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는 얼마나 잘났기에 공부의 신이라 불리는 걸까?"
"강성태는 얼마나 잘났기에 공부의 신이라 불리는 걸까?"
  • 대학저널
  • 승인 2011.03.31 1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부의 신 강성태의 효과적인 공부법

내 별명은 공부의神이다. 나는 ‘공신’이라는 대학생 교육 봉사 단체를 만들었고 ‘공신닷컴’이라는 회원수 20만 명의 공부법, 동기 부여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공신은 대한민국 최고의 봉사단체로 청와대의 초대를 받은 바 있으며, 공신닷컴은 정보통신 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 사이트로 등재되어 있다.

공신 이후로 공부법이란 장르가 생겼고, 그 이후로 난 MBC에서 공부법 프로 MC를 맡아 KBS 공부의 신 드라마 공부법 자문으로 대본 작업에도 참여 했다. 내가 썼던 공부법 책들은 중국과 대만에 수출되어 팔리고 있다.

과연 강성태란 인간은 얼마나 잘 났기에 공부의 신이라 불리는 것일까? 가까운 공신 멤버들마저도 알지 못하는 ‘나’에 관한 이야길 해보겠다.
 
공신 강성태, 중3 때부터 공부 시작하다 
내 초등학교 시절은 그야말로 인생의 암흑기였다. 경상북도 점촌이란 시골 마을에 살던 나는 부모님을 따라 서울 화곡동에 전학을 오게 됐다. 학교에서 내 별명은 더리맨(Dirty man)이었다. 까무잡잡하고 팔꿈치에는 때가 껴있어서 더럽다고 붙여진 별명이었다. 굉장히도 없어 보였던 모양이다. 중학생이 된 뒤로 일산으로 전학을 갔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찌질 했고 뭐하나 똑 부러지게 하는 게 없었다. 별 존재감도 없어 학교에 왔는지 안왔는 지도 잘 모를 학생이었다.

중3 올라가기 전 방학때 공부라는 걸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해봤다. 오기도 품었고 처음으로 독서실을 끊었는데 조용한 게 공부가 꽤나 잘 됐다. 학교와 좀 먼 곳이라 친구들도 없었고 대부분 대학생, 직장인들만 있는 곳이었다. 처음엔 잘 모르던 것도 보고 또 보니까 나름대로 알만 했고, 아니까 비로소 공부에 약간의 재미도 느끼게 됐다.

나는 중3 첫 시험에서 처음으로 반에서 2등을 했다. 반배치 등수와는 다르게 생각지도 못한 학생이 떠오르니까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날부터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아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칭찬을 받게 되니까 교무실에 가는 게 즐거울 정도였다.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들께 좋은 인상을 주기도 하고 또 선생님들께 칭찬을 받으니 학교 가는 게 신이 났다.

중3 내내 나는 그 기세를 이어가 우리 동네에서 공부 좀 한다는 공립고에 입학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약간의 고민은 공부였다. 중학교 공부는 벼락치기로 하면 한대로 나왔는데 고등학교 공부는 어렵기도 어려웠고 나름 열심히 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고1, 고2가 끝나 가는데도 반에서 중간 정도, 그 상태에서 달라지는 게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은 별로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성적은 잘 나왔다. 나와는 반대인 아이들이었다.

효율적인 공부법 작성, 서울대 입학의 원동력 
한 없이 좌절하고 있을 무렵 들었던 생각이 내가 했던 이런 행동들을 동생에겐 물려주지 말아야겠단 것이다. 나는 그 날부터 노트를 마련해서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지 이리 저리 시도를 해보고 상세히 적었다.

조금이라도 효율적인 방법들을 모두 적었다. 사실 그 당시엔 그게 공부법이라고 불릴 만한 것인지도 몰랐다. 공신닷컴 같은 사이트도 없으니 그저 전부 내가 직접 해보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식이었다. 그런데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이런 시도를 하고 방법들을 찾아가며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게 된 이후로 공부가 잘 되기 시작했다. 전보다 2배 3배 이상 공부가 잘 됨을 느꼈다. 내가 왜 진작 이런 식으로 공부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었다. 그 후회 때문에라도 더 공부하게 되었다. 고3 내내 난 공부하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 지 항상 생각했고 실천했다. 시험 볼 때마다 적용해보고 반성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고 다음 시험에 적용해 나갔다.

나는 이 노트덕분에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뿐만 아니라 그 노트에 적힌 공부법 덕분에 내 동생도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나는 줄곧 교육봉사를 해왔다. 봉사를 좋아하거나 사회를 바꿔보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 같이 힘들어하고 헤매는 학생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제대 이후 나는 내가 학생들에게 조언해줬던 공부법과 동기부여에 대한 조언을 모든 학생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공부법이란 것에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 방학을 이용해 공부법 강의를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자 했는데 사이트 이름을 고민하다가 누구나 ‘공부를 신나게’ 하길 바라는 뜻으로 공신이라 지었다. 처음 공부의 신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공부라는 것이 진저리나게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공신은 이후 공부의 신으로 와전되었고 지금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1:1로 멘토링을 하고 공부법을 전파하는 서울형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면 차라리 즐겨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해병대에서 뼈저리게 배운 이 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말 중에 하나다. 사람을 가장 크게 성장시키는 것은 안정이라기보다 역경이라는 뜻이다. 돌이켜 보면 나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나마 지금 내가 있기 까지 나를 잘되게 해주었던 것은 사교육도 잘난 머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괴롭혔던 친구들 덕분에, 좋지 않은 성적 때문이었다. 열등하기 짝이 없는 나도 공신이 되지 않았는가? 여러분이 지금부터 마음을 먹고 제대로 시작한다면 아마 나 같은 사람보다는 몇 배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았는가? 일단 마음부터 먹어라.

물론 지금 여러분에게 많은 고난과 좌절이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겪었던 것 이상으로 혹은 비슷한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내게도 단 한 순간도 공부란 게 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께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는 바로 그것이, 그 고난들이 결국 여러분을 성장하게 하는 가장 큰 보약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부디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꿈을 가져라. 고작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입시 따위로 좌절하긴 여러분이 너무 아깝다.

여러분은 절대 나약하지 않고 또한 이겨 낼 힘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여러분 곁엔 공신 선배들이 함께할 것이니까. 최소한, 이 찌질 했던 공신 선배 한 명 만큼은 여러분을 믿고 박수를 쳐 줄 것이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