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미션

지난호에 이어 현대 사회에 만연한 소비주의와 욕망에 관한 논제를 살펴보자. 지문의 양이 많아 주제에 대한 배경 지식은 생략한다. 제시문들이 각기 별개의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논제라 논점을 포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변별력이 상당한 문제라 하겠다. 침착하게 문제를 읽고 나서 출제자의 관점에서 각각의 제시문을 독해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은 채 무작위로 선별된 제시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로 답안이 정돈될 수 있도록 개요를 잘 짜야 한다. 서론, 본론, 결론의 구성을 명시적으로 요청하지 않으나 글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각 문단의 기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자 아래 제시문과 문제를 읽고 답하도록 하자.
[가]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 [다] [라] 보통의 미국인이 장난으로 연애할 때나, 돈을 쓸 때나, 두 번째 내지 세 번째 자동차를 살 때, 우리는 그에게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오늘날 풍요로움으로 인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 중의 하나는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의 향유를 승인하고 정당화하는 일이며,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도덕적이며 비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하는 일이다. 소비자에게 삶을 자유롭게 누리도록 허용하는 것, 다시 말해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제품들로 둘러싸이는 자기 권리의 표명은 판매를 촉진할 수 있는 모든 광고와 계획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동기 부여의 조작은 엄격한 도덕을 순전히 만족에 근거한 쾌락주의적 도덕으로 대체하면서, 그리고 하이퍼 문명 속에서 새로운 자연 상태를 끌어들이면서 광고가 사회 집단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는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그러나 디히터의 마지막 문장에는 양면성이 있다. 즉 광고의 목적은 행복에 대한 자신의 저항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것인가? 아니면 판매를 촉진하는 것인가? 사회는 만족을 위해 재조직되는가? 아니면 이익을 위해 재조직되는가? 패커드의 ≪은밀한 설득(La Persuasion clandestine)≫의 프랑스판 서문에서, 마르셀(Marcel)은 “구매 동기 조사는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합리적 또는 비합리적인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거짓이 없다고 하면 순진한 것이다. 디히터는 매우 솔직하게 자유가 허용되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는 ‘소비자에게 허용되는 것’에 대해 말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채 아이가 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분명히 말해서 [마] [논제] |
논제 해설
신분제에서 해방된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그래서 자유나 자유의지, 자율성은 좋은 것이고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도 강요나 강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선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가진 자들의 ‘갑질’ 현상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자신이 동의하지 않고 부정의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도 저항하지 못한 채 피해를 감수해 왔음이 드러났다. 미투 운동에서 폭로된 사건들이 그러하고, 모 항공 족벌의 구시대적인 작폐에서도 이런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논제는 이런 비자발적인 복종이 예외적인 소수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어떤 메커니즘이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채지 못하면 자유의지나 자율성은 한갓 착각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는 진정으로 자율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호에서 다뤘던 ‘과시적 욕망’과도 관련성이 있다. 돈으로 명성과 선망, 우정까지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세상을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혼자만의 예외적인 탈출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인간다운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관점에서 문제에 답하면 되겠다. 다행히 논술고사 문제는 답안의 실마리를 대개 노출한다. 이 논제에서 출발점으로 제시한 [마]의 자율성 개념을 중심으로 답안을 구성하면 되겠다.
그래서 기본 구성은
1. 제시문 [마]의 논지 요약 : 자유와 자율성 재정의
2. [가], [나]에서 자유나 자율성이 아무런 간섭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포착하고
3. [다], [라]에서 교묘하게 현대인을 오도하는 소비주의 혹은 소비 욕망을 비판하는 정리 이렇게 배치하는 것이 좋겠다.
아래 예시답안은 이 구성을 택했다. 다만 본론만으로 느닷없이 끝나는 글이 되지 않도록 마지막에 결론부를 추가적으로 배치했다.
예시 답안
제시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로 모일 수 있다. 자유란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그 실상을 따져보면 단순하지 않다. [마]에 나오는 학생이 중요한 과제를 제쳐두고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분명 외견상으로는 자발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이것을 온전한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율성’ 개념이 중요하다. 자율성이란 어떠한 속박에도 매이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자유 의지에 따르는 자기 지배를 의미한다. 이 학생이 게임중독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개입은 속박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가]에 나오는 새장에 비유되는 구두가 그러하다. 새장이 새를 가두는 것이듯, 구두는 발을 가둬두는 도구다. 하지만 화자는 발을 가두는 구두를 신고 새처럼 구름 위를 날고, 한 척의 배처럼 바다를 항해하는 꿈을 꾼다. 내 발에 맞는 구두는 내 발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에서도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어떤 어휘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타인의 비평이나 개입도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글을 밋밋하고 개성 없게 만들 뿐이다. 작가가 이방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탐색하는 노력은 자유를 구속하는 고된 작업이 될 수 있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문맥과 상황에 적합한 어휘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이런 성찰이 중요한 한 이유는 현대 사회가 자유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위기에 처한 현실이 [다]와 [라]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새치기를 위해 암표를 사고파는 행위 나아가 장기매매까지 지지하는 이들은 이것은 거래 당사자의 상호 동의에 의한 것이니 누구의 자유도 침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약줄에서 시간을 들여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는 상식마저 조롱받는 것이 일반화된 사회는 자유가 아니라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상태이다. [라]의 광고전략이 현대인들의 자유 관념을 왜곡하여 사람들이 소비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을 마치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라 믿게 만든다. [라]의 저자가 지적하듯이 이것은 자유관념을 왜곡하여 판매를 촉진하는 것일 뿐이다. 갈수록 소비욕망이 넘쳐나고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게임 중독을 치료하는 것과 같은 적절한 제약과 개인의 각성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의 충직한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행복의 궁극 목적’과 ‘인간성’을 존중하는 자세다. 그러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지에 따른 온전한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