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신이 되고 싶다면 여러분, 분노하세요!!!”
“공부의 신이 되고 싶다면 여러분, 분노하세요!!!”
  • 대학저널
  • 승인 2014.10.3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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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 공신 강성태의 공부비법

제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TV에서 일제시대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어요.

일제시대 다큐는 많이 보았지만 그 날 방송에서 집중 조명됐던 것이 일본군의 731부대 마루타였습니다. 그 전에도 마루타라는 이름의 뜻을 대충은 알고는 있었습니다. 우리가 장난 삼아 쓰는 말이기도 했죠. 하지만 그 때 마루타의 뜻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마루타란 이름은 731부대에 소속된 포로들을 가르키는 말로 우리나라 말로 통나무란 뜻입니다.

마루타엔 전쟁포로뿐 아니라 민간인도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포로라지만 왜 살아 있는 사람들을 통나무라 불렀을까요? 여러분이 짐작했다시피 일본군은 전쟁에서 사용할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마루타를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실험실에서 살아 있는 쥐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해부와 의학실험을 하듯이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것입니다. 동물로 실험을 할 수도 있지만 더 정확한 실험을 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실험은 철저하게 마취 없이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수많은 한국인이 희생당했습니다. 하지만 희생된 중국인, 한국인 등이 만여 명 정도로 집계될 뿐 한국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일본군이 전쟁에 참패를 했지만 정확히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실험대상으로 쓰여졌는지 아직까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731부대에 수감자 중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기에 얼마나 참혹했는지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인도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이 투여한 주사를 맞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만행은 그야말로 구역질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세균을 투입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며 죽어가는 지 해부하는 것은 물론 살아 있는 사람을 냉동시켜 죽어가는 것을 관찰합니다. 동물의 피나 바닷물을 사람에게 주입해봅니다. 갓난 아기를 인질로 삼아 그 아무 죄도 없는 어머니를 생체 실험 대상으로 쓰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죠.

그런데 731부대 관계자들은 전쟁이 끝난 뒤 어떻게 됐을까요? 일본과 미국에서 풍족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 전범으로 처벌을 받지도 않았고 전후 일본에서 영웅으로 존경받았지요. 실제로 731부대를 창설했던 이시이 시로는 전쟁 후에도 어떤 벌도 받지 않았고 막대한 돈을 벌며 단 한번도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군의 수뇌부는 전범으로 철저하게 죄값을 치른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그 당시 독일군에 있으며 유태인 학살을 주도한 인물들은 대부분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지구상 어디에 숨어있어도 끝까지 체포해서 죄값을 치르게 했습니다. 유태인은 이미 전 세계 정치와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길렀기 때문이기도 하죠. 일본은 정반대였습니다. 그 이유가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국이 생체실험의 결과를 소련이 아닌 미국에 넘기는 조건으로 일본에 전범재판을 포함한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우리 나라는 일본을 벌할 어떤 힘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 방송을 보는 동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죄로 죽어간 사람들. 그들이 너무나 가여웠습니다. 책상에 앉아서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릴까봐 정말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라도 쓰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무지했고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일본에선 시도 때도 없이 교과서를 왜곡하고 독도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공부를 왜 합니까? 오늘도 책상에 앉아서 오전 오후 꽉꽉 채워 수업을 듣고 밤늦게까지 답답한 교실에 앉아서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또 다시 더 답답한 학원 교실에 앉아 졸린 눈을 비벼가며 또 수업 듣고, 주말엔 놀고 싶은 마음 꾹꾹 참아가며 과외까지 받습니다. 왜 이래야 하는 건가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에 왜 하필 지겹기 짝이 없는 공부죠? 제가 공부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런 분노였습니다.

여러분 분노하세요. 분노해야 하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좋은 대학에 가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공부한다는 것은 공부하는 데 별다른 힘을 실어주지 못합니다. 제 말씀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시라는 말이 아니에요. 냉정하고 또 냉정하게 여러분을 주변에 있는 많은 부조리와 모순들, 그것을 보고 끊임없이 분노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젊고 열정이 있으며 양심과 정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이라면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분명 가슴 속에 타오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가 분명 여러분의 공부에 폭발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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