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집] 노벨상 프로젝트 “아직 늦지 않았다”
[창간 특집] 노벨상 프로젝트 “아직 늦지 않았다”
  • 이승환 기자
  • 승인 2020.10.2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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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못 타나”…응용과학 중심, 근시안적 정책, 보수적 연구문화 등 매년 거듭되는 문제
“노벨상 ‘먼 이야기’ 아니야”…연구개발(R&D) 투자 비중 세계 수위권, 유력 과학자 다수 거론
대학과 기업의 기초과학 육성, 적극적 과학 외교, 젊은 과학자 양성 위한 상향식 연구문화 정착 과제

‘노벨상’은 ‘넘을 수 없는 산’일까. 매년 10월 노벨상 시즌을 앞두고 가졌던 일말의 기대는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다. 노벨 평화상만 단 한 차례 수상했을 뿐 지난 120년 간 과학 분야 노벨상을 한번도 수상하지 못한 것에 국민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과학계’는 한동안 침울해진다.

<월간 대학저널>이 창간 11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집 ‘노벨상 프로젝트, 아직 늦지 않았다’는 한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이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살펴본다. 과학자 출신 국회의원으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을 위해 다방면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기초과학 분야 육성을 위한 입법활동에 나서고 있는 조명희 국회의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벨상 수상 가능성과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점검한다. 아울러 24명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사례를 소개한다.

<특별 취재팀>

“노벨상 수준에 근접한 과학자들이 많이 생겼다. 우리 과학기술 수준이 높이 올라간 것이다. 훨씬 뛰어난 후배 과학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

“한국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 때문이다. 15년 내로 노벨상 수상자 지형도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단, 한국 등 아시아에 뿌리내린 유교적 관습은 버려야 한다.”

(스반테 린드크비스트 前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장)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기대를 모았던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 그리고 최근 ‘How to win a Nobel Prize’ 주제로 KAIST 개교 50주년 기념 특별강연에 나선 스반테 린드크비스트 교수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과학 분야 노벨상을 이제껏 수상하지 못한 한국의 현실뿐 아니라 가까운 미래 수상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렇다.

24대 3대 0...초라한 성적표

노벨상의 달 10월. 올해도 여지없이 노벨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어디에도 ‘KOREA’는 없었다. GDP 규모 세계 12위, IT 강국,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인 국가적 위상과 달리 노벨상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다.

한국연구재단이 올 9월 발표한 ‘R&D 브리프 - 노벨 과학상 수상자 통계 분석’에 따르면 2019년까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총 616명. 국적별로는 미국이 271명, 영국 90명, 독일 70명이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24명, 중국은 3명을 배출했다. 가까운 일본이 약진하고 있는데 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한 우리나라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한강의 기적 재현하자”
세기 넘어 이어온 기초과학 육성 노력

“일본도 받는데 우리는 왜”라는 자조와 비판 속에서도 사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꾸준히 추진돼 왔다. 김영삼 정부는 ‘노벨상 수상을 위한 국가전략적 도전’을 선언하며 1995년 고등과학원을 설립하고 2020년까지 기초과학을 7대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했다. 1980년대부터 기초과학 투자가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적극적인 투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0년대 국가연구개발비가 조 단위를 넘어서며 본격화됐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세계 최고 수준 기초과학 연구를 위해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했고, 박근혜 정부도 2015년 기초연구 패러다임을 세계 선도형으로 전환하고 세계 톱 클래스 과학자를 10년 내 1천명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노력에 발맞춰 1999년부터는 단계별 ‘BK21(두뇌한국 21)’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2011년부터는 국내 대학원의 학술·연구역량을 높이고 세계적 수준의 박사급 연구인력을 키우는 ‘글로벌 박사 양성사업’도 전개하는 등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성과도 가시적이었다. 철강과 조선, 반도체 분야에서 단기간 급성장하며 경제발전을 이룬 ‘한강의 기적’을 재현하듯 기초과학에서도 한국은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국내 과학자들이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도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30~40년 전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정부 또한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비 투자를 통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국내 과학자 중 유력한 노벨상 후보가 매년 거론되는 것은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 하지만 과제 또한 여전하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없는 5가지 이유’

네이처는 2016년 ‘왜 한국은 세계 최고의 연구개발 투자국인가?(Why South Korea is the world’s biggest investor in research?)’ 제목의 글에서 ‘한국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없는 이유’ 다섯 가지를 소개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도출이 어려운 조용하고 보수적인 연구실 분위기, 기업에 의존하는 R&D 투자, 시류에 편승한 지원과 투자, 해외로의 인재 유출, R&D 투자 규모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논문 수 등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내년에 27조원을 돌파할 예정이고 기초연구 예산 또한 매년 증가해 2조원을 넘었지만,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응용과학 중심 투자 △근시안적 과학기술 정책 △인재의 해외 유출 등을 지적한다. 과학인재 양성에 걸림돌이 되는 입시 위주 교육환경, 과학 외교의 부실함도 문제로 꼽힌다.

노벨상 수상자에게 ‘답’이 있다

국가 발전의 지표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노벨상 수상은 상의 권위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을 쌓은 학자에게 수여하는 과학 분야 노벨상의 경우 국가 경제와 경쟁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그렇다면 현택환 교수가 언급한 뛰어난 ‘후배 과학자들’이 스반테 린드크비스트 교수가 밝힌 ‘15년 이내’로 한국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어떤 준비가 선행돼야 할까.

최근 10년간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은 수상자 77명은 평균 37.7세에 핵심연구를 시작해 55.3세에 완성했고 69.1세에 노벨상을 받았다. 연구를 시작해 노벨상을 받기까지 32년이 걸렸다.

젊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안정적으로 지속하며 창의성을 발휘할 환경을 갖추는 게 급선무다. 기초과학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장기적 지원 또한 필요하다. 기초과학 연구 역사가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일본에 비해 반세기 이상 뒤처짐을 인정하고 긴 호흡으로 연구자들을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 ‘짧고 굵게’ 보다는 ‘가늘고 길게’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1950년대를 기점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증가한 이유는 공동수상자가 많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연구 비중이 개인보다는 팀 위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2명 이상 연구자들이 협업해 연구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연구진 구성과 뒷받침이 필요하다. 한 명의 교수가 연구와 강의, 학생 취업 지원, 회계 처리까지 모든 업무를 책임지는 우리나라 환경에서 팀 위주 연구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기초과학 분야, 대학과 기업의 협력과 지원 필요

대학과 기업은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응용과학 분야뿐 아니라 기초과학에도 관심을 두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와 관련 현택환 교수의 노벨상 수상을 유력하다고 밝혔던 글로벌 학술정보 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한국의 많은 과학자가 세계 수준 연구를 하지만, 기술 혁신을 가져올 대학과 기업의 연구 협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입시 위주 교육풍토 개선도 과제다. 매년 국제 과학올림피아드 등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뽐내던 이공계 영재들이 연구자로 성장하는 대신 법대나 의대로 진학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한국인과 종종 비교되는 유대인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지난해까지 184명이었음을 보면 국내 중 ·고등교육과 입시 제도에 문제가 있음이 자명하다. 올해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중 과학자는 13순위다.

‘과기・IT 대사’ 신설 등
적극적 과학외교・국제협력네트워크 공고화 노력

정부 차원의 과학기술 외교 활성화 노력도 요구된다. 조명희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국제 공동연구는 총 182건. 이중 노벨상 주최국인 스웨덴과의 연구는 단 8건, 4.4%에 불과했다. 반면 24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현지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담당관을 임명하는 등 스웨덴과의 과학기술 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과학외교의 마중물이 될 국제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고 국내 과학자의 연구성과를 해외에 홍보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올해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국가 과학기술의 대외적 위상 강화 차원에서 과학 외교 활성화를 위한
‘과기 ・ IT 대사’ 신설 필요성도 거론됐다.

‘추종자’에서 ‘선도자’로…
노벨상 프로젝트 추진, “아직 늦지 않았다”

노벨상은 특출한 한 명의 과학자가 내로라할 연구 단 한 건으로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니다. 연구의 시작부터 수상까지 30년 넘게 걸릴 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장기간에 걸친 전방위적 지원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행히 노벨상 수상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는 긍정적 시그널도 있다. 네이처는 올 5월 ‘네이처 인덱스 2020 한국 특집호’에서 “한국의 GDP 대비 R&D 지출 비중이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라며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가 아닌 선도자(First Mover)가 되겠다는 목표가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5년전 고언(苦言)과는 사뭇 다르다. 그간 기초과학 분야에 집중 투자한 정부의 노력이 ‘선도자’의 위치에 오른 바탕이 됐음을 평가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세계와 겨뤄도 손색 없는 과학자들도 잇달아 배출되고 있다. 현택환 교수를 비롯해 서울대 김빛내리 교수, UNIST 김광수 특훈교수 등은 세계적인 연구성과로 주목 받으며 과학 분야 노벨상 후보로 매년 이름을 올린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어쩌면 노벨상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추진은 이제부터다. 120년의 기다림을 끝맺을, 밤을 낮으로 밝히며 연구에 매진해 온 한국인 과학자가 다가올 어느 해 10월, 노벨상 수상자로 호명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일본은 어떻게 노벨상 강대국이 됐나?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난 올해 노벨상 수상. 노벨 화학상에 한국인 유력 후보자가 있어 더 관심을 끌었지만 여지없이 올해도 비켜갔다. 일각에서는 노벨상을 ‘서구인 잔치’라고 말하지만 일본을 보면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일본 역시 2018년부터 최근까지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지만 2000~2002년, 2014~2016년에 걸쳐 두 번이나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에서는 현재까지 총 24명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그렇다면 일본이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다수 수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순수 학문 연구에 막대한 인적 · 물적 투자를 한다는 점을 짚을 수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열강에 합류했던 나라다. 그 과정에서 군사기술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후 많은 유학생을 서양에 보내 화학, 의학, 물리학 등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들은 차후 일본 기초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고, 그 원동력이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패전 직후에도 일본은 기초과학 육성을 국가 재건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실험 시설에 투자하는 등 장기적인 지원책을 폈다. 지방 국립대에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기초과학 교육을 강화했으며 과학 선진국에 연구자를 대거 파견해 이론·기술 습득 및 도입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지식 수입은 1970년대를 넘어서며 자체적인 기초과학기술 육성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1990년대 초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고 5년에 한번씩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책정해 집중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은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적 뒷받침을 통해 기초과학 육성을 이어왔고, 노벨상 수상이라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연구에 매달릴 수 있게 지원하는 구조, 변화에 민감하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는 성향 등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배경 중 하나다. 제자가 스승의 연구를 계승하고, 원로 교수와 젊은 교수가 연계되는 도제식 시스템도 장점으로 작용됐다. 인적자원이 이어지기 때문에 연구의 지속성이 확보된 것이다.

이런 배경이 일본을 노벨상 강대국으로 만들었지만 내향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적 특수성은 한계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을 위한 연구가 아닌, 연구의 성과가 노벨상으로 드러나게 하는 지속적인 정책적 뒷받침은 일본을 노벨상 강대국으로 만든 가장 주목할 만한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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