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기는 주문? ‘공부하는 기계가 되자’”
“나를 이기는 주문? ‘공부하는 기계가 되자’”
  • 대학저널
  • 승인 2014.12.3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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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 공신 강성태의 공부비법

“나는 공부하는 기계다”

이 하나의 문장. 이 말 이외 어떤 것도 나의 그 시절을 대변할 수 없다. 아직도 생각난다. 필통을 열면 이 문구가 써 있었다.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펜을 꺼낼 때마다 이 문구를 보며 스스로의 생각은 물론 나 자신을 지우려 노했력다. 이것은 1년간 공부에 모든 에너지를 쏟기로 한 나의 신조였다.

물론 나도 남들처럼 멋있는 나만의 좌우명을 적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보다 나에게 적절한 말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초중고 시절을 거치며 나는 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강성태라는 인간. 그는 나약하기 짝이 없다. 수도 없이 유혹에 굴복을 당했다. 마음 잡기도 하지만 잠깐뿐이었다. 끈기가 부족했으며 공부를 할라치면 금세 잡념으로 머리가 가득 찬다.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무너지고 좌절한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주말 하루 날을 잡아 공부계획을 세워도 30분을 못 넘기고 TV를 켜고 들락거리기 일쑤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도 마음은 PC방에 가있고 게임 전략 구상하기에 바빴다. 나는 내 몸뚱이인 나 자신을 조금도 컨트롤하지 못했다. 한껏 놀고 나면 밀려오는 한심함과 죄책감,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생각을 잃는 것이 낫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기계가 되는 것이다. 기계는 놀고 싶어 하지도 않고 땡깡을 부리지도 않는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생각을 지운다면 놀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안함도 좌절감도 결국 내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생각 자체를 하지 말자. 혹여 생각이 들면 그 싹을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앞으로 남은 1년간의 수험생활 솔직히 잘 될지는 나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참을 자신은 있었다. 공부가 아무리 날 무너뜨려도 그저 묵묵히 버티는 건 할 수 있다. 소위 일진 친구들에게 노리개처럼 맞고 다닐 때도 있지 않았던가. 그 시절도 버텼는데. 그저 이 악마 같은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참는 것. 그건 할 수 있다.

참는 방법은 간단했다. 일부러 다른 생각을 했다. 마치 기계처럼 생각 자체를 하지 않거나 혹은 방해되는 생각이 면들 잽싸게 다른 생각으로 돌리는 것이다. 생각이 날 때마다 그 즉시 단 1초의 틈도 주어선 안 된다. 그대로 놔두면 잡념은 순식간에 독버섯처럼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지속된다. 한 시간이 멍하니 그냥 가버린다. 시작되기 전에 싹을 자르는 것이다.

게임 생각이 나면 하다못해 연습장에 영어단어라도 미친 듯이 썼다. 그렇게 한참을 쓰다 보면 잊혀졌다.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책을 소리 내서 읽어보거나 일부러 친구한테 모르는 걸 물어봤다. 이러면서 참았다. 바보 같지만 이것이 나의 절제 비결이다.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공부였다. 맞다. 나는 이렇게 절규하듯 하루하루 공부해 나갔다.

‘나를 잊어야 한다. 나는 없다. 나의 감정을 지우자’

이런 무미건조함의 극치. 힘들었다. 공부하는 그 순간엔 나라는 존재마저도 잊어야 한다.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의 개성과 자유분방을 나 스스로가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진리를 찾았다. 오히려 나를 버리니 내가 무언가로 채워졌다. 숨막힘 뒤에 찾아오는 쾌락이 있었다.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다는 뿌듯함이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런 느낌일 것이다. 그들의 일상을 보면 그야말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밥 먹고 몇 년간 한 가지 동작을 수천 수만 번을 한다. 펜싱에서 그 칼날 같이 날렵한 찌르기가 나오기 위해 도대체 몇 년간 같은 동작을 연마한 것인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점프 하나를 위해 몇 만 번의 도약과 쓰러짐이 있었겠는가? 셀 수조차 없다.

그 분들의 일상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어쩔 때는 감옥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니 감옥보다 더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모여 실력이 쌓이는 것이다. 이 순간들을 참고 지나야 세계 신기록의 점프나 사격 실력이 나오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일 것이다.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어떻게 공부의 신이란 사람이 이런 비인간적인 공부를 이야기할 수 있나? 그리고 늘 나는 당신이 소중하고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을 잊으라니. 이런 생각에 날 증오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험생활은 누구에게나 지독할 정도로 단조롭고 지루함의 연속이다. 그것이 당연하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오히려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을 이기기 위해 인간이다 보니 나타나는 나약함이나 사사로움 따위는 없애 버려야 한다. 그럴 땐 차라리 나라는 존재를 버리고 무쇠로 된 기계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거북할지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하나에 미치고자 한다면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내 생각을 내가 컨트롤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이 우리 마음속에서 나온다고 믿게 됐다. 놀고만 싶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모두 마찬가지다. 내 마음 속에 있다.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처음엔 나는 나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구제불능 찌질이라 생각했지만 생각은 바뀌었다. 나 자신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를 버리면 천하를 얻는다.’

이 말처럼 언젠가 얻게 될 그 무언가를 떠올리며 나를 지워내고 또 지워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다면 앞으로 1년간 기계가 되면 또 어떤가. 그렇다. 대를 이루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소, 나의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는 것이다. 무아지경(無我之境), 말 그대로 내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다. 정말로 나는 공부하는 기계가 된 것이다. 그냥 글자 그대로 읽어보면 너무나 삭막하기 이를 데 없지만 반대로 이것은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살아 있음을 알리는 몸부림이자 내 의지의 표상이었다. 나를 이기는 주문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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