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2011학년도 수시1차 모집 논술고사 문제지 (인문계)
[건국대]2011학년도 수시1차 모집 논술고사 문제지 (인문계)
  • 대학저널
  • 승인 2010.12.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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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2011학년도 수시1차 모집 논술고사 문제지 (인문계)

  ※ 문 제
문제 1 : 자기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가]~[다]의 입장을 비교하여 분석하시오. (501~600자)
문제 2 : [라]의 표에서 가격 정책에 따라 고객의 반응이 달라지는 양상을 심리적·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하시오. (501~600자)
문제 3 : [가]~[다]를 참고하여 [마]의 상황을 논평하고, 타자와의 공존 방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시오. (901~1,100자)
[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문명의 요구를 난생 처음 듣는 것처럼 순진한 태도로 생각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놀라움과 당혹감을 억누를 수 없을 것이다. 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가? 그게 우리한테 무슨 이익이 되는가? 무엇보다도 우선, 어떻게 그 요구를 달성할 것인가? 그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내 사랑은 나한테 너무나 소중해서,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내던져 버리면 안 된다. 사랑은 나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중요한 점에서 나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 그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완벽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의 이상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해도, 역시 그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 사람이 내 친구의 아들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해야 한다. 제 아들이 재난을 당하면 내 친구는 고통을 느낄 테고, 친구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의 고통을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신의 가치로 나를 매혹하지 못하거나 내 감정 생활에 이미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지 못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 가족은 모두 내 사랑을 내가 자기들을 좋아한다는 증거로 소중히 여기고 있는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내 가족과 동등하게 대한다면 그것은 내 가족에게 부당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도 역시 벌레나 지렁이나 율모기처럼 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 사람을 (보편적인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면, 내 사랑 가운데 그의 몫으로 돌아가는 양은 아주 조금밖에 안 될 것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도저히 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는 없다. 도저히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명령을 그토록 엄숙하게 선언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좀더 면밀히 검토해 보면, 더 많은 난점이 발견된다. 낯선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솔직히 고백하면 내 적개심과 증오까지도 받아 마땅하다. 그 사람은 나에 대한 사랑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고, 나를 조금도 존중해 주지 않는다. 나를 해치는 것이 자기에게 이로우면, 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나를 해칠 것이다. (중략) 그 사람이 다른 식으로 행동하면, 다시 말해서 낯선 사람인 나를 존중해 주고 너그럽게 대하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과는 관계없이 나도 기꺼이 그 사람을 그렇게 대할 것이다. 그 젠체하는 명령이 ‘네 이웃이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면, 나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이제 나를 나무라는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네 이웃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네 원수이기 때문에, 너는 네 몸처럼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야 나는 이것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겠다.
-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나]
사실상 생명 가치는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어서 ‘이념적 가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살아가려는 의지, 즉 ‘의지적 가치’의 형태로 모든 생명체들의 본능 속에 깊이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유정성(sentience)을 지닌 모든 동물들에게서 외형적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이를 명시적으로 의식하고 있으며 이렇게 의식된 내용이 바로 자신의 생명 가치관을 이루는 선천적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분명한 점은 이러한 생명 가치관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자기 삶의 주체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단위로 하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인데, 이 점 또한 본능에 깊이 각인(刻印)되어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생명에 대한 이러한 소중함의 관념이 오로지 자기 자신의 생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사람들의 생명은 설혹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여전히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는 어떤 합리적 사변(思辨)에 의해 도달하는 관념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인 것이다. 그러나 느낌만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사람의 생명 가치를 동등한 가치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자기 주위의 사람들의 생명 가치에 대한 일정한 차별이 나타나게 된다. 자신에게 자기 부모의 생명이 상대적으로 더 소중하게 느껴짐을 아무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보면 이는 온당한 판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대등하게 태어난 인간이라 할 때 내 생명 또는 내게 가까운 사람의 생명만 소중하고 남의 생명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할 어떤 이유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 간단한 원리, 즉 모든 사람의 생명은 다 같은 정도로 소중하다는 이 대원칙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기까지는 오랜 역사적 과정이 소요되었다. 이는 우리의 느낌 속에 부각된 인간 생명 가치의 차별성과 합리적 사고가 말해주는 동등성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과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이겨내려는 의식적 노력이 요구되며 이를 반영하는 사회적 장치가 바로 윤리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남의 생명의 소중함이 자기 생명의 소중함과 원칙적으로 같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윤리의 바탕에 깔린 기본 윤리가 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일러 윤리의 ‘황금률’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원칙적으로’ 같다고 하는 점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로는 이들의 소중함에 대한 상대적 차이를 심정적인 면에서까지 완전히 제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의 입장에 서면 그가 느끼는 바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이해’를 지니고 이 이해가 공유되는 바탕 위에 모든 사회의 행위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이 윤리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 장회익, 「새로운 생명 가치관의 모색」 (고등학교 ‘독서’ 교과서)

[다]
로만과 벤츠는 피자를 나눌 때의 정의의 원칙을 세계 빈민 구제 문제에 적용하여 한 가설을 세웠다. 그 가설은 누구나 같은 몫의 피자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의가 이루어지려면 누구나 자신의 처지(몸무게, 집 등)에 상관없이 같은 몫의 피자를 먹어야 한다. 이렇게 그들은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점에 기초하여 피자는 똑같이 나눠져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논리로 식량이 남는 국가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제3세계 국가의 사람들에게 식량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빈부 격차가 생기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하딘은 과잉인구의 문제에 대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오늘날의 인구 문제가 인간종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보았다. 그는 기술의 발전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인구를 증가시키기 전까지만 모든 굶주린 사람들이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원칙이 정당화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만일 세계의 빈민이 모두 먹을 수 있게 된다면, 근대적 보건 의료와 의학 덕분에 낮아진 유아사망률로 인해 빈민의 수는 급속하게 늘어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빈민이 증가함으로써 생물계의 안정성과 환경의 거주 가능성이 위협받을 것이며, 결국에는 세계의 식량 생산이 인구 성장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집단적인 기아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적합한 정의의 원칙은 자신들이 생산할 수 있거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식량만을 얻는 것이라야 마땅하다. 제3세계에서 굶어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들이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어도 부정의(不正義)한 것은 아니다. 사실 그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해 부당한 처사이다. 미래 세대는 과밀한 인구 밀도로 열악해진 환경에서 살게 될 것이며, 그 후에는 집단 아사(餓死)의 시기를 견뎌야 할 것이다.
두 원칙은 환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충돌한다. 충분한 식량이 있을 때 모든 인간은 적절한 영양을 위해 음식을 섭취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은, 과밀 인구로 인해 생태계와 환경이 위협받을 때 식량을 생산 혹은 구입할 수 없는 사람은 굶어 죽어도 된다는 원칙과 갈등하는 것이다. 굶어 죽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경쟁적인 두 원칙을 지지할 수 있다. 첫 번째 원칙은 단기간의 아사에 집중하고 두 번째 원칙은 장기간의 아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 피터 벤츠, 󰡔환경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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