 후에, 각각의 단락에 꼭 담아야 할 내용을 간단히 기입해두면, 실제 논술문 작성 중에 큰 도움이 된다. 개요만이라도 작성한 다음, 논제 해설과 우수 답안을 읽어보기 바란다.

[가]
중(中)이란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음이다.
·군자는 중용(中庸)에 따라 행동하고 소인은 중용에 반(反)하여 행동한다.
·군자의 중용이란 군자의 덕을 갖추고 있으면서 때에 따라 중(中)에 맞추어 행동함이다. 소인이 중용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소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동함이다.
·군자는 자신의 현재 처지에 따라 행하고 그 밖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귀한 처지에 있다면 부귀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가난하고 천한 처지에 있다면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며, 오랑캐와 같은 처지에 있다면 오랑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환난에 처해 있다면 환난에 처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군자는 어떤 처지에 놓인다 하더라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윗자리에 있을 때에는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아니하며, 아랫자리에 있을 때에는 윗사람에게 매달리지 아니한다.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으면 원망이 없게 될 것이니,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않고 아래로는 사람들을 탓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편안하게 처신하면서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것을 행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문왕과 무왕의 정치가 보여주었듯이, 걸맞은 사람이 있다면 그 정치가 흥성하게 될 것이고 걸맞은 사람이 없다면 그 정치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무릇 정치는 갈대와 같다. 정치의 성패는 사람에 달려있다.
·중용의 도리는 지극(至極)하도다! 백성들 가운데 중용의 도리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도가 행하여지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안다. 지혜로운 사람은 너무 지나치고 어리석은 사람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가 밝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안다. 어진 사람은 지나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 있고 벼슬과 봉록을 사양할 수 있으며 날카로운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의 도리는 쉽게 실천할 수 없다.

[나]
우리는 이제 대다수의 국가와 사람들에게 최선의 정치질서와 생활방식이 무엇인가를 고찰해 보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도달할 수 없을 정도의 우수성이나 예외적인 재능과 특별한 시설을 요구하는 교육 수준 또는 이상적인 상태를 성취하는 정치질서를 기준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대다수의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정도의 생활과 대다수의 국가가 향유할 수 있는 종류의 정치질서에만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 중략 …]
우리가 <윤리학>에서 나온 언명들, 곧 (1) 진실로 행복한 생활이란 모든 장애로부터 벗어난 선의 생활이며, (2) 선이란 중용에 있는 것이라는 언명들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최선의 생활방식은 중용에, 즉 각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중용에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아가 시민들이 좋은 생활방식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나쁜 생활방식을 갖고 있는가를 결정하는 기준들은 정치질서를 평가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질서란 시민들의 생활방식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에는 세 개의 계급이 있다. 아주 부유한 사람들, 아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계급 [… 중략 …]
국가는 가능한 한 평등하며 동등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되고자 한다. 다른 어떤 계급보다 중간계급이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중간계급에 기초를 두는 국가가 최선의 질서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중간계급이야말로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요소이기 때문이다. 중간계급은 다른 어떤 계급보다도 안전하다. [… 중략 …]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지도 않고 부자들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물건을 탐내지도 않는다. 또한 부자들처럼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반(反)하여 음모를 꾸미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안전한 생활을 영위한다. 포킬리데스(Phokylides) *의 소망은 옳았다.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좋은 점이 많다.
나도 국가의 중간계급이었으면 좋겠다.
이제까지 논의한 것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점이 분명해진다. 첫째, 최선의 형태를 가진 정치사회는 권력이 중간계급의 손에 있는 사회이며, 둘째, 중간계급의 규모가 큰 국가가 좋은 정부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간계급의 규모는 가능하다면 다른 두 계급을 합한 것보다 크거나, 아니면 적어도 두 계급 중 어느 하나보다는 커야 한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에는 중간계급이 어느 한쪽에 가세하여, 서로 적대하는 양 극단 중의 어느 하나가 국가를 지배하게 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구성원들이 적절하고 알맞은 재산을 갖고 있다면, 이는 그 국가에 아주 좋은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재산이 많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재산이 전혀 없는 경우, 그로 말미암아 극단적인 민주주의 또는 단순한 과두정치 심지어 폭군정치까지도 초래될 수 있다. 중간계급이 지배하는 정치질서나 혹은 그와 유사한 정치질서로부터는 이러한 폭군정치가 나올 가능성이 훨씬 작다.
* 포킬리데스 : 고대 그리스의 시인

[다]
어떤 사람도 독창성이 인간사에서 가치 있는 요소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해서 예전의 진리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관행을 만들고, 보다 계몽된 행위와 더 나은 취향과 새로운 감각의 모범을 보인 사람들은 이 세상에 항상 필요하다. 기존의 방법과 관행이 완벽하다고 믿지 않는 한, 이러한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공헌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시도로 기존의 관습을 어느 정도라도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전체로 볼 때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소수가 세상의 소금이다. 만약 이들이 없다면, 우리 세상은 고여 썩어가는 물 웅덩이가 되고 말 것이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좋은 것들을 소개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만일 세상에 더 이상 이루어져야 할 것이 없다면, 인간의 지성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바로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옛 관행을 답습하는 사람들은 왜 그것이 행해지게 됐는가를 망각하고 마치 소처럼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 아무리 좋은 신념이나 관행이라 하더라도 순식간에 기계적인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 만약 항상 새로운 독창성을 가지고 신념과 관행이 인습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신념과 관행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버티지 못할 것이며, 비잔틴 제국에서와 같이 문명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천재는 극소수이다. 천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있어야 한다. 천재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천재는 천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개성이 강하다. 천재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제한된 몇 가지 유형에 적응하기 어려우며, 만약 그렇게 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천재들이 소심하게 행동하여 강제적인 틀에 적응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래서 자신의 재능이 억압되는 데 동의한다면, 사회는 그 천재들로부터 혜택을 별로 받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강한 성격을 소유하여 이 굴레를 타파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보통 사람으로 축소시키는 데 실패한 사회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난폭한 사람’, ‘괴팍한 사람’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나이아가라 폭포에게 왜 네덜란드 운하처럼 둑 사이를 온순하게 흐르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

[라]
한 집단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속성을 통계적으로 대표하는 값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료의 분포상태를 하나의 수로 나타낼 때는 먼저 그 분포의 중심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자료 전체의 중심적인 경향이나 특성을 하나의 수로 나타내어 자료 전체를 대표하는 값을 ‘대표값’이라고 부른다.
대표값의 종류로는 ‘평균값’, ‘중앙값’, ‘최빈값’ 등이 있다. ‘평균값’은 모든 관측값을 다 합한 후에 그 합을 전체 개수로 나눈 값이다. ‘중앙값’은 모든 관측값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있는 값이다. ‘최빈값’은 주어진 관측값들 중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값이다. 평균값은 극단적인 값에 의하여 영향을 받으며 균형을 유지시키는 무게 중심에 비유되기도 한다. 극단적인 값들이 많이 관찰되는 경우에는 자료를 작은 값부터 큰 값까지 크기순으로 나열하여 계산한 중앙값이 자료 전체의 속성을 보다 잘 대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료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최빈값, 즉 자료의 값들 중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값이 대표값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세 가지 대표값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의 표는 인천지역의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의 하루 평균값을 아홉 개 구역별로 정리한 것이다. 대기 중 미세먼지의 농도는 ㎍/㎥단위로 측정하며 미세먼지 농도에 대한 대기환경기준은 하루 평균 100㎍/㎥이다.
 

아홉 개 구역의 평균값은 모든 값들을 더하여 전체 개수(9)로 나눈 것으로 약 60.6 (㎍/㎥)
(≒[31+57+59+61+64+67+67+67+72]/9)이다. 중앙값은 자료를 순서대로 늘어놓았을 때 중간에 위치하는 값이므로 64(㎍/㎥)가 된다. 최빈값은 가장 많이 관찰된 값이므로 세 번 관찰된 67(㎍/㎥)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강화군은 다른 구역에 비해 미세 먼지의 농도가 낮다. 이 때문에 무게 중심으로 비유될 수 있는 평균값은 중앙값이나 최빈값에 비해 작아진다.

 

【문제】 제시문 (라)에 설명된 대표값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제시문 (가), (나), (다)의 주장을 각각 논의하시오.

【논제 해설】
1. 제시문 분석
 제시문 (가)는 자사(子思)가 저술한 『중용(中庸)』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글에는 공자가 생각하는 중용의 의미가 잘 드러난다. 공자가 말하는 중용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내면적 수양을 통해 획득하고 나아가 국가나 사회의 환경 속에서 구현되는 덕목이다. 따라서 중용은 국가에 선행하면서 그 토대가 되는 개인의 덕목이다. 제시문 (나)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정치학』에서 인용한 것이다. 인용문에 나타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중용은 기본적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실천되지만 이를 넘어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것으로 연결되어 해석될 수도 있다. 둘째, 중용은 한 국가에 있어 중간계급(재산의 상태에 따른 중간계급)과 연관되어 생각될 수 있다. 셋째, 중간계급은 다른 어떤 계급보다 수적으로 우세하며, 이런 상태가 국가의 중용이 될 수 있다. 제시문 (다)는 존 스튜어트 밀(J.S. Mill)의 『자유론』에서 발췌한 것이다. 인용문에서 밀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독창성(천재성)이 중요하며 사상과 실천의 두 분야에서 천재가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소수이기 마련인 ‘독창성’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좋은 것들을
소개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즉 이들은 새로운 사상이나 실천을 창시하거나 기존의 사상이나 실천이 부패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사회의 관행과 취향을 개선하고 발전시킨다.

2. 문항 분석
 문제는 제시문 (라)에서 언급된 세 가지 대표값(평균값, 중앙값, 최빈값)의 서로 다른 특징을 이용하여 다른 제시문들의 주장을 해석하도록 요구한다. 수험생들은 우선 제시문에 나타난 대표값들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적용하여 세 제시문을 분석하고 해석하면 된다. 연세대학교에서는, 이 문제를 통해, 특히 수험생들이 얼마나 독창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을 밝힌다.
대개의 성공한 답안들은 제시문 [가]와 중앙값을, 제시문 [나]와 최빈값을, 제시문 [다]와 평균값을 연결하여 분석했다. 이런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수학 개념인 대표값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윤리·정치의 개념인 중용에 관한 제시문들을 논의하라는 논제에 당혹했을 것이다. ① 하지만 끈기와 투지를 가진 학생들이라면, 거듭 대표값들을 적용하려는 과정에서, 대체로 [다]에 적합한 개념으로 평균값을 찾아내게 된다. 독창성을 가진 천재들을 설명하기엔 중앙값도, 최빈값도 적절하지 않은 반면, 이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평균값에 영향을 미치는 극단적인 값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다음 단계는 쉽다. 이제 남은 값 중에서 최빈값을 [가]에 적용할 수는 없을 테니까, 중앙값을 [가]에 적용해본다. 그러자 무난하게 설명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다. ③ 마지막 남은 최빈값을 [나]에 할당하여 해석하는 순간, 최적의 설명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서게 된다. 이렇게 조합한 학생들은 아마도 희열을 느끼면서 답안을 정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조합은 최선이 아니다.

3. 마지막 관문
 바로 이 대목에서 이른바 ‘상식의 함정’을 의심했어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대표값들의 특성을 적용하는데 곤란을 겪었던 이유는 [가]와 [나] 제시문들에 어느 하나를 적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맞다. [가]는 평균값의 특성으로도, 중앙값의 특성으로도 설명이 가능했으며, [나]는 세 대표값 모두를 적용할 수도 있었다. 두터운 중간층은 최빈값의 측면도, 중앙값의 성격도, 평균값의 요소도 갖는다. 이를 하나의 대표값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비교적 성공한 답안들도 바로 이 한계를 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왜 하나의 대표값과 하나의 제시문만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문제가 이런 일대일 대응을 지시하지도 않았는 데 말이다. 우리의 습관적, 상투적 사고관행이 만들어낸 허상탓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논제에서 [가], [나] 제시문들에 두 개 이상의 대표값을 적용하여 성공적으로 분석한 글들은 얼마나 돋보이는 답안이 되었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우수답안】
제시문 [라]는 대표값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표값은 평균값, 중앙값, 최빈값으로 분류될 수 있다. 먼저, 평균값은 모든 관측값을 전체 개수로 나눈 것으로, 극단적인 값에 영향을 받으며 무게 중심에 비유된다. 중앙값은 작은 값부터 큰 값의 순으로 나열해 계산한 것으로, 전체의 속성을 잘 대표한다. 마지막으로, 최빈값은 자료의 값들 중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값을 뜻한다.
먼저, 제시문 [가]는 중앙값과 대응될 수 있다. [가]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너무 지나치고 모자라는 사람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중용을 실천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가]에서 중용이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가]의 주장은 많은 값들 가운데 중앙의 값을 선택하여 전체를 대표하는 중앙값의 특성과 연관지을 수 있다.
다음으로 제시문 [나]는 최빈값과 연관지을 수 있다. [나]에서는 중간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중간계급들이 많아져야만 바람직한 정치사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에서 나타난 최빈값은 자료의 값들 가운데 가장 많이 발생한 값을 이용해 대표적인 수치로 이용한 것이다. 결국, 가장 많은 값을 추구하는 최빈값의 특성은 중간계급이 많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시문 [다]는 평균값을 이용하여 설명될 수 있다. [다]에서는 독창성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에서의 독창성을 지닌 사람들 즉,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값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라]에서는 평균값이 극단적인 값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회의 발전이 극소수에 의해 형성된다는 주장과 부합한다. 따라서 극단적인 값을 인정하는 평균값은 제시문 [다]와 연결할 수 있다.

평가_문장표현이 다소 건조하고, 제시문 단순 요약 비중이 높아서 썩 좋은 인상을 주진 않는 답안이다. 각 단락의 서두가 천편일률적으로 제시문을 지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수 답안으로 선정된 것은, 기본적으로 ‘중용’에 관한 지문들을 제시문 [라]의 대표값들과 합리적으로 연결하여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수학의 기초 개념에 속하는 대표값들의 속성에 대한 이해와 이 개념들에 근거하여 개인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분석하는 논리적 사고 능력이 모두 잘 드러나고 있다. 상위 10% 이내에 해당하는 답안이다. 하지만 위의 논제 분석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의 제시문에 하나의 대표값만 적용하여 해석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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