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교과형 논술 완전 정복 Ⅹ-서강대
통합교과형 논술 완전 정복 Ⅹ-서강대
  • 대학저널
  • 승인 2012.12.0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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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드림논술학원 원장 김성호

 

서강대 논술고사 문제들에 겁먹은 학생들이 많다. 한 마디로 난해하다는 것이다. 학부별 논제들을 두루 살펴보면,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실은 이건 꽤나 오래된 이야기다. 아니 서강대 논술고사 문제의 태동 무렵부터 그러했을 것이니 굳이 유래를 따져볼 것도 없겠다. 까다로운 논제는 쓰기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해설하기도 까다롭기에 지력의 소모도 크고 이에 따른 피로도도 크다. 그래서 상당히 고된 작업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서강대 논제를 다룬다.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논제들부터 다뤄왔으니, 최상급 난이도를 갖춘 논제로 한 해의 마무리를 삼는 것이 아무래도 합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서강대 논제는 왜 까다로운가? ‘눈물은 왜 짠가?’라는 작품이 떠오르네. 글쎄 눈물은 왜 짜다고 했더라? 곰곰이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는 나름대로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서강대 논제에 대해서도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종교적 미션과 관련 있는 스쿨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고, 학풍이 아카데믹하기에 그럴 수도 있겠고, 물질주의에 경도된 세상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갖게 하려는 깊은 의도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왕 주어진 조건이 그렇다면 이 도도한 명문 사학에 입학하려는 수험생들은 서강대 논술고사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지.

어째 늘 하는 말 같지만 ‘아무도 못 쓸 그런 논제는 없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보자. 사실,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라서 모두가 형편없는 답안으로 지리멸렬한다고 해도 문제가 된단 말이야. 바보들 중에서 뽑을 놈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바보가 될 테니까 말야. 학교측 이야기를 들려주지. 서강대 논술가이드북에선 이렇게 말한다. “수능 시험의 언어 영역이나 논술 시험의 제시문이 난해하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이라면, 그 난해성을 원망하기 이전에 우선 자신의 글 읽기 습관을 반성해 보고 얼마나 그 기본에 충실하게 읽는가를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알겠지? 기본에 충실한 독해력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니? 용기를 내어보자(^^;)

>> 이 달의 미션

서강대 2012학년도 수시모집 기출 문제(인문계/영미문화계/커뮤니케이션학부)로 연습해보자. 일견 어려워 보이는 문제이나 차분히 제시문들을 독해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다. 예시답안 두 개를 첨부한다. (우수답안 2)는 우수답안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제법 많은 약점을 지적받고 있다. 어떤 것이 약점인지 알게 될 때, 약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써보지 않더라도 논술문의 설계도인 개요 정도는 짜보길 권한다.
 


<문제1 : 40%, 800~1,000자>
제시문 [가], [나], [다]의 논지를 통합하여 요약·정리하고, 이를 활용하여 [라]와 [마]의 작품의 특성에 대하여 설명하라.

[가] ‘사실’은 ‘느낌’의 죽음과 더불어 시작된다. …(중략)… ‘사실’의 세계는 고름이나 패총처럼 ‘느낌’의 잔해이다.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정’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 삶과는 반대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예술 ― ‘느낌’의 잔해인 ‘사실’로부터 ‘느낌’을 되살려내는 일. 즉 패총으로부터 옛날 조개를, 고름으로부터 흰피톨을 되살리는 일. 요컨대 죽은 나무에서 꽃을 피우는 일. 그러므로 예술은 본질적으로 무모하고 어리석다.
- 이성복,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 사람들은 그토록 숱하게 욕조에 들어가면서도 몸을 담글 때 수면이 높아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질의 비중이 배수량과 관련 있음을 간파한 사람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였다. …(중략)… 사람들은 수없이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하늘이 왜 파란지에 대해선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여기에 의문을 가졌던 최초의 인물은 18세기 물리학자 존 틴달이었고, 그는 하늘의 색깔이 대기 중의 먼지나 다른 입자들과 부딪쳐 산란하는 햇빛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중략)…
무용가 애너 할프린은 “누구든 동작을 통해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용수다”라고 말했다. 마크 모리스는 일상의 동작, 예를 들어 껌을 씹거나, 으쓱대며 걷거나, 농구장에서 십대 소년들이 공을 다루는 동작을 이용해 춤을 만들어 왔다. …(중략)…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들은 눈을 치우는 삽이나 변기처럼 변형을 가하지 않은 오브제들인데, 이는 보다 충격적인 미술의 재관찰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찾아낸 오브제들은 관람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을 건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이 가장 생각을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해보라.”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생각의 탄생』

[다]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의 지각은 보통 자동적이며 습관화된 틀 속에 갇혀 있다. 특히 일상적 언어의 세계는 이런 자동화에 의해 애초의 신선함을 잃은 상태이며 자연히 일탈된 언어의 세계인 문학 언어와는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지각의 자동화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일상적 삶과 사물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퇴색하는데, 예술은 바로 이러한 자동화된 일상적 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 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 한용환, 『소설학 사전』

[라]

(※ 그림 속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마] 나는 각설이처럼 타령으로 떠돌다가 빈손으로 되돌아온 것일까, 왠지 내 의식 속의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와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한 가지 사실만이 분명하게 인식된다. 지금, 나는 쓰고 있다. 지금, 당신은 읽고 있다. 변함없는 현재. 나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이라 쓰고 있는데, ‘쓰고 있는데’를 읽는 당신을, ‘당신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 아니다, 나는 빈손으로 왔지만 빈 느낌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 이상한, 이라기보다는 자못 신비한 느낌이 든다. 지금, 나는 쓴다. 지금, 당신은 읽는다. 이 때 나와 당신은 정말 동시적인가? 당신과 나는 다른 공간의 같은 시간 속에서 이 글을 주고받고 있는가? 현실적으로는 이렇다. 지금, 나는 쓴다. 지금 씌어지는 이 소설은 얼마 후 출판사에 넘겨져 편집되고 인쇄되어 책으로 제본되고 나서 책방을 거쳐 당신 손에 들어간다. 그때 당신은 읽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쓰고 있는 지금, 당신은 읽고 있지 않다. 지금 당신은 밥을 먹고 있거나 직장에서 사무를 보고있거나 버스 안에서 졸고 있거나 화투를 치고 있거나 애인 팔짱을 끼고 걷고 있거나 다른 책을 읽고 있거나 어쩌고저쩌고하고 있거나이다. 그런데, 분명히, 다름 아닌 지금, 당신은 읽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막, ‘그렇지 않은가?’라고 당신은 읽지 않았는가? 하지만 당신이 이 소설을 읽고 있을 때, 내가 이걸 쓰고 있을리 만무하다. 그때 나는 이미 썼다. 그러니까 당신이 읽고 있는 지금, 나는 늦잠을 자고 있거나 다른 돈벌이가 없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거나 등산을 하고 있거나 술을 퍼 마시고 있거나 부부 싸움을 하고 있거나 다른 소설을 쓰고 있거나 어쩌고저쩌고하고 있거나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썼었다’라고 쓰거나 ‘당신은 읽을 것이다’라고 써야 할까? 그렇지 않다. 지금 나는 쓰고 있고, 지금 당신은 읽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이인성, 「당신에 대해서」


>> 논제 해설
문제지 2쪽에 나온 제시문 [라]의 그림을 보고 놀란 수험생들이 많을 것이다. 그림이 제시문으로 등장하는 예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늘 지치지 않고 최상급의 논술문제를 만들어내는 서강대의 학구열은 정말 대단하다. 고대 그리스의 애지자들이 보여주는 지적인 치열함을 오늘의 현실에서 목도하는 듯하다. 이기적 탐욕과 경박한 취향으로 물들어가는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탁류를 거스르려는 서강대 출제진의 열정은 라만차의 사내나 고전 속 영웅의 풍모와 닮았다. 농담이 아니다. 국회의원들도, 대기업 임원과 직원들도 심지어 다음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도 따라 출 ‘말춤’을 이들은 추지 않을 것이다. 이건 비아냥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개개인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급속하게 잃어버리며 획일화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이들은 말춤을 추고 싶어도 추지 않을 것이다. Viva Sogang!

이 논제에 담긴 출제자의 문제의식이 이런 느낌을 갖게 한다. 왜 그런지 함께 살펴보자. 현대 사회는 기술합리성이 지배한다. 자연이고 정신이고 뭐고 간에 가리지 않고 근대 과학의 도구로 해석하고 해부한다. 그래서 자연에는 그 어떤 신비도, 비의도, 비밀도, 아우라도 남지 않는다. 세계는 이제 인간 이성과 지식의 보잘 것 없는 대상일 뿐인 것이다. 기술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는 인간마저 획일화한다. 대중교육은 지성의 계발보다는 현대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산업인력 양성소가 되고 있고, 학생들은 기업주의 변덕스런 기준에 맞춰 그들의 눈에 들 만한 스펙을 쌓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광고를 보고 들으며 낚시성 기사들로 도배된 포털 사이트들에서 남들이 많이 본 기사를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비슷한 욕망을 갖는다. 대형 건설사들이 지은 ‘품격 있는’ 아파트에서 남들이 선망할 신형 자동차를 타고, 최신 태블릿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갖고 별다방에서 라떼를 마시는 삶이 대충 그런 욕망의 내용일 것이다.

그 욕망의 원천은 무얼까? 그게 광고다. 지름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 광고는 선전하는 제품(IT기기, 의류, 화장품, 자동차, 주택 등)을 갖게 되면 우리는 멋진 ‘스따일의 싸나에’가 될 수 있다고 부추긴다. 비슷한 꿈을 꾸고, 비슷한 결핍을 맛보고, 똑같이 말춤 동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비슷해진다. 아니라고 쉽게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필립 K. 딕은 안드로이드들이 과연 전기 양(Electric Sheep)을 꿈꿀까라고 물었는데, 뭐 먼 미래의 안드로이드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없겠다. 우리는 공교롭게도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며 같은 꿈을 꾸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미래예측이 앞당겨진 것을 축하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논제에 등장하는 지문들은 바로 이런 현실에 의문을 품어보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각, 기호, 느낌, 취향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들이 진짜로 너의 것이냐고 말이다. 자동화되고 습관화된 우리의 지각에 의문을 품어보란 말이다. 그럴 때, 세계는 새로운 의미로 너만을 위한 가치 있는 것으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애지자들이 들려주는 오래된 지혜이기도 하다. 서구 문명을 근본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한 헬레네 노르베리 호지는 라다크라는 순박한 땅에서 오래된 동양적 지혜를 빌어 그런 말을 하고, 버트런드 러셀은 우리가 이런 의문을 품고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애쓸 때(철학하기), 이 답 없는 구도의 결과로 우리의 정신은 우주만큼이나 위대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철학의 가치). 그에 따르면 철학의 목적은 이 세상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제시문들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예술이 자동화된 일상적 인식의 틀을 깨고 세상을 낯설게 보여주려는 이유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수답안1)

제시문 [가], [나], [다]는 모두 예술이 일상적 삶이나 사고방식 혹은 자동화되고 습관화된 틀 속에 갇힌 지각과 반대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시문 [가]는 일상적 삶이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정으로 가는 끊임없는 이행이라면 예술은 그 반대로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정에서 위험으로의 과정을 취해야 한다고 본다. 이와 비슷하게 제시문 [나]는 아르키메데스나 존 틴달의 예를 들면서 일상적 사고방식에서 역행하여 익숙한 사물, 현상을 볼 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제시문 [다]는 예술의 목적이 자동화된 일상적 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 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제시문들의 공통적인 논지를 종합해서 제시문 [라], [마]의 작품을 보면, 소개된 그림이나 소설은 모두 새로운 시선의 의미를 청자들에게 생각하게 하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시문 [라]의 그림은 분명 파이프를 묘사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래쪽 텍스트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관람객들은 파이프 그림을 보며, 왜 이것이 파이프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림은 실제 파이프가 아닌데도, 파이프와 꼭 닮은 그림 자체를 파이프라 생각하는 자신의 생각의 습관을 한 번쯤은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제시문 [가]에서 말하듯 일상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사물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관람객이 마주하게 되는 낯선 체험은 제시문 [마]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경험하게 된다. [마]에서 화자는 자신이 쓰고 있는 시간과 독자가 읽는 시간의 동시성과 개별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자신이 쓰고 있는 시간이 ‘지금’이고 독자가 읽고 있는 시간 또한 ‘지금’이면 과연 이것이 동시적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체 의심해보지 않았던 신선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우리의 일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라], [마]는 모두 현대인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한 나머지 의식 없는 로봇처럼 틀에 박힌 사고에 사로잡힌 현실을 성찰하고 세상의 신비와 본질을 생각하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되찾아 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평가)
흠잡을 데 없이 잘 쓴 답안이다. 주된 논지가 논제의 취지를 꿰뚫고 있다. 제시문들에 대한 독해가 매우 정확한 인상을 준다. 논제가 묻는 것들에도 명료하게 답하고 있다. 각각의 지시사항에 응답하는 내용을 별도의 단락으로 처리한 것이 논지의 가독성을 높여준다. 첫 번째 문단의 서두에서 제시문들의 공통 논지를 정리해준 것이 좋았다. 적지 않은 답안들이 ‘습관적으로’ 각각의 제시문을 요약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 답안처럼 공통점을 먼저 제시한 후에, 각 제시문 내용을 약술하는 편이 좋다. 즉 숲의 모양을 보여주고 나서 나무를 묘사할 때,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더욱 쉽고도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문단의 도입부 처리도 좋다. 윗 문단에서 서술한 내용과 호응하면서 자연스럽게 [마] 제시문 설명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 문단 마지막 부분에서 [라], [마]를 묶어서 특징과 의의를 정리해준 것도 좋은 마무리 감각을 보여준다. 이런 정리 없이 [마] 설명에서 끝내는 답안들이 많다. 그런 글들은, 글을 논리적으로 맺지 않은 미완성의 글이라는 느낌을 준다.

(우수답안2)
예술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근본은 평범하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고 새롭게 표현해내는 것이다. 제시문 [가], [나], [다]도 예술의 목적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 같지만, 단지 표현하는 방법과 대상이 다를 뿐, 그 궁극적 목적은 모두 동일하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느낌’이 죽어버린 ‘사실’에 기반한 일상적인 삶을 산다. 예술은 이러한 ‘사실’에 다시 ‘느낌’을 불어넣으려 한다. 즉,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적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상태에서 불안한 상태로의 이행을 통해, 예술은 일상적인 것들을 새롭고 낯설게 탈바꿈시킨다. 이렇게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면 사물에 대한 재관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사물에서 보지 못했던 특별한 의미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의 삶을 살며 점차 주변 사물들에 익숙해져 간다. 일종의 일상적 인식의 틀을 형성하는 것이다. 사물을 새롭고 낯설게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틀을 깨야 한다. 이렇게 틀을 깨고 새롭고 낯설게 사물을 표현해냄으로써 익숙함 속에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다.

이러한 예술의 근본적 목적 즉, 낯설게 하기는 아래 제시문 [라]와 [마]에 소개된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에 소개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이미지의 배반>은 낯설게 하기란 무엇인지 아주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고 보아왔던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림 하단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음으로써 감상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익숙한 사물을 새롭고 낯설게 표현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익숙한 사물이었던 파이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낯설게 하기는 [마]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평소에 글을 읽을 때 글쓴이가 글을 쓰는 시점과 내가 글을 읽는 시점의 연계성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다. 글쓴이는 이러한 익숙함을 거부하고, 작가가 글을 쓴 시간과 독자가 글을 읽는 시간이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낯설게 표현함으로써 주고 있다.

(평가)
매우 참신하고 개성이 담긴 답안이란 인상을 주는 글이다. 대개의 논술 답안들이 다소 기계적으로 제시문들을 요약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시문들의 공통 논지 위주로만 서술한 점이 이런 인상을 낳게 한다. 말하자면 의식적으로 가다듬지 않은 듯한 이런 서술이 오히려 날것 그대로의 독해능력과 사고능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공통 논지를 서술한 두 번째 문단의 내용을 보면, 이 학생이 개별 제시문들의 취지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제의 두 번째 요구사항인, 작품 설명을 수행하는 세 번째 문단의 내용도 논제의 취지에 부합한다. 핵심 서술이 앞에서 정리한 논지의 관점에서 정확히 수행되고 있다. 주요 논점의 변화에 따라 문단도 잘 구분되어 논지의 가독성도 높다.

하지만, 이 답안은 적지 않은 약점들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외견상의 약점은 표현의 중복이다. ‘익숙한 사물을 새롭고 낯설게 표현함으로써’와 같은 표현들이 계속적으로 등장하여, 글의 내용이 빈곤하다는 느낌을 준다. 다양한 측면을 풍부한 용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장 표현상의 부주의와 약점은 모호한 표현들에서도 드러난다. 마지막 문장에서 ‘시간이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라는 표현은 지시하는 바가 명료하지 않으며, ‘생각할 기회를, 낯설게 표현함으로써 주고 있다’는 표현도 매우 부자연스럽다. 의도를 바르게 전달할 수 있도록 문장을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하겠다. 논지의 전개와 구성 측면에서도 약점이 나타난다. 이 답안에서 당연히 전제하고 있는 ‘사물을 낯설게 보는 효과’의 이유가 실은 제대로 서술되지 않았다는 것이 논지 전개의 약점이라 하겠다.

즉, 예술 작품들이 세계와 사물을 낯설게 보게 하는 이유 자체를 진지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이런 예술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언지 설명을 해야, ‘낯설게 하기’의 의의가 설득력 있게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반복 표현들을 줄이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라]와 [마]의 의의를 묶어주는 결론을 서술해주었더라면 글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이 평가글을 ‘읽는(^^;)’ 학생들은 이런 약점들을 확인하면서 다시 한 번 예시답안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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