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 한국외대 윤선경 교수 “한강은 채식주의자의 작가, 데보라 스미스는 The Vegetarian의 작가”
[ IN-ter-VIEW ] 한국외대 윤선경 교수 “한강은 채식주의자의 작가, 데보라 스미스는 The Vegetarian의 작가”
  • 백두산 기자
  • 승인 2021.02.0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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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번역은 영미권 문화 사대주의…원본의 신성성 깨야”
“문학 번역가는 좋은 작가…작가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번역가에게도 필요”
지난 5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만난 윤선경 교수는 대학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번역"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한국외국어대에서 만난 윤선경 교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번역"이라고 말했다.

[대학저널 백두산 기자] 2016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수상 이후 오역논쟁에 휘말렸다. 번역 과정에서 삭제, 압축, 변형 등이 지나치게 많이 이뤄졌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윤선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통번역학부 교수는 데보라 스미스의 ‘The Vegetarian’의 번역을 두고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번역이라고 말한다.

‘The Vegetarian’은 페미니즘 의식을 담고 있는 여성 작가 한강의 소설을 번역 텍스트로 선택했다는 점, 한국어 원본의 페미니즘 정신을 살리면서 동시에 강화했다는 점, 한국어 원본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원본을 변형시키며 개입했다는 점 등에서 페미니니즘 번역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채식주의자의 오역논쟁은 권력의 문제이자 정치의 문제”라며 “오역논쟁은 번역이 원본의 명성을 뛰어넘을 때 생긴다”고 말했다.

데보라 스미스의 ‘The Vegetarian’이 페미니즘 번역이라 주장한 윤 교수를 만나 페미니즘 번역과 국내 번역계의 쟁점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2016년 맨부커상 수상 이후 영어판 The Vegetarian을 두고 오역논쟁이 벌어졌다. 오역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번역 과정에서 오역이 발생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다만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수상을 한 작품들이다. 즉 번역이 원본보다 유명해진 작품일 때 논쟁이 벌어졌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경우 2012년 맨아시아 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 원본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오역논쟁이 벌어졌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맨부커상 수상 이후 논쟁이 벌어졌는데, 결국 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데보라 스미스의 오역논쟁은 분명 오역이 빌미를 준 것은 맞지만 본질은 오역이 아니다. 번역본이 상을 받으면서 원본의 위상을 뛰어넘었다는 점이 사람들의 불편함을 불러일으켰다고 본다.
 

The Vegetarian을 두고 삭제, 압축, 변형 등이 지나치게 많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서양의 차이이기도 하고 시대의 차이이기도 하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영미 국가들보다 번역의 충실성에 더 엄격한 편이다. 이는 원본에 대한 신성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실, 번역의 역사를 보면 중세 시대에는 원본과 번역의 구분이 없었다. 즉 원본의 우월성이 없던 것이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원본의 독창성(originality)이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면서 원본이 중요해졌다. 그러면서 번역은 원본의 아류라는 평이 생기고, 절대로 삭제, 압축, 변형 등이 이뤄져서는 안됐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도 최근에는 많은 변화가 이뤄져 번역자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는 추세다. 번역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꼭 직역만이 답은 아니다. 압축과 변형, 삭제를 하더라도 원본이 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유지돼야 한다. 오히려 국내 번역의 경우 문화 사대주의가 강해 직역을 하다가 한국어 자체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번역자는 하이브리드 공간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소수문화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 번역이 된 언어의 문학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두 언어와 문화가 섞여 있는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번역돼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 방식은 영미 문화권에서 흔한 방식의 번역으로 두 언어와 두 문화가 창의적으로 잘 섞인 좋은 번역의 예라고 볼 수 있다.
 

대학저널과 인터뷰 중 답변하고 있는 윤선경 교수.

최근 ‘채식주의자’를 페미니스트 번역의 관점에서 해석한 논문을 게재했다. 페미니스트 번역이 무엇인가.

페미니즘 번역은 캐나다 퀘백에서 1980년대에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번역 방식이다. 처음에는 불어로 제작된 페미니즘 책의 내용을 훼손 없이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시작됐는데 이후 가부장제, 여혐 등에 대해 반대하는 번역 방식으로 발전했다. 급진적 번역의 경우에는 원본이 페미니즘 책이 아닌데 이를 페미니즘 형식에 맞춰 바꾸기도 한다.

쉽게 말해 남자는 원본처럼 권력이 있고 중요하지만, 번역은 여성처럼 의존적이고 나약하고, 열등하게 보는 관점에 반대하는게 페미니즘 번역이다. 여성과 번역의 동일시, 번역의 충실성에 대한 반대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흔한 예로, 번역을 설명할 때 여성을 빗대어 설명하는데, 좋은 도착어로 번역이 되면 ‘예쁜 번역’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번역에 따르면 번역가의 ‘재창조’는 필수적이다. 원본중심적 번역과 독자 수용 중심적 번역을 넘어선 제 3의 방식으로 보이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앞서 언급했던 하이브리드 공간이 이를 설명할 수 있다. 원본중심적 번역과 독자 수용 중심적 번역 두 가지를 두고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 3의 방식은 그 사이의 공간이다. 어느 쪽에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지대에 있는 번역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소수자를 존중하는 번역으로, 영어와 한국어가 있다면 한국어를 조금 더 중점에 두고자 한다. 이러한 특징을 종합해보면 권력저항적 번역이 그 지향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단어나 문화의 이질감 해소를 위해서는 번역가의 역량이 중요하다 생각되는데, 좋은 페미니즘 번역가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 있는가.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단어의 선택, 문장 구조 등 번역의 정치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 권력에 예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좋은 번역을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문학 번역가는 좋은 작가가 돼야 한다. 즉 한강은 ‘채식주의자’의 작가이고, 데보라 스미스는 ‘The Vegetarian’의 작가인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맨부커상 수상에서도 잘 나타난다. 원작자와 번역가의 상금이 동등했는데, 이는 ‘채식주의자’가 수상하는데 있어 작품에 대한 크레딧이 동등했음을 인정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차원에서 얘기하자면, 좋은 번역가가 되기 위해서는 작가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작가는 아이디어가 자신의 머리에 있는 것이고, 번역가는 아이디어가 글에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번역가 또한 글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문학번역은 단순한 직역이 아니라 번역가의 해석이 필요한 작업이다. 문학에 대한 이해, 숨겨진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더 좋은 번역가가 될 수 있다.
 

번역 시장이 많이 어렵다. 교육가이자 번역가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학번역은 한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크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경우만 봐도 영미권 국가에 한국이라는 나라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해서도 알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국가의 번역가에 대한 지원이 빈약한 상황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

최근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국민들의 문화적 자부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화적 사대주의도 깨져 번역의 충실성에 대한 집착도 깨지기를 바란다.

번역된 작품의 작품성은 결국 충실성과 가독성을 포괄하는 것이다. 직역이 충실성을 담보해 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가독성을 담보해 주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가 또한 기계적 번역에서 벗어나 작품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원작의 메시지는 살리되 도착언어 국민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해야 하는 것이다.

번역가의 역할은 단순히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다. 재창조를 통해 독자와 작품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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