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안 할 수 없는 방법’”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안 할 수 없는 방법’”
  • 대학저널
  • 승인 2015.02.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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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 강성태의 공부비법

나는 내 자신을 믿지 않는다. 내가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과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늘 확고하다. 조금의 의심도 없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나는 믿을 수 없다. 나는 계획을 세우면 지키질 못했다. 지키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나면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한참 나중에 연습장에 적힌 나의 계획표를 만나면 ‘어떤 놈이 여기다 계획표 낙서를 해놨네. 어떤 놈의 시끼야’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공부하겠다고 세웠던 계획표였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오늘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겠다 마음먹는다. 하지만 보통 컴퓨터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컴퓨터를 켜면(한 번에 일을 시작한 경우가 잘 없다) 포털에 인터넷 뉴스를 한 번 훑는다.

그놈의 스캔들과 열애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충격적인 사건사고는 충격적이어서 봐야 한다. 날씨 뉴스는 내일 얼어죽거나 쪄죽을지도 모르니 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 비라도 오면 안되니까 말이다. 내 경우 교육 관련 뉴스나 취업, 미래와 관련된 기사는 안 보면 직업적으로 소홀한 느낌이 드니 꼭 봐야 한다. 댓글 많이 달린 뉴스는 댓글 많이 달렸으니 봐야 하고 내 나이 또래가 많이 본 뉴스는 또 또래뉴스니까 봐야 한다.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면 30분은 훌쩍 가버린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SNS에 들어간다. 일단 여긴 들어가면 답 없다. 그러다 하루 해가 다 저물 때가 되면? 내일 하지 하고 가방 싸서 집으로 간다.

왜 이렇게 되는가? 그건 혼자만의 목표이자 계획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운 계획이고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계획이다. 이걸 어기면 어떻게 되는가? 별일 없다. 잠깐 ‘아휴 또 못 지켰네. 등신, 삼룡이, 멍게, 해삼, 말미잘 같은 인간아’ 하고 죄책감과 자괴감이 든다. 그러고 그냥 국에다 밥 말아 먹듯 잊어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누가 뭐라 혼내길 하는가, 실망하길 하는가?

그래서 나는 혼자만 알고 있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히기 싫어한다. 약속도 못 지키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누구나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계획이나 꿈이나 목표를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 내가 ‘빈부와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공신 멘토 한 명씩을 만들어 준다.’ 이 꿈을 거듭거듭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자기 제어 장치를 만든다. 말 그대로 자기를 제어하도록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다. 나는 ‘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지만 ‘안 할 수 없는 방법’ 또한 고민한다. 어떨 때는 이것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수험생 시절 의자에 몸을 로프로 묶고 공부했던 것 또한 자기 제어 장치의 일종이다. 내 스스로를 내가 컨트롤하기 참 어렵다. 그래서 로프라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동생을 시켜 의자에 앉은 나를 로프로 꽁꽁 묶으라고 했다. 내가 나도 모르게 냉장고 문을 열고 배도 고프지 않지만 뭔가를 먹으러 갈 때, 혹은 별로 급하지도 않은데 화장실을 가려할 때 그러다 컴퓨터로 향할 때 이 로프는 나도 모르게 일어서려 하는 나를 의자 쪽으로 잡아 당긴다. 나는 다시 앉아 공부를 시작한다. 최소한 아까 ‘공부 열심히 하기로 마음 먹었었지’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게 된다.

공신 멘토 중엔 심지어 공부로 도박을 한 경우도 있다. 친구를 모아서 방학 계획을 공유한다. 이 계획대로 문제집 한 권을 마스터하지 못한 경우 벌금으로 10만 원을 거는 것이다. 친구가 테스트를 해서 못 맞추면 그걸 벌금으로 내는 것이다. 설날 세뱃돈까지 합쳐도 10만 원 있을까 말까인데 이 전 재산을 도적놈들 같은 친구들에게 빼앗길 수 있겠는가? 악착같이 공부하여 내 전 재산을 지켜야 한다. 공부를 아니 할수 없는 것이다.

집안 냉장고에 인강 혹은 자습 계획표를 붙여놓고 하루하루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표시했던 공신도 있다. 집안 사람들에게 이 계획대로 공부한다고 이야길해 놓은 뒤다. 엄마, 아빠, 동생에게 말해 놨기 때문에 안 하기도 눈치 보인다. 안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앞서 여러분의 꿈이나 계획을 주변에 말하라는 것 또한 자기 제어 장치다. 만약 주변에 말할 용기가 없다면 여러분 스스로라도 써라. 종이에 여러분의 꿈과 목표를 적어라. 꿈은 여러분을 설레게 하는 커다란 비전을 적으면 된다. ‘빈부와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공신 멘토 한 명씩을 만들어 준다’ 같은 설레는 꿈 말이다. 목표는 단기적으로 정한 목표를 적는다. 이번 시험은 몇 등, 몇 점을 달성하겠다. 혹은 이번 주는 문제집을 몇 문제까지 풀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목표 말이다. 이 두 가지를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라.

여러분의 방문에도 붙이고 집안 벽 곳곳에 붙인다. 현관에도 붙인다. 현관 안쪽 말고 바깥쪽에도 붙이기도 한다. 그럼 동네 사람들도 여러분의 꿈을 알게 될 것이다. ‘어머, 저 집 아이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갈 거래.’ 혹은 ‘꿈이 대한민국 교육을 개혁하는 것이래. 교육부 장관이 될 건가? 잘 보여야겠다.’ 동네에 소문이 다 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옆집 아주머니가 여러분들을 격려해주거나 미래의 공신이 될 여러분에게 ‘공부 잘되고 있니? 정말 멋지다’ 이런 말씀을 해주실 것이다.

선생님, 친구, 부모님에게 꿈을 당당히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죽어도 못한다고 한다면 적어 붙이는 것이라도 꼭 해라. 지금 잠시 접어두고 이것 먼저 적어 붙여라. 오래 걸릴 일도 아니다. 적은 것은 나중에 바꿔도 된다. 꿈이 바뀔 수도 있고 공부 계획이 바뀔 수도 있다. 혹시라도 미래에 꿈이 바뀌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강성태 공신님 저는 하고 싶은 건 있지만 정하질 못하겠어요. 정했다가 나중에 바뀌면 어떡해요” 이런 후배들이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건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이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듣고, 보고, 배우고, 대학에서도 배우고 사회에서도 경험을 쌓는다면 새로운 꿈이 생기거나 꿈이 변형될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의 나도 이렇게 주구창창 내 꿈 이야기를 기회가 될 때마다 한다. 하지만 지금과 다른 꿈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무슨 바람이 들어 공부 못하는 학생을 전문적으로 연기하는 연극인이 되겠다고 한다거나 통일을 위해 일하는 시민단체 일을 하고 싶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꿈이 바뀔까 두려워 어떤 꿈도 시작하지 못한다면 어떤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여러분의 가능성은 믿되 여러분의 의지는 믿지 마라. 자기를 제어할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두라. 이것은 여러분이 못나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혼자서 사는 건 외롭고 견디기 힘든 것처럼 나 혼자만의 공부를 하기란 참 쉬지 않기 때문이다.

자 지금 고개를 들어 책상 앞을 보라. 소리 내어 그 앞에 적힌 꿈과 목표를 읽어보라.(눈 앞에 아무 것도 없다고? 내가 분명 잠시 접고 붙이라 했잖아. 지금이라도 붙여 보라. 내가 어느 날 불시에 찾아갈지도 모른다.) 눈 앞에 적힌 그 종이마저도 여러분이 꿈을 이루도록 지켜봐주고 응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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