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개교 목표…미네르바 설계 코슬린 교수에 컨설팅 등 준비 박차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개국에서 1학기씩 학습
‘무(無) 전공’ 체제…일정 수 이상 전공 과목 이수 시 학위 취득
캠퍼스 없이 온라인만으로 강의를 듣고, 세계 7개국에서 학습하는 미네르바 대학(Minerva School) 등을 중심으로 세계 고등교육에 변화가 일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급변하는 사회에 따라 대학 역시 전통적 방식의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태재디지털대학교(태재대학)가 지난 1월 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로부터 법인설립 허가안과 대학설립 계획안을 승인받으면서,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교육 프로그램, 학생 선발 계획 등을 준비하고 있다. 태재대학은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해 설립하는 사이버대학으로 ‘한국형 미네르바 대학’을 표방한다. 염재호 태재대학 설립준비위원장을 만나 태재대학의 설립 계기, 추진 현황 등과 국내 고등교육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 대담 | 최창식 편집국장 • 정리 | 황혜원 기자
- 태재대학의 설립 계기와 비전 등을 소개한다면.
“격변하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아 미국에서는 미네르바 대학, 싱귤래리티 대학 등 새롭고 실험적인 대학이 나오고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다. 태재대학은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대학이 나올 수 없을까? 또 대형 강의실에서 이뤄지는 전통적 방식의 대학 강의가 현재 시대에 부합하는 걸까?’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특히 세계적으로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반도 역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태재대학은 이런 국제 정세 위기 등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성과 조화의 가치를 갖춘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고자 한다. 태재대학의 이름도 ‘泰’(클 태)자와 ‘齋’(집 재)의 의미로 ‘Great Harmony’를 추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계를 이끌 리더가 되기 위해선 먼저 서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 이에 태재대학은 학생이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4개국에서 1학기씩 머무르며 문화를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 내년도 개교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지난해 1월부터 1년여간 대학 설립을 위한 재단을 만들고, 법인설립 허가와 대학 설립 계획안 승인 등의 절차를 밟아 왔다. 이제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교육 프로그램부터 신입생 선발 등 다방면에 걸쳐 준비하고 있다.
현재 10여개의 TF팀을 구성해 교과 과정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미네르바 대학의 설계를 담당했던 하버드대 인문대학장을 역임한 인지심리학자 코슬린(Stephen Kosslyn) 교수로부터 컨설팅을 받는 등 미네르바 대학보다 업그레이드 된 혁신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미네르바 대학의 경우, 캠퍼스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한 도시에서 머무는 일정 기간에만 동기들과 연결되다 보니 소속감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를 위해 SK이프랜드와 함께 메타버스 캠퍼스를 구축하고 있다. 가상캠퍼스에 강의실과 도서관, 강당, 동아리방, 교수연구실, 행정실, 총장실, 각종 센터 등까지 모두 구축해 학생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우주정거장 콘셉트의 또 다른 캠퍼스를 구축해 지구를 내려다보며 환경 이슈 등 세계적인 이슈를 풀 수 있는 토론,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학생 선발 계획과 인재상이 궁금한데.
“선발 인원은 국내 학생 100명과 외국 학생 100명으로 계획하고 있다. 다만 미네르바 대학도 개교 첫해엔 50여명의 학생만 선발했던 점을 감안해 태재대학의 이상에 걸맞는 인재들을 발굴해야 할 것 같다.
서류전형으로 학생종합부 위주로 인성과 학업능력을 평가하고, 이후 2~3차례에 걸친 심층면접을 통해 학생들의 자질과 도전정신, 비전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입시는 성적을 통해 줄을 세워 뽑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태재대학은 수능을 통해 성적과 순위를 매기는 방식의 학생 선발은 실시하지 않는다. 학업능력에 더해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고 싶다’는 확실한 도전의식을 갖춘 학생을 찾으려 한다.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닌 문제 해결형 인재 양성을 위한 혹독한 학습 트레이닝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할 계획이다.
이제는 아시아를 알아야 세계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 미국과 유럽이 세계 문명을 주도했다면, 21세기는 동북아 중심으로 문명사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 한·중·일의 인구가 유럽과 미국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다. GDP 역시 2030년에는 한·중·일 중심의 아시아가 미국과 유럽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북아와 세계의 미래를 위해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학생을 골고루 선발해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상위 1%의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
- 어떤 교육을 제공할 계획인가. 미네르바 대학과 어떤 차별점을 가질 수 있나.
“전 과목을 온라인 토론 방식으로 운영한다. 우선 1학년 과정은 교양과목 위주의 수업으로 설계하고 있다. 교양과목은 미네르바 대학을 위해 코슬린 교수가 설계한 인지중심의 교과목인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커뮤니케이션, 상호관계 과목에 글로벌 이해와 공감능력 등의 비인지 교과목을 추가해 글로벌 리더십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또한 매주 4~5개의 과목을 듣는데, 학생들은 사전에 책, 논문, 비디오 자료들을 통해 학습하고 관련 에세이를 제출해야 한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에세이에 반 페이지 이상의 피드백을 줘야 한다. 강의는 문제중심형 토론형 세미나 방식으로 진행된다. 반복적인 토론학습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키워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2학년 1학기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떠나기 전, 언어를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훈련하는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만큼 학생들은 영어와 자신의 모국어는 기본으로 하고,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외국 학생은 한국어 포함) 중 최소 2개의 외국어와 컴퓨터 언어를 습득해야 한다. 이후 2학년 2학기부터 4학년 1학기까지 총 4개 학기를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지내며 현장학습 및 도시 문제해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태재대학은 기본적으로 ‘무(無) 전공’ 체제로 운영된다. 커리큘럼은 교양과목 10개와 ‘인문사회 융합’, ‘비즈니스 이노베이션’, ‘자연과학’,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사이언스’ 등 4개 전공영역에 따른 세부과목 그리고 각국에서 현장학습을 하며 수행하는 캡스톤 디자인 프로젝트 과목을 포함해 20여개 정도다.
1개 과목당 4학점을 부여하며, 졸업 시 최소 120학점이 필요하다. 학생의 희망에 따라 교과목을 선택해 전공을 구성할 수 있다. 각 전공의 일정 수 이상의 교과를 이수하면 해당 전공 학위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교과목 조합을 통해 복수전공도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기숙사 RC 프로그램을 통한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국가별 필독서 읽기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21세기 동아시아 주요 국가의 역사와 사회시스템을 숙지시키고자 한다.
또한 학생 성공을 위해 학생 개개인을 교과과정뿐 아니라 비교과과정과 리더십, 경력개발까지 관리할 수 있는 ‘LXP(Learning Experience Platform)’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학생들의 고교 시절 학습 경력, 경험은 물론 희망 진로와 이를 위한 활동 등에 대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개개인의 학생에게 맞춰진(customized)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 태재대학이 국내 대학사회에 던지고 싶은 화두가 있을까.
“학부에서 전공이 중요했던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고 본다. 대학 진학률이 낮았던 시절엔 전공만 배워 사회에 진출하여 얼마든지 일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 진학률이 80% 수준이다. 이제 세분화·심화된 전공은 대학원에 맡기고, 대학 학부에서는 문제 해결능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둘 때라고 본다. 또한 최근 종합대학들이 연구 중심으로 평가를 받으면서 학부교육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미국 대학의 학부는 교양 중심의 리버럴 아트 칼리지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학부교육 체제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칠판을 놓고 학생을 가르치는 오프라인 중심의 시스템에선 같은 과목이 여러 개가 개설돼야 하지만, 최근 온라인 교육 환경에선 우수한 강의 하나만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다.
호주는 최근 1차 산업에 이어 교육산업이 국가 GDP 기여도 2위를 차지할 만큼 세계 고등교육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물리적인 교실이 사라지고 모둠 형식의 문제해결형 프로젝트 수업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교육 대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 등으로 대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재정 악화로 대학의 경쟁력도 감소하고 있는데, 대학 재정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려대를 예로 들면 학생 1인당 연간 등록금이 문과계열 800만원, 이과계열 1천만원 정도로 책정돼 있지만, 교육비 환원율은 학생 1인당 2200만원 수준이다. 정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이미 교육비와 비교해 등록금 수입이 절반이 안 되는 형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대학은 사립대학이 주를 이루고 등록금은 수익자부담원칙으로 운영되지만 전 세계적으로 대학과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전적으로 국가 재정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국내 사립대학은 국가 재정이 어려웠던 근대화 과정에서 인재 양성을 위해 독지가들의 사비로 설립된 경우가 많다. 정부가 국공립대학을 통해 수행해야 하는 ‘인재 양성’ 역할을 사립대학과 학생들이 대신한 셈이다.
국가 발전으로 재정이 훨씬 확대됐음에도 대학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다. 현재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은 OECD 평균보다 30% 가까이 적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이 1960년대 6%, 1980년대 20%를 넘어 이제는 대부분 국민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음에도 고등교육 지원을 엘리트교육에 대한 지원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립대학이 주를 이루는 일본의 경우 문부과학성이 400여개 사립대학에 아무런 조건 없이 학생 1인당 경상비 15만엔을 지원하고 있다. 인력 양성이라는 국가적 책임을 사립대학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따른 사업비로만 지원하고 있어 시설비 등 용역비적 성격을 띤 제한된 항목으로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제를 풀어 기타 경상비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기업에 과도한 세금을 부여하기 보다 대학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미국의 카네기, 록펠러 등도 과도한 소득세를 내는 대신 대학에 기부함으로써 미래 인재 양성에 투자한 대표 사례다. 기업이 대학에 기부할 때 많은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기부금은 대학 R&D 예산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해결책도 있을 것이다.”
- 지방대 위기 해결을 위해 정원외 전형 폐지, 정원 감축 등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어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나.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이른바 SKY의 정원을 30%씩 줄일 필요가 있다. 대신 이들 대학에는 더 많은 기부와 세제 혜택을 제공해 우수한 교육여건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방대학의 정원 미달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SKY의 대학원 정원 미달로 이어진다.
이전엔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면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는 교수직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방대학이 무너져 교수 충원이 어려워지면 국내 대학원 박사 출신들은 진로에 위기를 맞는다. 현재도 SKY의 대학원 정원은 80% 정도만 채워지고 있다. 지방대학의 위기로 우리나라 고등교육 전체와 지식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 더 이상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대학은 최소한의 초기 투자 비용은 찾을 수 있도록 퇴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해외의 경우 폐교가 된 대학을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해 평생교육학습센터로 탈바꿈하는 등의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역대학들을 살리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기업들도 국가에만 기대지 말고 지역대학을 위해 재정지원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교육부는 이러한 전체적인 설계를 맡아줘야 한다.”
- 곧 제20대 대선이 치러진다.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고등교육 정책이 있다면.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부임하고 가장 먼저 내세운 정책 공약이 ‘일본을 과학기술 입국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정부 4조5천억엔, 민간이 5조5천억엔 총 10조엔의 기금을 마련하고, 매년 이에 대한 이자 3천억엔을 30년간 대학의 연구기금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이전 세대들의 노력으로 일본이 과학 분야에서 많은 노벨상 등을 수상하는 성과를 냈지만, 더 많은 투자와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급변하는 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우리도 이처럼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교육 정책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매출이 265조원으로 국내 GDP 1910조원의 약 14%를 차지한다고 한다. 결국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인력, 즉 글로벌한 리더를 양성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선 교육, 특히 고등교육이 중요하다. 앞으로 미래 세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고등교육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교육 정책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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