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수시논술 분석
서강대 수시논술 분석
  • 대학저널
  • 승인 2010.03.2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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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2007학년도 수시 2학기 문제풀이

 

 

 

 

 

 

 

 


논제의 취지 파악은 논술문의 알파요 오메가다
출제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서야 논제에 제대로 된 응답을 할 수 없다. 물론 이 출제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논술의 핵심이면서 또한 가장 난해한 부분이라는 것도 맞다.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여러 글들을 배치해 두고서 “이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라”고 하니 대개 겁부터 먹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지만 이 장애물을 피하고서는 좋은 논술문에 이를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논제의 취지를 파악할 것인가. 아주 까다로운 고급 수준의 논제를 이달의 재료로 해서 논제 파악에 나서보자.(간혹 구어체를 섞어서 얘기하는 것을 너른 마음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1. 논제와 제시문들을 꼼꼼하게 거듭 읽어야 한다
논제와 제시문들을 최소한 3번은 읽어 보아야 한다. 어떤 논제라도 말이다. 그리고 논제의 직접적 요구사항마다 밑줄을 긋고 번호를 매겨둔다. 대개 이 요구사항 하나하나가 논지의 구성에서 각각의 소주제를 담은 문단으로 나눠지는 경우가 많다. 이 요구사항들 중 하나라도 응답하지 않으면 큰 감점을 당하게 된다. 때로는 논제 속에 친절한 힌트가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2. 제시문들의 연관관계를 포착해야 한다
모든 제시문들은 다 제 나름의 역할과 기능을 갖고 있다. 인용 가능한 지문이 수백, 수천이 넘는다. 그 중에서 엄선되어 이 자리에 앞 뒤 잘린 채, 제시되어 있다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출제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말이다. 제시문을 엮는 출제자들의 눈길을 함께 느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제시문들의 연관관계란 이런 것이다.
사례 I : 1. 문제 제기의 기능을 담당하는 제시문 A(이 논제의 주제, 배경 등을 암시한다)
2.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보여주는 제시문 B
3. 또 다른 해결책을 보여주는 제시문 C
사례 II :1. 어떤 주제, 현상에 대한 견해 A
2. 이와 상반된 견해 B
3. A, B 중 하나를 적용하여 해석해야 할 상황을 보여주는 C
사례 III : 서로 다른 입장이나 유형을 각각 대표하는 세 개의 제시문 혹은 네 개의 제시문(이런 경우 대개 이 중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여 나머지 견해를 비판하라고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3. 문제의 배경이 되는 현상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비판이란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의 문제점을 직시하면서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인 표현을 빌어 ‘창조를 위한 파괴’라고도 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논제들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현대 문명의 위기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시대로 돌아가 정조 시대의 국가적 과제에 대해, 청나라에 대한 견해를 둘러싸고 논쟁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역사 주제를 오늘날 거론하는 것도 다 오늘날의 문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기에 그런 것이다.
비판과 비판 정신은 모든 학문에 필수적인 것이다.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논제들에 접근할 때, 우리 역시 비판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고급스런 논제들에선 이런 현대 문명의 문제점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는 제시문들을 인용하는 게 많다. 개별적인 사례만을 보여주는 제시문들에서, 현대 문명의 근본적인 위기(혹은 위기의 징후)나 문제점을 역으로 끌어내어 일반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독해력의 차이가 드러난다.

4. 논지의 논리적 구성이 필요하다
글의 전체 분량을 고려하여 적절한 개수의 문단(=단락)으로 소주제들을 배열하고, 분량을 안배해야 한다. 이런 전체 구상을 간략한 개요로 작성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주먹구구식으로 펜에만 맡기고 바로 논술문을 써나가선 안 된다. 논제의 요구사항에 명료하게 응답하는 밑그림 구성이 필요한 것이다. 개요는 말 그대로 개략적으로 요점만 기술하면 족하다. 자기만 알아보면 되는 것이니, 완결된 문장으로 표현할 필요도 없다. 논제의 요구사항과 제시문들의 개수를 고려하여 적절히 문단을 나눠주면 된다. 무릇 가치 있는 내용도 형식 속에 침전되는 법이란 걸 명심하자.
통합교과형 논술고사에선 대개 서론이나 긴 도입부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다만 때에 따라 논의를 정리하는 별도의 단락이 마지막에 필요할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이달의 미션
아래 논제를 읽고 논술문을 작성해보자. 변별력이 매우 높은, 빼어난 논제다. 쉽게 말하여 가장 난이도가 높은 문제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마도 이보다 상위 레벨의 난해한 문제는 없을 게다. 그러면 변별력이 없어지게 되니까. 서강대학교 2007학년도 수시2학기 문제 중에서 비중이 가장 높고, 규정 자수도 가장 큰, 3번 논제이다(1번 논제: 30% 비중, 500~600자 분량, 2번 논제: 30% 비중, 500~600자).


출제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서야 논제에 제대로 된 응답을 할 수 없다. 물론 이 출제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논술의 핵심이면서 또한 가장 난해한 부분이라는 것도 맞다.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여러 글들을 배치해 두고서 “이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라”고 하니 대개 겁부터 먹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지만 이 장애물을 피하고서는 좋은 논술문에 이를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논제의 취지를 파악할 것인가. 아주 까다로운 고급 수준의 논제를 이달의 재료로 해서 논제 파악에 나서보자.(간혹 구어체를 섞어서 얘기하는 것을 너른 마음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논제와 제시문들을 최소한 3번은 읽어 보아야 한다. 어떤 논제라도 말이다. 그리고 논제의 직접적 요구사항마다 밑줄을 긋고 번호를 매겨둔다.

대개 이 요구사항 하나하나가 논지의 구성에서 각각의 소주제를 담은 문단으로 나눠지는 경우가 많다. 이 요구사항들 중 하나라도 응답하지 않으면 큰 감점을 당하게 된다. 때로는 논제 속에 친절한 힌트가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모든 제시문들은 다 제 나름의 역할과 기능을 갖고 있다. 인용 가능한 지문이 수백, 수천이 넘는다. 그 중에서 엄선되어 이 자리에 앞 뒤 잘린 채, 제시되어 있다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출제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말이다. 제시문을 엮는 출제자들의 눈길을 함께 느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제시문들의 연관관계란 이런 것이다.

사례 I : 1. 문제 제기의 기능을 담당하는 제시문 A(이 논제의 주제, 배경 등을 암시한다) 2.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보여주는 제시문 B 3. 또 다른 해결책을 보여주는 제시문 C 사례 II :1. 어떤 주제, 현상에 대한 견해 A 2. 이와 상반된 견해 B 3. A, B 중 하나를 적용하여 해석해야 할 상황을 보여주는 C 사례 III : 서로 다른 입장이나 유형을 각각 대표하는 세 개의 제시문 혹은 네 개의 제시문(이런 경우 대개 이 중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여 나머지 견해를 비판하라고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비판이란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의 문제점을 직시하면서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인 표현을 빌어 ‘창조를 위한 파괴’라고도 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논제들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현대 문명의 위기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시대로 돌아가 정조 시대의 국가적 과제에 대해, 청나라에 대한 견해를 둘러싸고 논쟁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역사 주제를 오늘날 거론하는 것도 다 오늘날의 문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기에 그런 것이다. 비판과 비판 정신은 모든 학문에 필수적인 것이다.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논제들에 접근할 때, 우리 역시 비판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고급스런 논제들에선 이런 현대 문명의 문제점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는 제시문들을 인용하는 게 많다. 개별적인 사례만을 보여주는 제시문들에서, 현대 문명의 근본적인 위기(혹은 위기의 징후)나 문제점을 역으로 끌어내어 일반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독해력의 차이가 드러난다. 글의 전체 분량을 고려하여 적절한 개수의 문단(=단락)으로 소주제들을 배열하고, 분량을 안배해야 한다. 이런 전체 구상을 간략한 개요로 작성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주먹구구식으로 펜에만 맡기고 바로 논술문을 써나가선 안 된다. 논제의 요구사항에 명료하게 응답하는 밑그림 구성이 필요한 것이다. 개요는 말 그대로 개략적으로 요점만 기술하면 족하다. 자기만 알아보면 되는 것이니, 완결된 문장으로 표현할 필요도 없다. 논제의 요구사항과 제시문들의 개수를 고려하여 적절히 문단을 나눠주면 된다.

무릇 가치 있는 내용도 형식 속에 침전되는 법이란 걸 명심하자. 통합교과형 논술고사에선 대개 서론이나 긴 도입부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다만 때에 따라 논의를 정리하는 별도의 단락이 마지막에 필요할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아래 논제를 읽고 논술문을 작성해보자. 변별력이 매우 높은, 빼어난 논제다. 쉽게 말하여 가장 난이도가 높은 문제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마도 이보다 상위 레벨의 난해한 문제는 없을 게다. 그러면 변별력이 없어지게 되니까. 서강대학교 2007학년도 수시2학기 문제 중에서 비중이 가장 높고, 규정 자수도 가장 큰, 3번 논제이다(1번 논제: 30% 비중, 500~600자 분량, 2번 논제: 30% 비중, 500~600자).

아래의 논제 해설과 예시답안 평가를 보기 전에, 다시 한 번 당부한다. 직접 써 본 다음에 자기 글과 비교해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눈으로만 보면, 마음에 깊이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간곡한 당부를 무시해야 할 사정이 있는 학생이라면, 논제 해설을 읽기 전에 머리 속으로라도 답을 정리해보자. 네 가지 관계를 먼저 유형화해 보자. 이 중 어떤 입장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논제 해설 - 두 개의 시선


1. 주체와 대상은 철학개념이다. 주체는 실재하는 객관을 인식하고, 감각하며, 능동적 작용을 가하는 주관을 뜻하는 말이다. 대상은 이런 주체(혹은 주관)의 작용을 받는 객관적 실재나 사물을 말한다. 말이 다소 딱딱하게 들리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주체는 Subject이고, 대상은 Object다. 또 Object를 객관이라고도 번역한다. 그러니 학문 용어로 대상과 객관은 같은 말이 된다. 다르다고 우기면 안 된다(^^).

이제는 현대의 세계인 모두의 지각이라고 할 수 있는, 서양의 근대적 세계관은 흔히, “주체의 눈으로 세상만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분별하고, 재단하고, 해석하고, 이용할 것인가”라는 관점에 서 있다고도 한다. 쉽게 말하여, 세계의 주체인 인간의 눈으로 자연과 사물을 일방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자연 현상 이면에 숨은 과학 법칙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이런 발견들에 기초해, 자연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이제는 자연의 지배자 지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달과 지속적인 경제 개발이 자연 환경의 파괴하여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순환과 재생 능력이 무너지는 생태적 위기가 닥쳐왔다.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를 일삼은 결과로, 인간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단 말이다.

그래 이제 짐작하겠지? 왜 이런 이야기를 에둘러 하고 있는지. 표면상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이 논제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숨기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텍스트 이면에 있는 출제자의 시선을 포착하는 게 중요한 거란 말이다. 건강하고 바람직한 주체/대상의 관계를 선택하여 나머지를 비판해야 한다는 뜻이지. 이런 관점에서 제시문들 각각의 관계를 유형화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개 이런 정도가 되겠다. (가)의 관계는 주체와 대상이 서로 구별되지도 않고 있는 미분화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 상대를 상대로서 알지 못하면 상대와 건강하고 바람직한 관계 설정도 되지 않는 것이니 이 관계를 선택하면 오답이 된다. (나)의 관계는, 전형적인 근대 서구적 세계관에서 보이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다. 연기를 피우는 자가 일방적으로 대상들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인 것. 주체의 선의가 문제가 아니라, 일방성이 문제인 거다. ‘적막할 것’이란 느낌은 인간의 일방적인 해석일 뿐이란 말이다. (다)의 관계는 새로운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깡통 또한 나를 보고 있다”는 인식 말야. 한갓 보잘것없는 사물도 나와 대등한 존재라는 성찰이 담겨 있는 글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 ‘주체와 대상이 대등하게 상호작용하는 쌍방향적 관계’라고 말야. 그럼 (라)의 관계는 뭘까? ‘주체와 대상의 지위가 전도된 가장 위험한 관계’라고 할 수 있겠지. 이 대목에서 말해 두는데, 이 논제는 매우 친절하게도 문제 끝 부분 괄호 글에서 주체와 대상을 알려주고 있었단다. 주체는 ‘유폐된 자’이고, 대상은 ‘중앙의 탑’이라고 말야. 확인해 보길. 그렇지? 그런데도, 이 논제에 답한 글들을 보면, 30% 가까운 글들이 (라)의 주체를 ‘중앙의 탑’이라고 쓰고 있단 말이야. 당연히 큰 감점을 당하겠지?

정답은 유일하지 않고, 표현력도 저마다 다르니 다양한 글들이 다채롭게 쏟아지겠지만, 가장 간결하고 좋은 글은 위에서 설명한 내용과 가까운 분석을 가한 글이 될 게다. (다)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서, 나머지 관계들을 비판했다면 출제자들이 놀라겠지. 정곡을 찌른 답안이라고 말야. 여기까지의 해설을 필요하면 여러 번 읽어보시길. 출제자들의 시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2. 이제 덧붙이는 글은 그냥 비밀스런 이야기려니 하고 읽어두자. (라)에 나타난 관계에 대해 보충설명을 하려는 거다. 주체와 대상의 지위가 전도 되었다고 했지? 이게 실은 현대 문명의 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거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사회 제도나, 구조에 오히려 지배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거지. 정보화 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프라이버시와 은밀한 마음마저도 감시당할 수 있다는 이야긴(이메일과 메신저 내용 열람, 컴퓨터 파일들 감시 등을 통해서 말야) 공감할 수 있겠지. 또 넘쳐나는 상품들에 둘러싸여, 현란한 광고에 눈이 먼 채, 아이팟을, 아이팟 터치를, 아이폰을, 넷북을, PMP를, 울트라 씬 노트북을, LCD TV를, LED TV를 갖고 싶어하는 현대의 소비자들을 떠올려보렴. 정보화 기술은 누가 왜 만든거지? 에일리언이 인간을 통제하려고? 수많은 상품들은?

그래 모두 인간(주체)이 만들어낸 것들이지. 이 논제의 관점에서 보면 대상인 거야.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피조물에 불과한 대상들에 오히려 지배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거야. (라)글에 나온 ‘유폐된 자들’과 ‘중앙의 탑’은 이런 현대 사회에 대한 비유와 상징이라는 거지. 그래서 건강하고 바람직한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다. 출제자들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실은 (다) 글의 필자인 자크 라캉과 (라)의 필자인 미셸 푸코는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다. 이른바 현대 문명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기울인 사상가들이다. 인용된 글의 하나는 문제점을 보여주고, 하나는 그 극복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거지. 왜 (다)의 관계를 제시할 때, 논지가 정곡을 찌르면서 술술 풀리는지 알겠지?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에 대해, 더 많이, 더 깊이 알고 싶은 지식욕을 가진 학생이라면 시간을 쪼개『미학 오디세이3』(진중권, 휴머니스트)을 읽어보길)

(우수 답안)
제시문 (가)에서 주체인 ‘나’는 실의에 빠져있는데, 이 때문에 ‘새’가 운다고 표현하였다. 자연물인 새가 슬픔의 감정으로 우는지, 기쁨의 감정으로 노래하는지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새’가 운다고 표현한 것은 주체의 주관적인 감정이 이입된 표현이며, 이때, 대상인 ‘새’는 주체의 감정을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제시문 (나)의 ‘집’, ‘나무들’과 ‘호수’는 주체인 ‘연기 피우는 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어들여진 소재이다. 즉 주체가 연기를 피우는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상은 주체와 동등한 관계가 아닌 종속적 관계가 되며, 주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의미가 규정되고, 해석되고 만다.
이와 달리, 주체와 대상이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제시문 (다)는 보여준다. 여기에서 ‘나’와 ‘깡통’은 둘 중 어느 하나가 일방적 우위를 차지하여 다른 하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고 평등한 입장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깡통은 무생물이지만, 생물인 ‘나’가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그것도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평등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체와 대상의 부정적인 관계는 제시문 (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앙의 탑’은 ‘유폐된 자들’을 철저히 감시할 수 있으나, 유폐된 자들은 결코 중앙의 탑이나 다른 유폐된 자들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유페된 자들은 중앙의 탑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 상태이다. 주체가 대상에 의해 통제되고 억눌리는 상황인 것이다.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에 변화를 주는 작용자, 즉 주체인 인간들은 자연을 바꾸기도 하지만, 자연에 의해서 작용받기도 한다. 인간의 조정능력 밖인 자연재해는 자연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주는 극명한 예들 중의 하나이다. 즉, 제시문 (다)처럼, 주체와 대상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제시문 (가), (나)에 나타난 관계들을 본다면, 이들은 주체가 자의적으로 대상의 의미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주체의 감정에 따라 ‘울고 있는 새’, 그리고 주체가 합리화하고자 한 행동에 따라 해석되고 끌어들여진 ‘집’, ‘나무들’, ‘호수’는 모두 주체가 전달하고자 한 의미의 수단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제시문 (라)는 대상에게 주체가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주체는 능동성을 잃고 일거수일투족을 대상으로부터 감시당하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곧 제시문 (가), (나), (다)는 주체와 대상 중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주체와 대상이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주체와 대상이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작용하는 관계야말로 인간과 세계간의 건강한 관계라 할 것이다.

(평가)
이 논제에서 이렇게 잘 쓴 글은 매우 희소하다. 논제의 난이도를 고려할 때, 이 글의 완성도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논제의 요구에 충실히 응답하고 있으며, 각 제시문에 나타난 관계도 비교적 정확하게 추출하고 있다. 제시문들에 대한 합리적 해석에 근거한 논지가 객관성과 논리성을 보여준다. 논제 해설 2에서 말한 문제 의식까진 포착하지 못했으나, 이 정도면 상위 2% 이내에 해당한다. 다시 한번 논제 해설 1을 읽어보고 나서 이 답안을 검토해보기 바란다. 뭐 이 정도는 쉽게 쓸 수 있겠다고? 그래 그럴 수 있다. 출제자의 시선으로 제시문들의 관계를 추출한다면 말이지. 그래서 출제자의 시선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한 거다. 많은 오답 사례가 있으나, 지면 관계상 더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오답에서도 배우는 바가 있는데 말야. 다음 호를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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