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논술은 수험생의 ‘지적가능성’ 평가
“통합논술은 수험생의 ‘지적가능성’ 평가
  • 대학저널
  • 승인 2014.03.04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술의 핵심] 통합교과형 논술 완전 정복-경희대학교편

통합논술의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접합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지식에 대한 이해력,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합적인 사고력, 체화된 지식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다. 통합논술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수험생들은 평소에 어떤 현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고, 치밀하게 분석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비판적인 시각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견해와 타자의 견해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또한 치밀한 분석은 전체 속에서 여러 요소들을 분리, 그 연관관계를 파악해보는 것이다.

대학이 통합논술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수험생의 ‘지적잠재능력’ 즉, ‘지적가능성’이다. 이는 얻어진 지식과 정보를 통합적으로 고찰하고 주어진 문제 상황을 논리적 혹은 수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다. 인문계열에서는 수험생들이 제시된 자료들을 어떻게 통합적으로 추론해 얼마나 논리적으로 표현해 내는가를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삼는다. 통합논술시험은 수험생들에게 종합적인 시각에서의 이해력과 논리적인 표현력을 요구한다.

논증적 글쓰기

논증이란 주장과 그 주장의 언어적 증거로 구성되는 문장들의 집합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적절한 근거와 전제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이 논증이다. 논증에서 증거의 역할을 하는 문장들은 전제들(Premisses)이라고 불려지고, 주장의 역할을 하는 문장은 결론(Conclusion)이라 불려진다. 하나의 논증은 몇 개의 전제들을 가질 수 있지만, (정의에 의해) 그것은 오직 하나의 결론만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의 논증은 단지 하나의 전제만을 가진다:

매리에게는 쌍둥이 자매가 있다.
그러므로, 매리는 외동딸이 아니다.

다음의 논증은 두 개의 전제들을 가진다:

낙태는 살인과 같다.
살인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낙태는 잘못이다.

많은 논증들은 세 개 이상의 전제들을 가진다. 다윈은 언젠가 그의 책 「종의 기원」 전부가 단지 하나의 결론(진화의 참)을 위한 하나의 긴 논증이었다고 말했다. 문장은 주어진 논증에서 그 문장이 행하는 역할에 따라 전제나 결론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위의 논증에서 전제 문장 “낙태는 살인과 같다”는, 예를 들면 다음 논증에서처럼, 어떤 다른 논증의 결론일 수 있다:

태아는 사람이다.
사람을 고의로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낙태는 태아를 고의로 죽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낙태는 살인이다.

물론, 이러한 논증의 전제들 중 어떤 것의 참이 의문시된다면, 그것을 지지하는 새로운 전제들을 가진 다른 논증을 구성할 수도 있다. 보통, 논증의 목적은 결론의 참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1)논증의 전제들이 참이어야 하고, (2) 전제들은 결론에 대한 타당한 증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전제들이 과연 참인지, 그리고 문제시되는 전제들이 있다면 그 전제들을 지지하는 다른 논증들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이 바로 ‘비판적 사고’다. 논증의 전제와 결론은 일반적으로 평서문의 형태로 진술된다.

때때로 논증을 확인하는 것은 표지 단어(Indicator words)들로 인해 비교적 쉬울 수 있다. 앞에서 예로 든 논증들에서, 단어 “그러므로”는 결론을 도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것은 일상 언어에서 그 용어가 사용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러므로”가 나타날 경우 우리는 논증이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논증의 결론을 도입하는 다른 용어들은 “따라서” ,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에 따라”, “...이 도출된다”, “그러한 이유로” 등이다. 그리고 논증의 전제들을 지시하는 단어들은 “...이기 때문에” , “왜냐하면”, “...라는 이유로” 등이다.
다음의 논증에서, 표지 단어는 이탤릭체로 쓰여져 있다:

1. 다음은 Mobil Corporation의 광고문안이다.

사기업은 경제 변화의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기 때문에, 정부는 경제 계획과 의사 결정에 있어 사기업의 자원들을 활용해야한다.

여기서 주 논점은 쉼표 다음에 오는 문장에서 진술된다: “정부는 경제 계획과 의사 결정에 있어 사기업의 자원들을 활용해야한다.” 이 결론을 지지하기 위해 제시되는 전제는 “때문에” 라는 표지 단어에 의해 확인된다: “사기업은 경제 변화의 가장 효율적인 도구다.”

2. 다음은 신문 기사로부터 발췌했다:

사무직 여성 노동자는 사무직 남성 노동자만큼 열심히 일하며 생산적이다. 그러므로 사무직 여성 노동자는 유사한 지위의 사무직 남성 노동자와 비슷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

사무직 남성 노동자의 임금과 사무직 여성 노동자의 임금을 균등하게 해야 한다는 이 논증에서, 표지 단어 그러므로는 그 논증의 결론을 도입한다. 여기서 전제들은 결론 전에 진술되었으나, 필요에 따라 결론(=주장)을 먼저 진술하고 나서 근거로 뒷받침하는 방식도 많이 쓰인다.

>> 이 달의 미션

2014학년도 경희대학교 논술 모의고사 문제 중 인문·예체능계문항이다. 제시문들 요약과 문제 극복방안을 묻는 두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시문 개수와 분량이 다소 긴 점을 빼면 비교적 쉬운 유형의 문제라고 하겠다. 따라서 직접 작성한 후 뒤에 첨부된 예시답안을 비교하여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뜸 논제 해설과 첨부한 답안들만 읽어보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가벼운 개요라도 작성하기를 권한다.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가]
인터넷이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는 소통 환경을 제공한다는 사실이 곧 실제로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접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정보만을 선택하고 자신의 견해와 동일한 의견만을 선별적으로 접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네티즌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생각과 의견을 가진 네티즌들과 집단이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서 네티즌은 자신이 읽고 싶은 정보만을 골라 읽고, 듣고 싶은 의견만을 선택하여 듣고, 자신과 비슷한 취향과 견해를 지닌 사람들만 만나 소통하면서 집단 정체성(Group Identity)을 공유하고 그 집단으로부터 사회적 도덕적 지지(moral and social support)를 획득한다. 이런 상황은 인터넷이 다양한 정보와 견해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었기에 실현되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기존의 생각이나 태도와 부합하는 의견만을 골라 접하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like-minded people)끼리 만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 만족감 그리고 즐거움을 얻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개인의 자아실현 및 권리증진 차원에서만 본다면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숙의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정보와 의견의 편식으로 인해 편견과 고정관념이 강화될 수 있고,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포용력이 약화되며, 사회의 파편화를 심화시키고 집단 극화(集團極化;Group Polarization)를 일으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숙의와 사회 통합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평소에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지닌 무리하고만 지낸 사람은 자신이 보유한 의견의 정당성을 더욱 굳게 믿게 되며, 그 결과 반대 의견의 타당성이 드러났음에도 그 의견을 인정하거나 포용하는 데 인색한 경향을 보인다.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만 소통하는 인터넷 공동체는 마치 울림방(echochamber)같아서 자유롭게 소통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의견만을 반복적으로 듣게 된다. 울림 효과는 보강 효과로 이어지고 구성원의 편견과 아집은 더욱 견고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과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제대로 이끌어 내기 힘들다. 이런 맥락에서 유유상종의 원칙에 따라 모인 집단 내의 소통은 기존 의견의 극단화를 초래함으로써 집단 극화 현상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

이렇듯 파편화된 집단 내의 유유상종식 소통은 집단 내 의견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인터넷상에는 이런 상호 대립적이며 이질적 집단들이 다수 존재하므로 집단 간의 의견 다양성은 오히려 증가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집단 간에는 다양성의 풍요가, 집단 내에서는 다양성의 빈곤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면적 소통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나]
부산의 한 동네. 아이들이 하교한 빈 교실에 막 퇴근한 엄마·아빠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공동주택을 짓는 중이다. 입주할 집의 마감 공사를 앞두고 이날도 입주민 회의, 아니 조합원 회의가 열렸다. 공동주택 이름은 ‘일오집’. ‘14+1’에서 따왔다. 14가구가 모여 살면서 1채의 공동 공간을 함께 꾸려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얼핏 평범한 빌라처럼 보이는데, ㄷ자형으로 배치된 건물 가운데 330㎡(100평) 가까이 넓은 공간이 비어 있는 게 색다르다. 주차장일까? 아니다. 아이들이 뛰놀게 될 마당이란다. 이 집의 특징은 또 있다.

건물 두 채에 들어설 열네 집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실면적 기준으로 46㎡(14평)에서 106㎡(32평)에 이르기까지 규모부터 제각각이다. 중대형 아파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좁게 느껴질 수 있는 평수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 공간(집)을 조금 좁게 쓰는 대신 1층에 배치할 공동 공간(커뮤니티실, 창고 등)은 넓게 쓰자는 것이 이들의 기본 구상이기 때문이다. 대신 개인 공간은 한껏 개성을 살렸다. 복층 구조를 갖춘 집이 있는가 하면 하늘로 뚫린 창(천창)을 낸 집, 테라스를 거실과 부엌 사이에 둔 집 등 구조와 설계가 제각각이다.

기존 공공주택은 커뮤니티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지어져 왔다. 뉴타운이건 임대 주택이건 마찬가지였다. 마을과 이웃이 사라진 자리, 건설사가 분양한 주택에 입주한 사람들은 낯선 주거지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콘크리트 벽을 맞댄 채 살아가야 했다.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협동조합은 다르다. 서로 몰랐던 사람들일지라도 집을 짓겠다고 모여 부대끼는 과정에서 ‘관계’를 만들어가게 된다. ○○○ 씨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속한 대연동이라는 마을 또한 소중하다”라고 말했다. 정든 마을과 이웃이 있어야 진짜 좋은 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집을 짓게 되면 건설사의 일방적 드라이브도 불가능해진다. 조합원이 원하는 설계·자재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집,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집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집에 저당 잡혀 사는 삶을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막상 집을 재산 증식의 도구로 보는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이들은 앞으로 제2, 제3의 일오집을 통해 새로운 집의 비전을 제시하고 싶어 한다.

[다]
모든 과도기적 현상들, 적응과 부적응, 선도와 지체의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현시대가 지향해 가고 있는 발전의 방향은 가정, 직장, 사회, 국가, 그리고 전세계적 수준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개인성과 공동체적 시민성의 동시적 신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혹자는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성의 신장이 개인화된 전자 미디어 보급과 맞물리면서, 가족 구성원 간의 고립감과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된 생활양식, 즉 “이중적 사사화(Double Privatization)”를 가속화시키거나, 공적 생활과 단절, 자신에만 몰두하는 “사회적 파편화(Social Segmentation)”의 어두운 모습으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는 개인성과 공동체적 시민성의 관계를 수평 선상의 대립적인 양극 관계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성과 공동체적 시민성은 건강하면서도 자기 조절적인 자아에 토대를 둔 집단 정체성과 사회적 네트워크가 실현되고 이것이 다시금 하나의 주체적 개인이 탄생되는 것으로 이어지기 위한 상보적 조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개인성의 확장과 공동체적 시민성의 신장은, 점차 개선되는 노동 및 삶의 조건, 그리고 정보화 추세 속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받고 수평적 연대를 만들어 가는 등권적인 다원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추세들은 카스텔의 표현을 빌리자면,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Networked Individualism)”로 요약된다. 이는 주체적 개인의 탄생과 동일한 개념으로, 하나의 집단이 파편화된 개인으로 깨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 체계의 수직적 권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함과 동시에, 건강한 집단 정체성의 생산과 수평적 네트워크의 확장에 대한 열정을 지닌 사회 구성원으로 발전해 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라]
도시의 역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지 간에 한 가지 특징만은 변함이 없다. 그 어떤 도시들도 결국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 밀접하게 머물면서 활동하는 공간이라는 점 말이다. 끊임없이 낯선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쉽게 다가설 수 있을 정도로 그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모든 도시 거주자들의 생활에 엄청날 정도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불확실성을 안겨준다. 다시 말해 이처럼 낯선 사람들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점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수많은 불안의 원천이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분출될 수 있는 수많은 공격성의 원천이기도 한다.

또한 낯선 사람들은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에 대해 느끼던 공포들을 배출할 수 있는 편리하면서도 유용한 수단을 준다. 우리는 우리 집과 우리가 사는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을 쫓아냄으로써 불확실성에서 유래하는 불안감이라는 무서운 유령을 잠시 동안만이라도 떨쳐내려 한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공동생활의 양식을 찾는 일에 전적으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도 하나의 가능한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례가 바로 ‘믹소포비아(Mixophobia)’다. 믹소포비아, 즉 뒤섞임에 대한 공포증(이질 공포증)은 다양성과 차이로 가득한 바다 한가운데에 유사성과 동일성으로만 이루어진 섬들을 세우려는 충동으로 나타난다.

믹소포비아는 지극히 평범한 이유 때문에 생겨난다. 어쩌면 “서로 비슷해지려는 욕망을 표현하는 ‘우리’라는 그 감정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더 깊이 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회피하게 하는 방식”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라는 그 감정은 어떤 정신적 안정감을 보장한다. 실제적인 참여 활동을 회피하려는 욕망은 본래부터 공동체라는 통일된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에 내재해 있다. 공통된 경험도 없이 서로 공통된 유대감을 느끼는 일은 우선 사람들이 참여 활동을 두려워할 뿐 아니라 그 활동이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위험성과 모험을 두려워하면서 그 활동이 가져올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이처럼 “유사성을 지닌 공동체”를 추구하려는 충동은 사실 단지 외부에 있는 나와 ‘다름(Theotherness)’으로부터만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납게 요동치듯 활기 넘치며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번거롭고 복잡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내부 상황으로부터 철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후인 셈이다.

낯선 사람들이 갈수록 더 이질적이고 익숙하지 않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면 될수록, 더구나 우리 자신들의 생활 세계 안으로 그들의 특이함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서 결국에는 그러한 다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상호 간의 의사소통이 점점 더 희미해지거나 전혀 진행되지 못하게 되면 될수록, 낯선 사람들은 항상 무서운 존재로 여겨지기 쉬운 법이다. 동질적이면서도 영토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어떤 환경을 마련하려는 충동은 믹소포비아에 의해 더 촉발될 수 있다. 더구나 이처럼 영토적인 분리를 생활화하는 일이야말로 믹소포비아가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명튜브이자 자양분을 공급해 주는 원천이다.

[마]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출근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순간부터 비디오카메라에 노출된다. 주차장에도 비디오카메라가 있으며, 직장에도 폐쇄 회로 텔레비전이 있고, 현금 지급기와 편의점에서도 비디오에 노출된다. 그런데 같은 비디오카메라가 다른 용도로 쓰일 수도 있다. 내 비디오카메라가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비디오카메라는 우연한 기회에 권력의 횡포를 찍을 수도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찰이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장면도 우연히 비디오카메라를 가지고 있던 사람에 의해 촬영되어 기록에 남아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한국에서도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촬영되어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올려짐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동일한 기술이, 권력이 우리를 감시하는 데에도, 역으로 우리가 권력을 감시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논제 Ⅰ>
제시문 [가]~[라]를 비슷한 내용끼리 분류하고, 요약하시오.
[501자 이상 ∼ 600자 이하: 배점 40점]

<논제 Ⅱ>
제시문 [가]에서 제기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문 [나]~[마]를 이용하여 논술하시오.
[1,101자 이상 ∼ 1,200자 이하: 배점 60점]

>> 논제 해설
2014학년도 경희대 모의논술고사의 주제는 ‘사회적 파편화 현상’이다. 학교 측에 따르면, 인문·예체능계 문제는 인문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특정 주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통합적·분석적·비판적 사고능력과 이를 논리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 설명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출제하였다고 한다. 논제들은 제시문 분석을 바탕으로 사회적 파편화 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요구한다.

<논술 I>에서는 제시문의 중심 내용 이해를 바탕으로 비슷한 성격의 글을 분류하고 통일감 있게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해서 제시문들을, 상이한 태도를 갖는 두 부류로 묶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제시문 [가]와 [라]는 각각 인터넷과 도시 공간을 대상으로 사회적 파편화·고립화의 양상을 제시하고 있는 데 비해, 제시문 [나]와 [다]는 협동조합식 공동주택 건설 과정과 인터넷에서 개인성과 공동체적 시민성이 동시에 추구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논술 Ⅱ>는 제기된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제시를 요구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제시문에서 명시적·암시적으로 드러난 저자의 문제의식을 추출·종합하여 한 편의 글로 완성할 수 있어야 한다. 제시문 [가]는 인터넷 기술의 발달에 따른 사회적 파편화 현상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갖는 부정적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는 기술결정론적 태도를 넘어선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여러 제시문들에서 기술 변화에 개입하는 정치·경제·문화적 요소들을 추출하여 논지를 일관성 있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즉, 제시문 분석을 통해 기술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지나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 파편화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성과 시민성의 공진화 가능성이 있다는 점, 이를 위한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아래의 예시답안들은 학교측에서 제공한 것이라 평가를 생략한다. 찬찬히 읽어보고 출제자들의 시선을 포착해보기 바란다.

(논제 1 예시답안)
[가]~[라]는 사회적 관계 맺기의 방식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가], [라]는 인터넷과 도시 공간을 대상으로 사회적 파편화 양상을 살피고 있으며, [나], [다]는 협동조합식 공동주택 건설과 인터넷을 대상으로사회적 다양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즉, [가]는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자신의 취향과 일치하는 정보와 관계만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슷한 정보와 의견만을 선택적으로 공유하면서 맺게 되는 동질적 집단의 네트워크는 사회파편화를 심화시켜 자신들의 의견을 극단적으로 옹호하고 다른 의견을 배타적으로 거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라]는 낯선 사람들과 늘 부딪쳐야 하는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뒤섞임에 대한 공포증인 ‘믹소포비아’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동질적인 사람들끼리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을 거부함으로써 자신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한다.

한편 [나]는 협동조합 방식의 공동주택 건설을 통해 조합원의 개성과 고유성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적인 소통 및 공간을 동시에 확보한 예를 보여준다. [다]는 인터넷 미디어가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한 주체적인 개인성과 공동체적인 시민성을 동시에 신장시키는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논제 2 예시답안)
제시문 [가]는 인터넷 기술로 인해 네티즌들이 자기 취향에 맞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접하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거부함으로써 사회적 파편화가 가속화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질적 집단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태도는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인한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이른바 기술결정론적 태도라 할 수 있다. 기술결정론은 기술이 사회의 변화를 결정한다고 본다. 필연적인 발전 경로를 따르는 기술 변화에 의해 사회 전체가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은 스스로 진화하지 않는다. 기술 변화의 과정에는 정치·경제·문화적 요소들이 입체적으로 개입한다. 기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인터넷 기술에 대한 기술결정론적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첫째, 인터넷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며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목적과 의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제시문 [마]에서 알 수 있듯이,비디오카메라는 개인을 감시하기도 하지만,권력을 감시할 수도 있다. 인터넷 기술도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목적과 의지, 소통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다.

둘째, 개인성과 공동체성은 배타적이지 않고 유기적으로 공진화할 수 있다. 제시문 [다]에서 주장하듯이, 인터넷 기술은 개인성과 공동체적시민성의 동시적인 신장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인터넷 기술은 정보에 대한 평등한 공유와 등권적인 연대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셋째, 개인성과 공동체성의 공진화를 위한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제시문 [나]처럼 서로 다른 개성과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모이고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뒤섞임에 대한 공포증인 ‘믹소포비아’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질성을 환영하고 경험하려는 실천적인 노력밖에 없다.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한 활동에 직접 참여할 때만이 독립적이고 성찰적인 개인으로 성숙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와 의견이 공존하는 공동체로 변화할 수 있다.

유유상종의 원칙에 따라 형성된 인터넷 집단의 구성원들이 그 집단의 바깥에 존재하는 반대의견을 지닌 네티즌들과 얼마나 잘 소통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야만 다양한 견해를 접한 경험을 바탕으로 포용과 관용의 미덕을 쌓고 공동체적 다양성에 참여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