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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김성호의 논술의 핵심 - 통합교과형 논술 완전 정복
2018년 03월 23일 (금) 15:40:52
   
 

'명품'은 늘 잘 팔린다. 악마도 프라다를 입고, 최순실도 프라다를 신는다. 경기가 호황이든, 불황이든 가리지 않는다. 남들이 지갑 닫을 때 호기롭게 돈을 쏟아 붓는 경우도 보인다. 오히려 가격을 낮추면 팔리지 않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떨어진다"는 마셜의 수요법칙이 무색하다. 이렇게 비싼 사치재에 대한 소비를 일컫는 '과시소비(Conspicuous Consumption)' 개념을 경제학사에서 처음 수면 위로 올린 사람이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유한계급론』을 통해 특권층이 성공과 지위를 드러내고자 경기를 불문하고 과시소비와 여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도마 위에 올린다.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 ~ 1929)

"좀 더 훌륭한 재화를 소비하는 것은 부의 증거이기 때문에 명예로운 일이 된다. 반면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기준에 미달하는 소비는 열등함과 결함의 징표가 된다"고 역설한다. 출간 100년이 넘었지만 책에서 다루는, 소비로 자신을 규정하고 과시하는 현상은 현대에도 유효하다.

과시행위의 기원은 고대 계급사회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기원을 야만문화에서 찾는다. 금력을 증명하는 최선의 방법은 꼭 필요하지 않는 부분에 소비하는 행동으로, 야만사회에서 빈번하게 이뤄진 약탈문화에서부터 나왔다는 입장을 드러낸다. 인간은 원시공동체 시기 자연을 떠돌고 집단생활을 하면서 같이 생산하고 나눠 먹었지만, 농업혁명 이후 사유재산 개념이 생기며 개인 간 경쟁체제에 놓였다. 노력, 능력 등의 여부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이 이뤄지면서 계급사회가 생겼다. 계층 분화는 명성, 명예 따위의 속성을 낳았고 무엇인가를 자신의 소유물로 만드는 행동을 우러러보게 만들었다.

"명성이나 가치, 명예 같은 개념은 인격에 적용되든, 행동에 적용되든 계급들의 발달과 계급분화의 진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야만사회에서는 생산보다 약탈이 가치 있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사냥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존경받았다. 자연에서 손만 뻗으면 얻기 쉬운 식물과 달리 동물은 움직이는 생명체이기에 건강한 체력과 정신을 갖춰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까닭이다. 사냥은 약탈이라는 속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동물을 잡는 행위는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고 자연의 소유물을 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냥을 해서 얻은 동물은 전쟁에서 승리해 거둬들인 전리품과 같다. 전리품은 용맹성을 드러내고 궁극적으로는 명예를 높여준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남들보다 명예로워지고 싶어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에 끊임없이 휩싸인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경쟁에서 이겨 무엇인가 많이 소유해야 한다. 베블런은 경쟁을 '소유권을 생성시키는 근본적인 동기'로 본다. 인간의 본능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은 자기보존이고 그 다음이 경쟁이며, 경쟁 가운데에서도 특히 금전적 경쟁에 대한 욕구가 가장 크다고 말한다.

사회적 지위 드러내는 과시적 소비

   
▲베블런의 한국어 번역본 표지

유한계급의 소비는 과시, 명예 등이 수요를 높이는 현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베블런은 "흔히 값비싸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물건들을 사용하고 감상함으로써 얻는 우월한 만족감은 대부분 아름다움이라는 미명 아래 숨은 비싼 가격 덕분에 우리가 느끼는 만족감"이라며 "그런 물건은 대부분 우월하고 명예로운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과시소비가 이뤄지는 이유다. 

유한계급의 대표적 소비 사례로 당시 상류층에서 주로 사용하던 은제 숟가락을 든다. 무겁고 사용하기 불편하며 가격도 비싸지만 당시 상류층은 구입을 마다하지 않았다. 은제 숟가락이라고 해서 다른 재료로 만든 숟가락보다 실용성이 뛰어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표면적인 용도와는 달리 낭비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좋은 물건"으로 여겨지며 "아름답기 때문에 가치 있게 평가되는 물건들의 유용성은 그것들이 값이 비싸다는 사실에 긴밀히 의존"한다.

은제 숟가락을 고집하는 이유는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려는 욕망과 맞물린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은 꼭 필요한 물건만 살 수밖에 없지만, 유한계급 사이에서는 쓸데없는 물건을 얼마나 살 수 있는지가 지위를 나누는 잣대로 작용한다. 유한계급의 소비는 상대적으로 금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도 이어진다. 하위계층은 상위계층의 소비를 모방하면서 신분 상승을 꿈꾼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소비를 통해 능력을 과시하려는 인간의 모습에 베블런은 주목한다.

사회적 존경 고려한 과시적여가 
유한계급은 부와 권력을 증명하고자 노동에 불참한다.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금력을 과시하는 관습적 증거"이고,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는 관습적 징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활동했던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려 깊은 남자들은 인간이 가치 있거나 우아하거나 결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일정한 여가시간을 가지고 일상생활에 당장 필요한 생산활동을 면제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인정해왔다."

하지만 일하지 않고 소비만 하면 손가락질 당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낭비를 싫어하고 성과나 생산물을 많이 내놓는 사람을 존경하는 '제작본능'을 가지고 있어서다. 명예를 중시하는 유한계급에게는 여유롭게 돈을 쓰면서도 근면성실하며 생산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이것이 유한계급이 여가활동에 몰입하는 이유다. 베블런은 여가를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소비"하고, "생산활동이 무가치하다는 감정에 따라 게으른 생활을 가능케 하는 금력의 증거"라고 규정한다.

예술감상, 독서모임, 클럽활동 등은 돈을 버는 일과는 동떨어지고 생활에 필수불가결하지 않지만 무엇인가 배우면서 바쁘게 사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고급 취미를 향유하며 품위를 유지하는 셈이다. 예법을 익히는 행위도 같은 맥락이다. 일반인과는 다른 식사예절이나 대화법 등을 익혀 신분을 드러내기도 한다.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만 체면이 구겨지지 않을 만큼 능숙하게 유한계급의 예의범절을 구사"할 수 있는 까닭이다.

또 하나의 통찰 – 왜 가난한 이들이 보수적인가?  
만약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한다면 가난한 이들의 경우 현재의 체제 속에서 고통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변화를 원할 것이고, 변화를 원한다면 '진보적'이 돼야 할 텐데 그가 관찰한 당시 미국 사회의 경우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하위 소득계층에 속한 이들이 기존의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지지하고 변화를 기피하는 보수적 성향을 보인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한 그의 관찰이 특히 값진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 매우 통렬한 비판을 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경우도 하위 소득계층이 결국엔 혁명을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는 점에 있다. 하위 소득계층의 단결과 저항을 예상할 수 있는 전제는 하위 소득계층이 결국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자본가 계급을 타도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는 기존의 자본주의적 전제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베블런이 보기에 하위 소득계층이 처한 현실은 '합리적 인간'으로서 존재할 여건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속된 말로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일상 속에서 하위 소득계층은 기존의 제도와 생활양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아니 오히려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에 다른 어느 계층보다 충실해야만 그나마 기초적인 생존이 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위 소득계층은 당연히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에 가장 순종적이 될 수밖에 없고(되어야만 하고) 결국 그렇게 그들은 '보수적'이 된다는 게 베블런의 분석이다.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 ‘합리적’이라고 가정할 경우, 가격이 비쌀수록 소비는 줄어들어야 하나 실제로는 가격이 비싸질수록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효과를 유발하는 재화를 베블런재(Veblen財, Veblen goods)라고 한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모두 합리적이라고 가정하고 경제적인 문제들을 풀어나간다. 그래서 가장 효용이 높은 물건을 가장 낮은 가격에 살 것이라고 가르치는데 특정 재화의 경우 실제 소비패턴은 예시한 그래프처럼 달리 나타난다.
   
베블런재(Veblen goods)
베블런 효과의 원인으로는 자신의 지위를 자랑하기 위한 과시적 소비, 최신 유행을 무작정 따라가는 모방적 소비, 순간적인 욕구에 휘말리는 충동적인 소비 등이 꼽히고 있다. 이는 사회적 자아, 즉 타인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이뤄지는 자아의식을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베블런 효과는 다양한 분야의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허영심이 많은 소비자일수록 베블런 효과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특히 명품시장에서 베블런 효과가 많이 나타난다. 이 점을 이용해 유통업계에서는 명품 마케팅, VVIP 마케팅을 활용하고 있다. BMW가 "BMW는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차"라든가, 도요타가 "렉서스를 타는 이는 모두 VIP다", "명사만을 위한..." 등의 표현은 모두 베블런 효과를 노린 마케팅 전략이다.

이 달의 미션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이 제시문으로 등장하는 논제를 만나보자. 제시문들 내용이 명료하고 이 논제와 관련된 주제의식 혹은 취지도 쉽게 간파할 수 있어서 어렵진 않은 논제다. 다만 논술문 분량이 통합교과형 논제들 중에선 가장 긴 편에 속한다는 점이 부담을 준다.

사전에 논제와 제시문들을 세밀히 검토해 논술문에 담을 구성을 간략히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길 권한다. 구성은 개요라고도 한다. 몇 문단을 쓸지, 각 문단에 담을 소주제를 적고 분량도 배정을 해줘야 한다.

제시문 [가], [나]의 논지를 이용하여 [다]의 현상을 분석하고, [라]의 입장에서 [다]를 평가하라(1300~1500자).

[가] 타인의 존경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나 권력을 그저 획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부나 권력은 타인에게 증거로서 드러나는 한에서만 존경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 극빈층을 포함한 사회의 어떤 계층도 모든 관례적인 과시적 소비를 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절체절명의 긴박한 상황에 처하지 않는 한 과시적 소비를 겨냥한 물품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밖으로 있어 보이는 체하려고 허세가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비참할 정도의 옹색과 불편조차도 참아내는 것이다. […]
 자기 보존 본능을 제외하고는 경쟁적인 비교 성향은 아마도 가장 강하고 지속적인 경제적 동기일 것이다. 산업 사회에서는 경쟁적인 비교 성향이 부의 경쟁으로 표현된다. 이는 최소한 서구 문명사회만 두고 보아도 과시적 낭비의 어떤 형태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장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된다면, 과시적 낭비 욕구는 사회의 산업 효율성 혹은 재화 산출의 증가를 모두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 소스타인 베블렌, 『유한계급론』

[나] 가장 이상스러운 것은, 그들 주변의 나무나 여타 것들의 위치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들은 아무 것도 지나쳐 갈 수 없는 듯 보였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건가?’ 앨리스는 갈수록 궁금증이 더했다. 그러자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레드 퀸(Red Queen)이 소리쳤다.
“더 빨리 뛰어! 말할 시간이 어디 있어!” […]

 

   
 

 앨리스는 주위를 둘러보고 놀랐다.
 “참 이상타. 우린 내내 이 나무 아래 있었다는 말이야? 모든 것이 이전과 똑같잖아!”
 “물론이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거야?” 레드퀸이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사는 나라에서는…” 여전히 숨가빠하면서 앨리스가 말했다. “우리처럼 만일 누가 그렇게 한참을 빨리 달렸다면 보통은 다른 어딘가로 가게 되는데.”
 “느려빠진 나라로구나!” 레드퀸이 말했다. “자 이제, 네가 보듯이, 여기서는 단지 같은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 너는 온힘을 다해 달려야 해.”
- 루이스 캐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다] 귀족제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부유층이 그들의 풍요함에 익숙하듯이 일반 평민들도 자신들의 가난에 익숙해진다. 부유층은 물질적 안락을 별 노력 없이 누리기 때문에 그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으며, 평민들도 자신들의 물질적 불편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안락은 막상 얻을 방도도 없거니와 애초에 그런 것을 바랄만큼 충분히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신분적 위계질서가 모호해지고 특권이 철폐될 때, 세습가산(世襲家産)들이 작게 나뉘고 교육과 자유가 사회 내에 퍼져갈 때, 가난한 평민들은 안락을 열망하게 되고 부유층은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노심초사한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중간 소득계층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물질적 안락의 맛을 알기에 필요한 만큼의 부를 누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만족할 만큼은 충분히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은 물질적 안락을 노력 없이 얻지 못하며 불안 없이 즐기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꾸 달아나버리려는 이 불완전하고도 귀중한 즐거움을 쫓고 유지하는 일에 끊임없이 매달리게 된다. […]
 [19세기 초반] 미국사회에서 나는 세계 최고의 행복한 여건을 갖춘, 가장 자유롭고도 잘 교육받은 시민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들의 미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풍요로움 속에서도 그들은 잔뜩 심각하거나 슬픈 기색마저 띠고 있다. 사람들이 심각한 이유는 자신이 견뎌낸 지난 세월의 어려움에 대해 더 이상 기억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며, 슬픈 기색을 띠고 있는 이유는 자신이 성취할 뻔 했지만 놓쳤던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곱씹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매우 열정적으로 자신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혹시 성공을 위한 지름길을 놓치지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풍요 속에서도 여전히 안달하는 수많은 행운아들의 광경을 목도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광경이 과거에도 없지는 않았다. 지금 새로운 것은 바로 한 사회의 성원들 모두가 그런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라] 우리는 행복이 모든 좋음[善]들 가운데 가장 선택할만한 것이라 보지만, 좋음들 가운데 하나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완전하고 자족적인 어떤 것으로서, 행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의 목표이다. 우리는 행복을 탁월성[德]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 규정할 수 있다. […] 이 활동은 관조(觀照)적인 활동이다. 이것은 활동 가운데서도 최고의 활동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지성이 최고이며, 지성이 상대하는 대상 또한 앎의 대상들 중 최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활동이 가장 연속적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행위하는 것보다 더 연속적으로 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행복에는 즐거움이 섞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들 중 지혜에 따르는 활동이 가장 즐거운 것이다. […] 따라서 관조가 지속되는 만큼 행복도 지속되며, 더 많이 관조하는 사람에게 행복도 더 많이 돌아가는 것이고, 우연에 따른 행복이 아니라 관조에 따른 행복이 더 많이 귀속되는 것이다. 관조는 그 자체로 영예로운 것이다. 따라서 행복은 어떤 종류의 관조일 것이다.
 물론 행복한 자도 인간이라 외적인 유복함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관조를 위한 자족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관조를 하려면] 육체도 건강해야 하고 음식이나 여타의 보살핌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비록 외적인 좋음들이 없이 지극히 복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장차 행복하게 되기 위해 많고 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족이나 그에 따른 행위는 지나침이 없을 것이며, 비록 땅과 바다를 다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고귀한 것들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적당한 정도의 외적 조건들만 갖추어도 탁월성에 따라 행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만 가지면 충분하다. 탁월성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의 삶이 행복할 테니까. ‘행복한 사람’이란 외적인 좋음들이 적당하게 주어져 있으나 자신이 가장 훌륭한 행위로 여기는 것을 행했으며, 또 절제 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고 솔론이 말했을 때, 아마도 그는 행복한 사람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일 터이다. 사람은 외적인 조건들을 적당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행해야만 하는 일들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논제  해설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 개념은 각종 교과서에서도 즐겨 다루기에 생경하게 들리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과시’하듯이 개념을 이리저리 적용해 본 학생들도 있을 것 같다. 세상에 ‘과시적 소비’ 현상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 논제는 이런 사회를 배경으로 ‘진정한 행복’이란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짐작하겠지만 물질과 정신 두 개의 날개가 필요하다는 오래된 지혜 혹은 상투적인 진술을 유도하는 것이지. 베블런이 지적한 ‘과시적 소비’는 콕 집어 말하기는 쉬워도 벗어나긴 힘든 현상이다. 그만큼 이 과시적 소비 경향은 현대 사회의 시민들 일상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이 논제가 기대하는, 행복에 이르기 위한 충분조건은 정신적·지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재능을 썩히지 않고 탁월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전한 시민들이 넘쳐난다면 정말 사회 구성원 간 신뢰도 쌓이고 시민들 각자의 행복감도 높아지겠지.

 논지의 구성은 어떻게 하면 될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논제의 지시 혹은 요구사항을 차분히 읽어보아라. 출제자들이 제시문들을 염두에 두고 어떤 글을 기대하는지가 거기에 잘 나타나 있다. 지시내용과 동떨어진 수필을 쓰면 안 된다. 대개는 논제의 지시사항 각각이 드러나도록 문단을 배치하는 것이 좋다. 분량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소주제에 따라 추가적으로 분리하는 정도면 좋겠다.
그래서 기본 구성은

   
 

이렇게 가는 거다.
다만 [가]의 ‘과시적 소비’, [나]의 ‘경쟁과 속도’를 요약한 후에
[다]를 분석하게 되면 내용상의 중복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그래서 위 구성방식을 따르는 경우 내용이 중복되지 않도록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걸 피하기 위해서

   
 

이렇게 논지를 전개해도 된다. 이 논제의 경우, 이 방식이 제시문 [가] 요약으로 시작하는 식상한 답안 전개보다 나을 수 있다. 아래 예시답안은 이 구성을 택했다.

예시 답안 개요(=논지의 구성)
1. [다] 현상 분석(450~500자)
   (1) [다]에 묘사된 현상은 ‘현대 사회의 단면’이다.
2. 제시문 [가], [나]의 논지를 활용한 분석(500자)
   (1) 풍요의 역설 - 행복을 방해하는 비물질적인 요소의 예, [가]의 ‘과시적 소비’
   (2) 행복을 방해하는 비물질적인 요소, [나]의 ‘경쟁 사회’
3. [라]의 입장에서 [다] 평가(450~500자)
   (1) 행복의 기반, 두 가지 측면 인정 : 물질과 정신
   (2) 물질적 전제의 충족 확인
   (3) 정신적 측면이 중요해졌다.
   (4) [라]의 해법을 응용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가능한 방안이다.


예시 답안
외형적으로 현대 산업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행복도는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제시문 [다]에서 묘사하는 19세기 미국 사회의 풍경은,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이 나날이 겪는 비극적인 모습과 다르지 않다. 혼자 뒤처지지 않을까 조바심에 시달리고 더 큰 성공을 위해 안달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시민적 자유와 평등의 향유, 소득수준의 향상, 의료·주거·교육 수준의 상승, 생활 편의시설의 증대 등으로 현대의 평균적 시민이라면 그 어느 시대와 비교해도 더 큰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다]에서 묘사하는 조바심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 또한 각종 조사결과가 보여준다.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풍요를 달성한 사회에서 빚어지는 이런 비극은 인류가 오랫동안 소망해 온 ‘행복’의 원천이 과연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요구한다.

[가], [나]에는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비물질적인’ 요인들이 나타난다. [가]에서 말하는 ‘과시적 소비’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은 불행하다. 한 사회 성원들이 모두 타인과의 끝없는 비교에 시달리며 더욱 비싼 사치재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려 하는 순간 대다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런 경향이 지배하게 되면 인품, 용기, 지혜와 같은 가치는 실종되고 탐욕만이 가득한 병든 사회가 될 것이다. [가]에선 이런 과시적 소비의 배경에 경쟁 본능이 자리한다고 말한다. 이 본능이 현대 산업 사회에서 부의 경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루이스 캐롤의 소설 또한 당대 사회를 지배하는 ‘무한 경쟁’을 풍자한다. [나]에서 앨리스와 레드 퀸은 말할 시간도 없이 빨리 뛰는 데도 불구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레드 퀸의 말처럼 ‘단지 같은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 온힘을 다해 달려야’ 하는 사회에서 앞서 달려가기란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이런 무한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행복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행복은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 둘 모두를 필요로 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적절한 물질적 조건이 구비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아, 질병,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등의 문제 해결이 필요한 이유다. 현대 산업 사회가 이런 조건을 충족했다는 것을 전제할 때, 이제 중요한 것은 또 하나의 구성요소인 정신적, 심리적 측면에 주목하는 것이다. [라]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을 누리기 위해선 유복함과 더불어 즐거움도 지적인 관조도 필요하다. 그는 외적인 유복함 즉, 물질적인 측면을 외면하지 않는다. 건강과 음식, 주거의 안락함 등도 행복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다만 탁월성과 고귀함을 추구하는 노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라]의 견해는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인간다운 삶의 물질적인 조건을 전제로 해 인간을 저열하게 만드는 물질적인 비교와 무한 경쟁에서 벗어나서 더욱 가치있는 활동을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 사회의 시민들이 놓친 것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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