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논술의 핵심, "거짓말쟁이의 역설"
김성호의 논술의 핵심, "거짓말쟁이의 역설"
  • 대학저널
  • 승인 2016.10.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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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과형 논술 완전 정복 - 고려대학교편

철수 : 영희는 거짓말쟁이다.
영희 : 철수는 정말 정직한 사람이다.

위의 이야기를 듣고 철수는 정직하고 영희는 거짓말쟁이라고 결론 내려도 될까? 

논리적으로 위의 대화를 분석해 볼 때 철수는 정직한 사람이거나 거짓말쟁이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만일 철수가 정직하다고 가정하면 철수의 말대로 영희는 거짓말쟁이기 때문에 영희가 한 말도 거짓이므로 철수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게 되므로 모순이다. 반대로 철수가 거짓말쟁이라고 가정하면, 철수가 한 말이 거짓이므로 영희는 정직한 사람이고 영희의 말이 참이 되므로 철수는 정직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는 철수가 거짓말쟁이라고 한 가정에 모순이다. 결국 철수가 정직한 사람이라고 하여도 모순이 되고, 철수가 거짓말쟁이라고 가정해도 모순이 된다.

이렇게 전제와 모순되는 결론에 빠져드는 묘한 진술을 거짓말쟁이의 역설이라고 한다.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하기 위해선 이런 역설적 상황에 빠지지 않아야 하겠지. 그래서 이 묘한 역설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자.

최초의 역설, 크레티카
역사상 최초의 거짓말쟁이 역설은 2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6세기께 에피메니데스라는 사람이 썼다는 '크레티카'라는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전한다.

"그들은 당신의 무덤을 만들었나이다, 오 거룩하고 높으신 이여/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만 하고, 몹쓸 짐승이며, 게으른 식충이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사십니다/ 왜냐하면 당신 안에서 우리가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은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제 아버지 제우스에게 하는 말이다. 전설 속 왕 미노스가 제 동포 크레타 사람들을 거짓말만 한다고 책잡은 것은 이들이 제우스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노스가 보기에 제우스는 불멸의 존재였다.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한 고대 그리스의 에게 문명을 미노아 문명이라 부르는 데서도 엿보이듯, 미노스는 크레타 역사의 상징적 이름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반은 사람, 반은 황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도 이 미노스 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미노타우로스란 '미노스의 황소'라는 뜻이다. 이렇게 유명한 미노스는 당연히 크레타 사람이지?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만 한다"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보면, 미묘한 상황이 빚어진다. 그의 말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반쯤은 전설의 인물인 시적 화자 미노스가 아니라 이 시를 쓴 것으로 알려진 에피메니데스가 이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사실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만 한다"는 말은, 비록 미노스의 입을 빌어 발설되긴 했으나, 에피메니데스 자신의 말이랄 수 있다. 그는 열렬한 제우스 찬양자였고 이 최고 신의 불멸을 믿었다고 한다. 

잠깐 에피메니데스라는 인물을 알아볼까? 플루타르코스가 쓴 솔론 전기에 따르면, 에피메니데스는 솔론의 아테네의 개혁을 도왔다고 한다.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앞에 적은 에피메니데스 시의 일부는 신약 성서에도 두 차례나 인용된다. 

오늘 얘기의 실마리인 둘째 행은 바울로가 크레타섬의 디도에게 보낸 편지(디도서 1:12)에 어느 크레타 예언자의 말로 인용되고(크레타 사람과 유대교를 포개며 둘 다를 비난하는 맥락이다), 넷째 행은 사도행전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인용된다.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사도행전 17:28)는 구절이 에피메니데스의 제우스를 기독교적 신으로 바꿔치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구절은 꽤나 유명한데, 놀랍게도 그리스의 주신 제우스에게 바친 시 구절에서 유래했단 말이지.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제 이 난문을 살펴보자.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만 한다"는 크레타 사람 에피메니데스의 말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일단 참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 말을 하는 에피메니데스 역시 크레타 사람이므로 거짓말만 할 것이고, 따라서 그의 입에서 나온 이 문장은 거짓이 된다. 다음, 이 문장이 거짓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 말을 하는 크레타 사람 에피메니데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 문장은 참이 된다. 말하자면 이 문장은 참말이면서 거짓말이다.

또는 참말도 거짓말도 아니다. 논리학의 모순율(어떤 명제도 동시에 참이면서 거짓일 수 없다)과 배중률(모든 명제는 참이거나 거짓이다)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가당착으로 보이는 진술을 역설(Paradox)이라고 한다. 역설은 불합리해 보이지만 타당한 논증이다. 하나의 진술이 명백히 타당한 추론에 의해서 두 개의 모순되는 결론을 낳을 때 역설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논리학자들이 흔히 거짓말쟁이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다. 

그런데 곧이곧대로 말하면, 에피메니데스 문장은 역설이 아니다. 앞의 추론에는 중대한 속임수가 하나 있다.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만 한다"는 에피메니데스의 말이 거짓일 경우엔, 이 문장이 그대로 거짓으로 남을 수도 있다. 앞의 추론에서 '모든 크레타 사람들이 거짓말만 한다'는 말은 딱 한 사람의 예외만 있어도 틀린 말이 되기 때문이다. 즉 위의 문장이 거짓말이라면 이건 반드시 모든 크레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몇 명이 참말을 한다면 위 진술은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경우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만 한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면 설령 에피메니데스는 거짓말쟁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이 말은 참말이 되지 않고 거짓말인 채로 남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흠, 괜한 말을 덧붙여 머리를 어지럽게 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네.

이런 약점까지 피해 나가는 엄밀한 의미의 거짓말쟁이 역설을 만들어낸 영예는 에피메니데스보다 2백년쯤 뒤에 살았던 밀레토스 철학자 에우불리데스에게 돌아간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의 이 말은 참말인가 거짓말인가?" 에우불리데스의 말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다.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이 말이 참말이게 거짓말이게?" 이 첫 문장의 진술이 참말이라 가정하면 이 말은 거짓말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거짓말이라 가정하면 참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오늘날 거짓말쟁이 역설이라 부르는 것은 이 밀레토스 철학자가 한 말의 변주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 문장은 거짓이다" 같은 문장이다. 이 문장은 또 근원적으로는, 에피메니데스의 문장을 조금 손본 것이기도 하다. 도대체 왜 "이 문장은 거짓이다" 같은, 참말인 동시에 거짓말인 문장이 나오는가?

역설의 대가 러셀
이발사의 역설… 집합론적 역설

에피메니데스의 시는 성경을 비롯한 많은 문헌에서 인용됐지만, 그것이 거짓말쟁이 문장으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에피메니데스라는 이름이 거짓말쟁이 역설과 명확히 연결된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 버트런드 러셀에 이르러서다.

러셀은 그 자신이 수학사와 논리학사를 뒤숭숭하게 만든 '러셀의 역설'을 발견하기도 했다. 러셀의 역설이란 '자기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모든 집합들'이 맞닥뜨리는 역설이다. 이 집합은 자신을 원소로 갖는가 그렇지 않은가? 갖는다고 가정하면 갖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고, 갖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갖는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러셀은 이런 예를 들었다. 어느 마을에 제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의 머리만 깎아주는 이발사가 살고 있다. 그는 제 머리를 깎게 될까 그러지 않게 될까? 그가 제 머리를 깎는다면 스스로 머리를 깎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제 머리를 깎아서는 안 된다. 한편 그가 제 머리를 깎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머리를 깎아주어야 할 사람들에 속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제 머리를 깎을 수도 없고, 안 깎을 수도 없다.

논리학자 고틀로프 프레게의 긴 노고를 한 순간에 허물어뜨렸다는 이 역설은 손쉽게 변주할 수 있다. 예컨대 위 이발사의 난처한 처지는 자화상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 자서전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전기만 쓰는 전기 작가, 저 먹을 걸 스스로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만 먹을 걸 만들어주는 요리사의 처지와 같다.

이런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서 살펴본 다양한 역설적 상황을 뒤집어 보면 답이 나온다. 참, 거짓이 확정되지 않은 말을 지시하면서 참,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도 하나의 원소로 포함되는 집합을 말하면서 자신을 빼고 말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사용하거나 개념의 의미를 모호하게 사용하는 경우도 유사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달의 미션 
앞으로 몇 년 간 만날 수 없는 고려대학교 논술고사 문제로 연습해보자. 고려대 2016학년도 기출문제다. 시험시간 100분에 문항 수는 2개이나 2번 문항에는 3개의 작은 문제가 딸려있다. 고려대는 통합교과형 논술의 한 전형을 선보이며 양질의 문제를 개발해 온 주역이었는데 2018학년도부턴 논술고사를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묘하게도 연세대는 수시모집에서 심층면접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다가 뒤늦게 2008학년도부터 논술고사 방식으로 전향했는데, 이제 고려대가 면접 전형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논술고사 문제를 만드는 데 피로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논술고사에 응시하는 수 만명에 이르는 지원자들의 답안을 짧은 기간 동안에 평가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면접도 학생들의 자질을 평가하는 좋은 전형 방식이 될 수 있으나 평가의 공정성, 객관성과 깊이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몇 년 후에 다시 제한적으로 논술고사 전형이 부활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년도 기출문제이니 세심히 살펴보고 신중히 답하기 바란다. 지면의 제약으로 긴 제시문들을 포함하는 언어 논술 문제를 생략하고 까다로운 수리 논술 문제만을 소개한다. 대개 이 수리 논술 문제가 변별력이 높고 답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으니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논제 해설
학교 측이 밝히는 출제 의도에 따르면 이 논제는 제시문의 내용을 정확히 해석한 기반 위에서 수리적 요소를 변형하여 사회과학적 모형으로 설정하길 기대한다. 그런 다음 이것의 의미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수리 논술 문항의 첫 번째 상황에서 주민은 자신의 직접적인 만족도에만 근거하여 선호하는 세율에 대한 의사표시를 하고, 두 번째 상황에서는 자신의 직접적인 만족도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고려하여 세율에 대한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 따라서 제시문을 정확히 이해하여 해당 내용을 사회과학적 모형으로 바꾸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수리적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으니 차분히 주어진 식을 참고하여 풀어나가면 된다. 수학 문제 풀이하듯이 수식만 나열해선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라. 필요하면 적절한 설명을 가미하는 편이 좋겠다. 가능한 예시답안을 소개하여 수험생들의 궁금증과 갈증에 답하도록 한다. 자신의 답과 잘 비교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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