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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7일 (수) 11:32:40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은 출판되자마자 고전 반열에 오르며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그의 대표작이다. 책의 부제는 ‘감옥의 역사’이지만, 사실 푸코가 이 책을 쓴 목적은 감옥의 역사와 근대 형벌제도의 탄생에 대해 서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푸코는 18세기 이후 대표적인 처벌형태로 자리잡은 감옥을 권력의 통제기술의 한 형태로 바라보면서, 감옥 안에 내재되어 있는 처벌하는 이성과 권력의 통제기술의 실체를 폭로하고자 하였다. 책의 서문에 쓰여진 것처럼, “근대정신과 새로운 재판권력과의 상관적인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푸코의 실제 목적인 것이다. 

푸코에게 있어 ‘감옥’은 개인을 복종하는 주체로 만들기 위한 권력의 도구로서 재정의된다. 그리고 감옥에서 발견되던 일망 감시체제는 이제 감옥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시대는 변했지만 권력의 본질적인 모습과 목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바로 이러한 권력의 본질적인 모습을 폭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18세기 이후 주류적인 처벌의 형태로 자리잡은 ‘감옥’은 일종의 훈련을 통해 수감자들을 순종하는 신체로 재생산해낸다. 마치 군인들이 철저한 훈련과 반복학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권력은 이제 신체를 고통을 가해야 할 대상에서,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존재로 만들어내기 위한 훈육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여기서 푸코가 강조하는 ‘규율’의 테마가 처음 등장한다.

규율(Discipline)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의 최대 관심사는 ‘규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잠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18세기 이전까지는 규율이 없는 사회였을까? 물론 아니다. 중세시대 수도원에 거주하는 성직자들이나 군인들 또한 규율에 의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규율은 이전까지의 규율과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갖는다. 잠시 본문을 인용해보자.

“규율은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지배의 일반적인 양식이 되었다. (…) 규율의 역사적 시기는 신체의 능력 신장이나 신체에 대한 구속의 강화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메커니즘 속에서 신체가 유용하면 유용할수록 더욱 신체를 복종적으로 만드는, 혹은 그 반대로, 복종하면 복종할수록 더욱 유용하게 하는 그러한 관계의 성립을 지향하는, 신체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생겨나게 되는 그런 시기이다. 이때 형성되는 것은 신체에 대한 작업과 신체의 요소 몸짓, 행위에 대한 계획된 조작이라는 강제권의 정치학이다. 인간의 신체는 그 신체를 파헤치고 분해하며 재구성하는 권력장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의 ‘권력의 역학’이기도 한 ‘정치 해부학’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해부학’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해주기를 바라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뿐 아니라, 기술적 방법으로 결정된 속도와 효용성에 의거하여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그들의 신체를 장악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규율은 이렇게 복종되고 훈련된 신체, ‘순종하는’ 신체를 만들어낸다.”

푸코는 18세기 신체에 대한 권력의 새 기술이 이전까지와 달라진 근거를 크게 세 가지를 제시한다. 먼저 신체에 대한 통제의 규모가 달라졌으며, 두 번째로 통제의 대상이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통제의 양상 또한 달라졌다. 그리고 권력의 새 기술은 피지배자들의 신체활동에 대해 면밀한 통제와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통제의 강도를 높여나간다. 이로써 규율 권력은 인간의 신체를 권력 장치 속으로 편입시키고, 복종하는 신체, 규율화된 신체, 순종하는 신체로 재구성한다. 푸코는 이를 두고 정치해부학의 탄생(혹은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고 명명한다. 규율권력은 절대 우발적으로 탄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권력의 도구이며 개인을 통제, 개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편 규율권력이 개인을 통제하는 수단에는 위계질서적인 감시와 규범화된 상벌제도, 그리고 두 가지 기술을 결합시킨 시험이 있다. 감시와 규범은 고전주의 시대말 권력의 중요한 도구로서 기능하였는데, 특히 규범은 개인에게 동질성을 강제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특히 규범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잠시 학교를 예로 들어보면 학교에는 반드시 학생들이 지켜야 할 교칙이 있다. 하지만 학생 중에는 규칙을 지키는 학생도 있고, 지키지 않는 학생도 있다. 평범한 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모범적인 학생이 될 것을 강요받는다. 이것이 규범화 권력의 작용이다. 한편 시험은 위계질서의 기술과 규격화를 만드는 상벌제도가 결합된 집합체이다. 시험은 대상을 규격화하며, 자격을 부여하거나 처벌하는 일종의 감시수단이다. 때문에 규율의 모든 장치 속에는 고도로 관례화된 시험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푸코의 지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내재하고 있는데, 푸코에게 지식과 권력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지식은 절대 순수하지 않으며 규범화 단계에서 나타나는 정상과 비정상의 규범을 확산 또는 정착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 지식이 구체화된 형태가 바로 시험이다. 시험은 개인을 권력의 결과와 대상으로, 지식의 결과와 대상으로 만드는 여러 방식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판옵티콘(Panopticon)
제3부 3장에 이르러 푸코는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판옵티콘을 소개하면서, 현대사회의 권력의 감시체계가 마치 판옵티콘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판옵티콘은 그리스어의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라는 뜻을 가진 ‘optic’, 건물을 뜻하는 접미어 ‘on’의 합성어로서, 18세기 급증하는 인구와 그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수감자들을 감옥 내부에서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제레미 벤담이 고안해 낸 감옥의 한 형태이다. 

   
▲판옵티콘의 실제 구현사례 : 쿠바의 모델로 감옥(1967년 폐쇄)
   

▲판옵티콘의 실제 구현사례 : 위 감옥의 외부 모습

판옵티콘 구조의 핵심은 중앙의 감시탑은 조명을 어둡게 하고, 주변 수감자들의 방은 밝게 함으로써 감독자는 수감자 전체를 감시할 수 있으며 설령 감독자가 부재중일지라도 동일한 감시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감시체제 하에서 수감자들은 철저하게 정보의 대상이 될 뿐 정보를 소통하는 주체는 될 수 없으며, 매순간 그들이 감시받고 있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게 된다. 반면 감시자들은 최소한의 인력으로도 수형자 전체를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벤담은 급증하는 인구와 수감시설의 부족에 대처하고 보다 효율적인 수단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판옵티콘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그리고 판옵티콘은 그 효율성 덕분에 사회전반으로 급속히 확대될 수 있었다. 

판옵티콘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것이 수감자들에게 ‘시선의 내면화’ 과정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판옵티콘 구조 안의 수감자들은 감시받고 있지만 자신들이 감시받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감시의 시선은 수감자들의 의식 깊숙한 곳까지 내면화된다. 이러한 판옵티콘의 원리는 앞서 살펴본 규율권력의 메커니즘과도 유사하다. 그것은 판옵티콘이 규율에 의존한 감시체제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규율이란 집단 다수의 유용한 규모를 확장시키면서 동시에 다수를 참으로 유용하게 만들어 놓기 위한 것으로서 다수를 지배해야 하는 권력의 장애요소들을 감소시키는 세밀한 기술적 창조의 집합인 것이다. 그것이 공장이거나 국가거나 국민이거나, 군대든 아니면 학교든 간에 집단 다수가 규율의 단계에 이를 때는 구성원 상호간의 관계가 알맞고 유리해질 경우이다.”

정리하자면, 푸코는 벤담의 판옵티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규율권력이 개인을 감시하고 재구성하는 양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감시체제 하에서 개인은 철저히 통제받고 감시당하며 권력에 예속화된다. 이것은 권력의 체계화된 메커니즘이자 오랜 기간의 연구를 통해 고안된 통치기술의 형태이다.

푸코의 철학적 방법론은 쉽게 말하면 ‘낯설게 보기’이다. 그는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을 평범하게 보기를 거부하고, 그 이면에 있는 권력의 작용을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둔다. 푸코에게 있어, 감옥은 근대 이후 규율 권력이 개인을 예속화하고 재개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전략이며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푸코의 감옥에 대한 분석은 현대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것은 감옥의 역사가 아니라 권력이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예속화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수많은 감시와 통제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 곳곳에서는 CCTV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으며, 우리가 사적으로 하는 통화내용조차도 통신사에 저장되어 유사시에는 수사기관에서 이를 입수하고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도 사이트 규정에 어긋나는 게시물이 삭제되고, 혹은 검열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매순간 감시받으며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심지어 지난 정권에서 정부기관의 민간인 사찰이 행해졌다는 것을 보면 푸코의 분석은 정보화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이처럼 푸코의 『감시와 처벌』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생각의 여지를 제공해준다. 많은 이들이 『감시와 처벌』은 현대사회에 확산된 판옵티콘 정보화사회의 메커니즘과 인간의 예속화를 예리하고 근원적으로 파헤친 책이라고 평가한다. 정보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이 책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다.

자, 이제 이 주제를 다룬 논술고사 문제를 살펴보자. Panopticon은 역서나 논문에 따라서 판옵티콘, 파놉티콘, 패놉티콘 등으로 표기된다. 역자의 선택에 따라 용어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래 논제에 사용된 제시문을 수정하지 않고 전재한다. 

<가> 핀란드 야르벤빠 고등학교에서 가장 감동받은 것은 바로 학교 건물과 교육환경이었다. 건물 자체나 내부 인테리어가 아주 훌륭하고 학교 공간 곳곳은 최상의 교육활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공동체로서의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가운데 공간에 만남의 광장을 만들었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연결된 건물에는 영역별로 다섯 개의 파트로 나뉜, 집중과 분산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그림 1> 참조). 중앙홀에는 식당, 도서관 등 학생 편의 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중앙홀로 연결된 날개에는 각각의 교과군에 필요한 시설과 교실이 집중되어 있다. 2층은 화학, 수학, 물리 등의 과학 학습 공간이며 3층은 인문 과목의 강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날개들이 개별성과 선택의 자유가 향유되는 공간이라면, 중앙홀은 개인을 넘어서서 공동체를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학교 건물은 작은 우주라고 할 수 있다.

   

▲핀란드의 야르벤빠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구성이나 운용은 학생 개개인에게 최적의 학습을 제공하기 위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 예로 1994년 이래 무학년제를 도입하였다. 이에 따라 각 학생이 자신에게 맞는 학습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배울 것인지, 학습 속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주도성과 상호소통을 통해 학생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협동심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모든 곳은 투명한 유리로 설치되었다. 과거의 학교는 군대식 교육을 해서 교사와 학생들 간의 소통이 전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지금 선생님들은 공동으로 방을 사용한다. 이동식 수업을 하기 때문에 담당 교실이 자기 방이 되며, 공동 방은 서로 수업에 대해 논의하고 아이들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교장 선생님의 방은 아주 작다. 학교 1층 구석에 위치해 있는 방은 교장의 권위를 찾아보기 힘들다. 늘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토론에도 참여하므로 방에 머물 시간이 별로 없다. 다른 학교나 다른 나라에서도 이 학교 건물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한다.

<나> 원형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의 바깥쪽에는 죄수를 가두는 방이 있고 중앙에는 죄수를 감시하기 위한 원형공간이 있었다(<그림 2> 참조). 죄수의 방에는 햇빛을 들이기 위해 밖으로 난 창 외에도 건물 내부를 향한 또 다른 창이 있어, 죄수의 일거수일투족이 중앙의 감시탑에 있는 간수에게 항상 포착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죄수의 방에 불을 밝힘으로써 방을 밝게 유지했다. 반면 죄수는 중앙 감시탑의 내부가 항상 어두워 간수를 볼 수 있기는커녕 간수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다. 죄수는 간수를 볼 수 없는 채 항상 보여지기만 하고, 간수는 보여지지 않은 채 항상 모든 죄수를 감시할 수 있었다. 이 시선의 ‘비대칭성’이 파놉티콘의 핵심구조였다. 파놉티콘에 수용된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간수의 시선 때문에 규율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못하다가 점차 이 규율 권력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 감시는 보편적이었고, 영구적이었으며, 포괄적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파놉티콘은 감시의 원리를 체화한 자동기계이다. 자동기계에는 파놉티콘의 컴컴한 감시공간에서 누구도 간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건축물과 그 기하학적 구조를 제외하고는 다른 물리적 도구 없이, 파놉티콘은 직접적으로 개개인에게 작동하며 정신에 의한 정신에 대한 권력 행사인 것이다.

   

▲벤담의 파놉티콘 A: 죄수의 방 F: 간수의 감시공간

<다> 중부휴게소에 처음 내린 사람이 변소에 갈 때는 습관적으로 건물 옆쪽으로 가곤 한다. 차마 저렇게 번듯하게 생긴 집 안방자리에 뒷간이 모셔져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부휴게소의 긴 건물 양쪽 끝에는 ‘화장실은 중앙홀 안쪽에 있음’이라는 안내문이 짜증스러운 글씨체로 씌어 있다. 오는 사람마다 변소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이다. 하지만 신경질 낼 사람은 오히려 우리 같은 사용자 측이다. 왜 상식에 벗어난 구조를 만들어 사람을 헛걸음질시켜, 화장실에 가는 사람이 무슨 대단한 벼슬문에라도 들어가듯 중앙홀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밀치면서 가게 하여 남부끄럽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 넓은 공간을 다 버려두고 요 구석만 바글거리게 해놓았는가.

중부휴게소 건물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건축물이다. 다원적 요소를 공존시키고 일상적 공간습관을 해체, 변형시키며 공간분할에 오픈스페이스 개념을 확대하였다.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현대인의 골 아프고 뒤숭숭한 정서를 즉자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중앙홀의 천장은 철빔으로 떠받쳐 으레 막혔다고 생각하는 천정을 시각적으로 노출시키고, 식당이나 커피숍이 있을만한 자리에 뒷간을 모셔놓고, 드나드는 자와 쉬는 자, 물건 사는 자의 동선을 뒤엉키게 하고, 변소 입구엔 문짝도 달지 않아 개방감을 확대시켰다. 하지만 그 결과란 바글대는 메인홀과 변소의 배설물 냄새가 커피 판매대까지 진동하는 도떼기시장처럼 된 것일 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적 공간 배치를 시도한 중부휴게소는 결과적으로 소유자의 철저한 상업주의에 편승하고 이용자의 편리성은 철저히 배제하는 비공공성의 공공건물이 되고 말았다.


[논제] 공간 배치와 활용의 측면에서 제시문 <가>와 <나>를 비교하고, 제시문 <가>를 토대로 제시문 <다>의 주장을 비판하시오. (1000자 ± 100자)

논제 해설
제시문에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까지 친절하게 가미된 논제다. 인간의 감각기관 중에서 정보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데 가장 유용한 것이 시각이라고 하지. 그런 점에서 빡빡한 텍스트로만 구성된 것을 읽고 머릿속에서 연상을 해야 하는 것에 비하면 이 그림들은 정말 큰 도움이 된다. 

1. 공통점 확인하기 : 외형만으로 보면 <가>, <나>의 건축물은 매우 유사하다. 중앙의 홀과 여기서부터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바깥 테두리 구조물의 관계가 눈에 들어온다. 즉, 중심과 외곽의 역할이 뚜렷하고 정보의 흐름은 모두 중앙으로 향한다. 비교는 이런 공통점을 가볍게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되겠다. 

2. 차이점 찾기 : 이 제시문들처럼 대조되는 특성은 분명한데 어떤 동일한 기준을 둘러싸고 상반되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 경우 다양한 차이를 찾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래서 답안을 작성하기 전에 연습지에 브레인 스토밍하듯이 여러 차이점을 찾아서 나열해 보자. 여러 측면에서 대비되는 특성을 찾아서 비교를 수행하면 매우 예리하고 논리적인 진술이 될 수 있다. 어떤 차이점을 말할 수 있을까? 학생들마다 관점이 다른 만큼 다양한 비교가 가능하다. 유일한 정답은 없으니 조바심 내지 말고 크게 대조해 보자. 예를 들어 이런 대비가 가능하다. 

첫째, 중앙의 역할 비교(사람들을 존중하고 편의를 향상시키는 역할 vs 감시와 통제) 둘째, 누가 중앙(권력)을 소유하는가?(시민 vs 권력자) 셋째, 사람들 간 의사소통 가능 여부 

권력자가 시민적 가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지 국민 위에 군림하는지에 따라 같은 정부 권력이라 해도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는 최근의 한국 정치사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주 유명한 주제가 정보기술의 양면성이다. 잘 쓰면 정보기술은 신속성과 편리성을 극도로 높여주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악용하면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디지털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떠올려 보면 이 논제의 취지가 쉽게 이해될 수 있으리라. 이렇게 건물의 외형 자체는 유사하지만 빛과 어둠이 대립하듯 두 건축물이 사람들에게 주는 효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점을 기술하면 된다. 

3. <다> 비판 :  물론 제시문에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화자의 견해도 일리가 있다. 예상치 않은 곳에 존재하는 화장실을 찾지 못해 불편을 겪고, 이런 저런 의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동선이 꼬이고 번잡하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겠지. 하지만 제시문은 너무 개인적인 짜증만 과장한 인상을 준다. 아무래도 비슷어슷한 건물들에 익숙하다 보니 참신하고 파격적인 건축물의 가치와 기능성은 간과한 것 같다. 다들 이런 생각만 갖고 있으면 바르셀로나를 빛내는 가우디, 시드니의 관광명소 오페라 하우스는 영영 볼 수 없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말야. 논제도 이런 인색한 시선을 비판하길 원하지?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가>를 토대로 비판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니 사람들을 틀에 가두거나 분리하지 않고 모두가 모이게 만드는 광장의 기능, 중앙에서 어느 쪽으로나 향할 수 있는 동선의 시인성, 중앙홀의 넓직한 개방감 등에도 주목할 필요를 강조하면서 비판하면 좋은 답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화장실 냄새가 새어나온다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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