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저널 황혜원 기자] 지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은 교육계에 대입 공정성 문제를 일으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축소와 정시 확대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시행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이 교육 정책의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대선 공약으로 정시 확대를 주장했으나,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이기혜 고려대 교육학과 강사가 서울 강남·강북의 일반고와 자사고, 특목고 등을 졸업한 학생들과 학부모, 재직 중인 교사 14명을 심층면담해 분석한 보고서는 정시 확대가 대입 공정성 확보의 정답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계층과 대입전형 대응 전략의 관계’ 보고서(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 48호)에 따르면 사회적 상층 계층은 모든 대입 전형에서 유리한 입지를 가질 뿐만 아니라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의 정시전형을 선호했다. 이는 정시 확대가 곧 대입 공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 상층 계층, 학종 등 모든 대입 전형에서 이점
우선 ‘공정성’이라는 개념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입시부정을 방지하는 공정성 차원을 넘어, 대입제도가 특정계층이나 집단에 유리 또는 불리한지를 살펴야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상층 계층은 자녀의 대입전형 준비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영향력 행사, 특목고·자사고 등 차별화된 준비시스템, 사교육, N수 등 다양한 대입전략을 통해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치열한 내신 경쟁에 대한 불만으로 정시 확대를 통한 편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학종은 흔히 말하는 서울 강남권에 거주하거나 자사고·특목고를 졸업한 학생에게 큰 이점을 지니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교외활동 기재가 금지되면서 차별화된 교내 활동을 통해 학생부를 내실 있게 채우려는 학부모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상층 계층이거나 자녀 성적이 상위권인 학부모들은 상대적으로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학종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설, 대회 개최 등을 적극 건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북 소재 자사고에서 근무 중인 교사 A씨는 “지금의 ‘금수저 전형’은 학생이 어떤 활동을 통해 대학을 가야 한다면, 그 활동을 학교에서 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고 요청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학종에서는 비교과활동 기록의 수상기록이 중요한데, 자사고·특목고의 경우 수상기록 측면에서 일반고에 비해 유리하다. 같은 지역의 학교라고 해도 학교 유형에 따라 교내 수상과 프로그램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북 소재 특목고를 졸업한 B씨는 “학교에서 크고 작은 상을 많이 줬고, 학교 프로그램 자체도 학종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전했다.
강북 소재 일반고를 졸업한 C씨는 “학교에서 열리는 대회나 상 자체가 별로 없어 수상기록을 많이 채운 학생이 3분의 2 페이지를 겨우 채웠다면 자사고나 특목고를 졸업한 학생은 수상기록만 2페이지를 넘어간다”고 말했다.
‘학종 =금수저 전형’ 프레임으로 정시 확대 주장
고교 체제에 따른 학교 유형은 특히 정시 준비과정에서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심층면담 결과 자사고는 학교 커리큘럼이 수능 맞춤형으로 설계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신 등급보다 모의고사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포진된 만큼 학교 차원에서 정시 위주의 교육과정을 설계해 내신 시험 준비가 곧 정시를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상층 계층일수록 자사고와 특목고 진학 가능성이 높은 만큼 수능 위주의 정시전형이 특정 계층과 집단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시사한다.
반면 강북 소재 일반고에서 근무 중인 교사 D씨에 따르면 일반고에서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2학년까지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아 수능에 희망을 거는 학생 ▲전문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 ▲예체능 계열 학생 등 세 종류로 구분된다.
특히 정시 준비를 위한 사교육은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대체로 가정환경이나 거주지 등에 따라 활용 정도 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강남권 거주 또는 자사고·특목고 학생들은 ‘대치동’ 사교육 시장을 활발히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정시 대비가 잘 된 자사고와 특목고일지라도 수능 대비 문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교육계와 수능 대비 수준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심층면담에 참여한 강남 거주 학생들은 거의 모든 학생이 과목당 40만~50만원 수준의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대치동 학원에 다닐 뿐만 아니라, 현장 강의 수강권을 끊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학부모도 흔한 일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자사고와 특목고를 졸업한 학생이 의대와 한의대 등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 재진학 하기 위해 N수를 선택하는 사례도 많았다.
강남 소재 자사고를 졸업한 E씨는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했어도 의대와 한의대 또는 화공계열과 컴퓨터공학과 등 취업을 생각해 재수, 삼수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원래 성적에서 과목당 1~2개 문제만 더 맞히면 한의대에 진학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과의 경우 삼수를 포함해 수능을 다시 보는 친구들이 40% 정도는 됐다”고 덧붙였다.
이 강사는 사회적 상층 계층이 정시 확대를 희망하는 이유로 ‘배제 전략’을 들었다. 사회적 상층 계층이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주어진 제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강사는 “유독 학종이 계층 간 형평성 차원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되는 이유는 정시전형 확대로의 변화를 추동하는 데 사회적 상층 계층의 배제 전략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강남지역은 내신 경쟁이 치열한 만큼 타 지역 학생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학생부종합전형은 금수저 전형’이라는 일종의 프레임에는 다분히 사회적 상층 계층의 배제 전략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2022학년도 서울대 합격생 분석 결과,
자사고·특목고 출신 증가
지난 3월 발표된 ‘2022학년도 서울대 최종 등록 결과’에서도 올 신입생 3443명 중 재수생을 비롯한 N수생은 757명(21.7%)으로 전년 619명보다 138명(3.3%p)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합격생의 학교 유형은 일반고 출신이 1674명에서 1666명으로 소폭 감소한 반면, 자사고는 전년 521명에서 572명으로 51명이 늘었다. 외국어, 과학, 국제, 예·체고 등 특목고 출신은 642명에서 678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실제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경희 의원이 제공한 ‘2022학년도 서울대 출신 고교별 합격자수’ 자료에서 상위 20위권에 이름을 올린 고교를 유형별로 보면 특목고 5개교, 자사고 7개교, 영재학교 8개교 등이었다.
일반고 중에서는 상문고, 경기고, 단대부고, 낙생고, 화성고, 한일고, 서일고, 진선여고, 세마고, 숙명여고, 영동고, 분당중앙고 등 12개교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 가운데 절반인 6개교가 강남구와 서초구에 위치하고 있다.
수능, 문제 해결력·창의성 기르지 못해
이 같은 현상에 고등교육 전문가들은 정시 확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과 인문사회적 소양을 종합적으로 갖춘 인재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수능 위주의 대입제도 확대는 시대 역행이라는 지적도 따르고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대입제도, 신분제도인가? 교육제도인가?’를 통해 공정성과 교육적 타당성, 대학의 자율성을 대입제도의 핵심으로 꼽았다.
또 “외형적 객관성과 기술적 공정성만을 추구하면, 누구나 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능이 가장 공정한 시험일 수 있지만 표준화된 시험인 수능은 고액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고소득층 자녀, 문제풀이 학습을 잘하는 학교, 수능 시험에 특화된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유리하다”며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생의 가정 배경이 영향을 미치는 제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이어 “공정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대입제도의 교육적 타당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대입제도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과 성장에 미칠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능은 미래 사회 전망에 따른 문제 해결력과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최근 교내 강연에서 “입시 공정성 문제 때문에 정시 확대를 하고 있으나, 정시모집은 생명이 끝났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5지선다로 어떻게 창의인재를 선발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우 총장은 또한 “이미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학종 중심으로 편성됐다. 학종의 신뢰성과 공정성, 고도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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