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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주제 배경지식 심화 이해-현대 산업사회의 소비주의 비판
김성호의 논술의 핵심-통합교과형 논술 완전 정복
2018년 05월 29일 (화) 13:29:07

이 달의 미션

   
 

지난호에 이어 현대 사회에 만연한 소비주의와 욕망에 관한 논제를 살펴보자. 지문의 양이 많아 주제에 대한 배경 지식은 생략한다. 제시문들이 각기 별개의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논제라 논점을 포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변별력이 상당한 문제라 하겠다. 침착하게 문제를 읽고 나서 출제자의 관점에서 각각의 제시문을 독해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은 채 무작위로 선별된 제시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로 답안이 정돈될 수 있도록 개요를 잘 짜야 한다. 서론, 본론, 결론의 구성을 명시적으로 요청하지 않으나 글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각 문단의 기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자 아래 제시문과 문제를 읽고 답하도록 하자.

[가]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나]
나는 정확한 단어를 찾고 싶은 충동으로 인해 이탈리아에서도 똑같은 시도를 했다. 동의어 사전을 살펴보고 수첩을 뒤적였다. 아침에 신문에서 새로운 단어를 보면 바로 적용해 보았다. 하지만 내 글을 처음 읽은 독자들은 종종 고개를 저으며 “울림이 없네요.”라고 간단히 말했다. 내가 사용하고 싶은 단어가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거나, 너무 저속하거나 너무 세련된 어조의 단어이거나, 밋밋하고 과도한 대화체의 단어라고 말했다. 단어의 배열도 실제와 다르며, 구두법도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당연히 정확성도 떨어졌다. 이탈리아어로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나는 첫 독자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충고를 따라야 했다.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말을 빼고 다른 말을 찾아야 했다. 내가 선택한 단어를 옹호할 수는 없었다. 이탈리아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맞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탈리아어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귀머거리에 장님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어휘력이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어색한 구석은 남아 있다. 구시대적인 긴 치마에 티셔츠를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슬리퍼를 신은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런 뒤죽박죽된 어조는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와 이탈리아어 사이에 있었던 거리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이탈리아에 와서 살기 전 수년 동안 멀리서 여러 텍스트를 통해 이탈리아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어 글을 읽는 지금 내 어휘는 각자 다른 스타일로 글을 쓰는 여러 시대의 작가들의 어휘가 혼합되어 형성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조르조, 엘레나, 자코모의 단어들을 구분하지 않고 수첩에 열거해 놓았다. 프랑스어로 글을 쓰다 보면 특정한 스타일 없이 글을 쓰게 된다고 베케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내 이탈리아어 글은 밋밋한 맛의 빵과 같다. 의미는 통할지 몰라도 독특한 맛이 없었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 나는 그것 또한 스타일, 하나의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스타일이 부족한 게 아니라 스타일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아닐까 한다. 스타일이 지나치게 많아서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이탈리아어에서 내게 부족한 것은 날카로운 시각이다. 날카로운 시각이 부족해서 난 특정한 스타일을 가다듬을 수 없다. 게다가 나는 특정한 스타일을 포착할 수도 없다. 내가 어쩌다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낸다 해도 왜 아름다운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탈리아어에 있어서 나는 아직 아는 것이 많지 않은 작가, 내가 변장했다는 것만 아는 작가이다. 사실 나는 엄마의 옷장에 몰래 들어가 하이힐을 신어보고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보석과 모피코트를 걸쳐 보려는 어린아이와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 야단을 맞고 내 방으로 쫓겨 가지 않을까 두렵다. “좀 더 기다려야 해.”하고 엄마가 말할 것이다. “이 옷은 네가 입기엔 너무 커.” 엄마 말이 맞다. 나는 엄마 신발을 신고는 편안하게 걸을 수 없다. 목걸이는 너무 무겁고 거추장스럽다. 모피코트는 우아하지만 입으면 땀이 난다.
이탈리아어를 깊이 있게 탐색할 수 있는 파베세의 능력이 그저 부럽다. 나도 이런 깊은 성찰을 통해 탐색을 했다고 생각한다. 언어를 탐색해 발견해내면서 나 자신에 대해 탐색했다고. ‘sondare’라는 동사는 ‘탐구하다(esplorare)’, ‘조사하다(esaminare)’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뭔가를 깊이 있게 측정하다(misurare la profondità)’를 의미한다. 내 사전에 따르면 이 동사는 ‘뭔가 특히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도를 알고 이해하려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은 분리, 불확실을 내포한다. 침투 상태를 품는다. 늘 밖에 남아 있는 어떤 것을 세심하고 적절하게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 계획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적절한 동사이다.

[다]
돈을 받고 대리로 줄서는 관행은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최근 중국을 방문하는 동안 베이징 소재 일류 병원에서 대리 줄서기 사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중국에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된 시장 개혁의 결과, 특히 지방 공립 병원과 진료소에 대한 자금 지원이 삭감되었다. 따라서 지방에 있는 환자들은 수도에 있는 주요 공립 병원까지 원정을 와서 접수창구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어야 한다. 그들은 의사와 진료 예약을 하기 위해 밤새, 때로는 며칠 동안 줄을 선다. 진료 예약권은 14위안(약 2달러)으로 저렴하지만 손에 넣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의사의 진료를 급하게 받아야 하는 일부 환자들은 며칠씩 줄을 서는 대신 암표상에게 예약권을 산다. 암표상은 수요와 공급 사이에 크게 벌어진 틈을 이용해 돈을 번다. 그들은 사람을 고용해 줄을 세워 예약권을 받고 이를 수백 달러에 판다. 이는 일반 농부가 몇 개월 동안 일해서 버는 수입보다 많은 금액이다. 일류 전문의의 진료 예약권은 특히 귀해서 마치 월드시리즈의 박스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암표상에게 빠르게 팔린다. ≪LA타임즈≫는 베이징 병원의 등록창구 밖에서 벌어지는 진료권 매매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닥터 탕, 닥터 탕, 닥터 탕의 진료 예약권 사세요! 관절염과 면역 전공의입니다!”
진료 예약권 암표 판매의 관행으로 보상을 받는 사람은 진료 제공자가 아니라 중개인이다. 관절염 환자의 진료 예약권이 100달러라면, ‘닥터 탕’은 예약권 판매금의 대부분이 자신이나 병원이 아닌 암표상에게 돌아가는 이유를 따져 물어야 마땅하다. 경제학자라면 이 점에 동의하고 병원에 진료비를 인상하라고 조언할지 모른다. 실제로 베이징 소재 병원들은 진료비용이 좀 더 비싸면서 줄이 훨씬 짧은 특별 진료 예약 창구를 설치하고 있다.
전문의의 진료를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는 권리에 추가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두고 많은 경제학자들은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리로 줄을 세우기 위해 노숙자를 고용하는 경우 그리고 진료권을 자신이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팔고 싶은 경우에 당사자들은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죠?”라며 이런 관행에 기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되물을 것이다. 그들은 원하는 재화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장기매매 금지법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암표 매매 금지법에 반대한다. 이러한 법은 성인이 상호 동의에 따라 내린 선택을 방해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시장 거래의 결과로 구매자와 판매자가 모두 행복해지고 양측의 사회적 효용을 향상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라]
오늘날 경쟁의 이데올로기는 도처에서 개인적 완성의 철학에 뒤지고 있다. 보다 잘 통합된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재화의 소유 문제로 경쟁하지 않으며, 소비를 통해 자신을 실현한다. 차별적 경쟁의 시도 동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개성화의 시도 동기로 대체되었다. 동시에 광고는 상업적 실천에서 소비 활동의 이론, 즉 사회의 체계 전체를 완성하는 이론으로 옮겨 갔다. 이러한 이론의 설명은 미국 광고업자들의 작업에서 발견되고 있다. 광고에 대한 논의는 간단하다. 첫째, 소비 사회(사물·제품·광고)는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에게 해방과 완전한 완성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둘째,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표현을 향한 무조건적인 소비를 초월하는 소비 체계는 진정한 언어와 새로운 문화를 구성한다. 따라서 소비의 ‘허무주의’에 소비의 ‘새로운 인간주의’가 대립된다.
구매 동기 조사 연구소(Institut de Recherches de Motivation) 소장인 디히터 박사는 단번에 이 새로운 인간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보통의 미국인이 장난으로 연애할 때나, 돈을 쓸 때나, 두 번째 내지 세 번째 자동차를 살 때, 우리는 그에게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오늘날 풍요로움으로 인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 중의 하나는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의 향유를 승인하고 정당화하는 일이며,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도덕적이며 비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하는 일이다. 소비자에게 삶을 자유롭게 누리도록 허용하는 것, 다시 말해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제품들로 둘러싸이는 자기 권리의 표명은 판매를 촉진할 수 있는 모든 광고와 계획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동기 부여의 조작은 엄격한 도덕을 순전히 만족에 근거한 쾌락주의적 도덕으로 대체하면서, 그리고 하이퍼 문명 속에서 새로운 자연 상태를 끌어들이면서 광고가 사회 집단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는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그러나 디히터의 마지막 문장에는 양면성이 있다. 즉 광고의 목적은 행복에 대한 자신의 저항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것인가? 아니면 판매를 촉진하는 것인가? 사회는 만족을 위해 재조직되는가? 아니면 이익을 위해 재조직되는가? 패커드의 ≪은밀한 설득(La Persuasion clandestine)≫의 프랑스판 서문에서, 마르셀(Marcel)은 “구매 동기 조사는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합리적 또는 비합리적인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거짓이 없다고 하면 순진한 것이다. 디히터는 매우 솔직하게 자유가 허용되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는 ‘소비자에게 허용되는 것’에 대해 말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채 아이가 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분명히 말해서
‘자신의 욕망을 자유롭게 상품 속에 투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삶을 완전히 자유롭게 누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비이성적인 모습으로 퇴행하면서 생산의 어떤 사회적 질서에 적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판매의 ‘철학’은 양식에 어긋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에게 비이성적인 행동(즉각적인 충동의 콤플렉스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충족에 만족하는 것)을 부추기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과 합리적인 목표(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에 관해 실상을 밝혀 주는 것)를 내세운다. 그러나 충동은 위험할 수 있다. 소비를 조장하는 새로운 마법사들은 급증하는 행복의 궁극 목적에 따라 인간을 해방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오히려 그들은 긴장을 해소하려고 할 뿐이다.

[마]
◦◦은 시험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다. “정말이지 잠깐이면 돼.”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한 게임을 그만두지 못하고 밤을 새고 말았다. 항상 잠깐만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고 만다. ◦◦은 그날 늦잠을 자서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은 매번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결심을 하지만 의지가 약하여 번번이 실패한다.
이처럼 본인은 원하지 않으나 이미 게임에 중독되어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경우, 그에게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은 그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지만 그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자신의 합리성을 침해하는 욕구나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른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율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다.
어느 한 프랑스 학자에 의하면 외부의 모든 통제로부터 해방된 독재자는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노예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구는 한계가 없기 때문에 무한한 욕구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유롭기보다 오히려 변덕스러운 정념(情念)의 노예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율성은 자유 의지에 의한 자기 지배, 적극적인 자기 통제 능력을 의미하며, 권리는 그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결국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선택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기 위해서는 자율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율성은 인간을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존재로 만들며, 나아가 존엄한 존재로서 인정받게 하는 중요한 요건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모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증진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자유주의에서는 개인들의 좋은 삶에 대하여 어떤 특정한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다. 오직 중시하는 가치가 있다면 모든 개인에게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공정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제]
제시문 [마]의 관점을 바탕으로, 제시문 [가], [나], [다], [라]에
나타난 상황을 평가하시오. [1,100자 이상 ~ 1,200자 이하]

논제 해설
신분제에서 해방된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그래서 자유나 자유의지, 자율성은 좋은 것이고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도 강요나 강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선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가진 자들의 ‘갑질’ 현상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자신이 동의하지 않고 부정의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도 저항하지 못한 채 피해를 감수해 왔음이 드러났다. 미투 운동에서 폭로된 사건들이 그러하고, 모 항공 족벌의 구시대적인 작폐에서도 이런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논제는 이런 비자발적인 복종이 예외적인 소수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어떤 메커니즘이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채지 못하면 자유의지나 자율성은 한갓 착각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는 진정으로 자율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호에서 다뤘던 ‘과시적 욕망’과도 관련성이 있다. 돈으로 명성과 선망, 우정까지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세상을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혼자만의 예외적인 탈출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인간다운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관점에서 문제에 답하면 되겠다. 다행히 논술고사 문제는 답안의 실마리를 대개 노출한다. 이 논제에서 출발점으로 제시한 [마]의 자율성 개념을 중심으로 답안을 구성하면 되겠다.

그래서 기본 구성은

1. 제시문 [마]의 논지 요약 : 자유와 자율성 재정의
2. [가], [나]에서 자유나 자율성이 아무런 간섭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포착하고
3. [다], [라]에서 교묘하게 현대인을 오도하는 소비주의 혹은 소비 욕망을 비판하는 정리 이렇게 배치하는 것이 좋겠다.

아래 예시답안은 이 구성을 택했다. 다만 본론만으로 느닷없이 끝나는 글이 되지 않도록 마지막에 결론부를 추가적으로 배치했다.

예시 답안

제시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로 모일 수 있다. 자유란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그 실상을 따져보면 단순하지 않다. [마]에 나오는 학생이 중요한 과제를 제쳐두고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분명 외견상으로는 자발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이것을 온전한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율성’ 개념이 중요하다. 자율성이란 어떠한 속박에도 매이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자유 의지에 따르는 자기 지배를 의미한다. 이 학생이 게임중독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개입은 속박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가]에 나오는 새장에 비유되는 구두가 그러하다. 새장이 새를 가두는 것이듯, 구두는 발을 가둬두는 도구다. 하지만 화자는 발을 가두는 구두를 신고 새처럼 구름 위를 날고, 한 척의 배처럼 바다를 항해하는 꿈을 꾼다. 내 발에 맞는 구두는 내 발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에서도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어떤 어휘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타인의 비평이나 개입도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글을 밋밋하고 개성 없게 만들 뿐이다. 작가가 이방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탐색하는 노력은 자유를 구속하는 고된 작업이 될 수 있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문맥과 상황에 적합한 어휘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이런 성찰이 중요한 한 이유는 현대 사회가 자유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위기에 처한 현실이 [다]와 [라]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새치기를 위해 암표를 사고파는 행위 나아가 장기매매까지 지지하는 이들은 이것은 거래 당사자의 상호 동의에 의한 것이니 누구의 자유도 침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약줄에서 시간을 들여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는 상식마저 조롱받는 것이 일반화된 사회는 자유가 아니라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상태이다. [라]의 광고전략이 현대인들의 자유 관념을 왜곡하여 사람들이 소비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을 마치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라 믿게 만든다. [라]의 저자가 지적하듯이 이것은 자유관념을 왜곡하여 판매를 촉진하는 것일 뿐이다.
갈수록 소비욕망이 넘쳐나고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게임 중독을 치료하는 것과 같은 적절한 제약과 개인의 각성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의 충직한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행복의 궁극 목적’과 ‘인간성’을 존중하는 자세다. 그러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지에 따른 온전한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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