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달인-수학표류기 1탄
수학의 달인-수학표류기 1탄
  • 대학저널
  • 승인 2012.04.0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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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가 시작됐다.

 

난 중학교 내내 놀이꾼이며 말썽쟁이였다. 친구들과 마냥 노는 것이 좋았다. 부모님의 말씀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공부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 필기라는 것은 내 생각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신 시험 때면 엄마가 내 공부를 열심히 하셨고 난 엄마가 하신 공부를 적당히 넘겨받아서 시험을 쳤다. 내 세상은 그랬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참 편한 세상이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라면? 아마 지금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기준으로 한다면 절대로 돌아가기 싫다. 아니 돌아가서는 안 되는 시절이다. 그 때는 나름 행복하고 걱정 없는 시절이었지만, 그건 내 삶의 재앙의 시작이었고, 수학의 표류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표류 첫 날 아침
인수분해가 안 돼 !!

32명 정도, 이것은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의 학생 수였다. 난 끝에서 3등~5등을 왔다갔다 했다. 꼴지가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지만, 내 삶을 놓고 보면 천만다행은 분명 아닌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런 낭패가 어디 있을까? 인수분해가 잘 되지 않았다. 중학교 때 배우긴 했던 것 같은데 공식도 가물가물하고 도대체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뭔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했는데 또 좌절인가?
아, 그리고 필기는 왜 이렇게 힘들지? 그 이유가 중학교 때 내가 열심히 필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그래도 열심히 공식을 마구 외우고 또 외웠다. 도대체 이 공식으로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냥 외웠다. 너무 뿌듯했고, 이번에는 뭔가 다른 것 같았다. ‘내가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매순간 들었다. 내 인생에도 뭔가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난 뭐가 아주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학은 ‘한글 받아쓰기’가 아니었다. 공식을 외워서 써보라는 것은 어느 문제에도 없었고 단지 이런 말들만 있을 뿐이었다. ‘다음 문제를 푸시오.’ 공식을 외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었다. 참 기막힐 노릇이었다.

표류 첫 날 점심
배는 고픈데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배가 고프다. 먹어야겠는데 뭘 먹어야 할 지 모르겠다. 수학 공부도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뭘 해야겠는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학교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건 뭐 수업 중 이해 안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답답하다. 뭔가 시작은 해야겠는데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 나타나서 나를 마구 끌고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그것만 하면 좋겠다’라는 것만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수학이 힘든 것은 알았지만 참 힘들다. 그래도 수학을 포기하면 제대로 된 대학을 가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그럴 수도 없다. 중학교 때 열심히 놀러 다닌 것이 참 후회된다. 다시 돌아가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미 지나 간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 순간에도 친구들과 주말에 만나서 뭘 할지 생각하고 있다. ‘나라는 녀석은 도대체 뭐지?’ 배가 아니, 수학이 고픈데 뭘 먹어야 할 지 모르겠다.

표류 첫 날 오후
배고픈 것도 좀 적응되니 그렇게 먹고 싶지가 않아.

 

한동안 계속 됐던 수학에 대한 고민도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무감각해지며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서 ‘고등학교 수학은 참 어렵다’라는 얘기들이 쏟아져서 어느 정도 위안도 된다. 왜냐면 내가 수학을 못하는 것이 나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수학이 어렵다고 하니 그 부분도 분명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적으로 나 자신만의 이유로 인해 수학을 못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적표에 나와 있는 점수가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성적표 어디에도 ‘고등학교 수학은 원래 어려우니 그것을 감안하고 수학 성적을 살펴보세요’라는 구절은 없었다. 그냥 숫자 하나만 덩그러니 쓰여 있는 게 전부였다. 뭔가 불안했다. 불만족스러운 상황은 맞는데, 만족스럽게 바꾸기 위한 노력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계속 익숙해지는 느낌.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표류 첫 날 저녁
어둠이 몰려오니 불안함이 더욱 엄습해 왔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왠지 모를 불안함이 밀려왔다. 분명한 것은 뭐가 아주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학 공부를 하고 있기는 한데, 이게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뭘 별다르게 할 만한 뾰족한 수도 없고, 머릿속은 계속 복잡해지고, 정말 미칠 지경이다. 불안함을 잊으려 친구들을 만나서 신나게 놀았지만 그때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엔 여전히 그놈의 불안함은 어디 가지도 않고 또 내 곁에 따라 붙었다.

어둠이 지나면 해가 다시 떠오른다고 했는데, 내 어둠은 해는커녕 더 큰 어둠을 몰고 올 기세처럼 느껴졌다. 이유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이 늘어갔다. 엄마와 아빠의 얘기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 별명을 ‘욱’이라고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난 계속 어둠에 갇혀서 이대로 침몰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 글은 4년 간 지켜본 어느 고등학교 남학생의 기록들에 근거한 실화다. 이 학생은 다시 재수를 준비하고 있는데, 4년 째 되는 올해 수학에 있어 표류가 끝이 나려는 징후들이 보이고 있다. 수학 공부를 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할 지 선택 때마다 고민에 빠졌던 이 친구의 표류 생활을 들여다보면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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