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 내다보고 학생 교육 밑그림 그려야”
“먼 미래 내다보고 학생 교육 밑그림 그려야”
  • 이승환 기자
  • 승인 2020.02.26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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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호 인천여자고등학교 교사

문화재는 곧 과학교과서...과학 교과에 국내 문화재 접목 수업 눈길
수능 위주 정시 확대 유감...부모에 의존하는 진로 ・ 진학 설정 안타까워

[대학저널 이승환 기자] “애초 교사가 꿈이었다면 사범대에 진학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화학이라는 과목에 매력을 느껴 진학해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학업을 이어가다가 군 복무 후 정말 우연한 기회에 교단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인천여자고등학교에서 화학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노덕호 교사. 30여 년 전 교단에 처음 섰을 때 그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화학을 학생들에게 정말 잘 가르쳐보자.’ 그리고 제자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해 화학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학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보자는 것이었다.

 

화학에 흥미를 갖는 학생,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면 그 목표가 실현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학생 대부분은 의대나 치대 진학을 택해 내심 실망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교사로서 최선을 다했고 교직 생활 중 처음으로 보람을 느끼게 해 준 제자를 만났다.
“인천 학익고 근무 시절 제자입니다. 서울대 화학과에 진학한 뒤 학업을 이어 나가 박사학위까지 받았고 지난 해 3월에는 공주대 화학과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교수로 임용된 소식을 듣고 제자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대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친구가 화학이라는 학문을 택하고 그 길을 계속 걸어나갔다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노덕호 교사의 수업관(觀)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생각할 수 있다.’ 이를 교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그는 조금은 특별한 방식의 수업을 진행한다. 특히 경복궁이나 경주 불국사・안압지, 수원 화성 등 우리 문화재를 활용한 과학수업은 눈길을 끈다.
“국사과목, 특히 우리 역사에 관해 학생들 대부분이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우리 문화재를 떠올렸습니다. 문화재를 통해 역사를 배우는 건 기본, 각각의 문화재가 품은 수학적・과학적 원리를 학생들과 함께 찾아내 보는 것이죠.”

불국사 다보탑의 아름다움이 기단과 상층부의 아름다운 비율 때문이라면 그 비율을 찾는 게 바로 수학 공부다. 탑은 어떤 돌로 만들어졌고 왜 그 돌을 썼는지 찾아보는 것은 지구과학 수업의 연장이다. 경복궁 사정전 앞 해시계에서는 시계의 원리를 발견하고 조선의 임금이 생활하던 ‘강녕전’에서는 보폭을 통해 왕이 기거한 방의 크기를 측정해 보기도 한다. 노 교사의 수업 안에서는 우리 문화재 자체가 지구과학과 수학, 물리, 화학 등을 총 망라한 과학교과서가 되는 셈이다.

노 교사는 문화재를 접목한 과학 수업 준비를 위해 서울 뿐 아니라 경주, 수원 등 수업을 진행할 문화재가 있는 곳을 미리 찾아 수백 장의 사진을 직접 촬영해 PPT 수업을 준비한다. 현장의 사진과 노 교사의 과학적 원리를 가미한 교실 안에서의 수업은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고 이어지는 실습을 겸한 현장 답사는 수업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지난 15년간 이러한 형태로 수업한 내용을 정리한 그는 △경복궁의 과학적 탐사 △우리 지도 속의 과학 △수원 화성의 과학적・수학적 탐구 △경주의 역사적・과학적 탐구 등 현장학습 자료도 개발했다.

“틀에 박힌 수업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과학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5년 전 담임을 맡은 영재학급에서는 이러한 수업 뿐 아니라 과학 과제연구와 화학실험 등 차별화된 수업을 준비해 진행했는데 1년이 지난 후 학부모님과 학생들이 ‘1년만 더 담임을 맡아주시면 안되겠냐’는 내용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주셨습니다. 그럴 때 교사로서 보람을 얻습니다.”
시련도 있었다. 노 교사에게 2018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다. 암 진단을 받았고 결국 휴직을 택했다.

“수술을 해도 완치될 확률이 40% 밖에 안됐습니다. 혹 병이 낫는다 해도 돌아올 수는 없겠다, 명예퇴직 해야겠다 생각했죠. 그렇게 입원 전 마지막 수업을 준비할 때 1학년 학생들이 손수 적은 편지를 담은 판넬을 전해줬습니다. 쾌유를 기원하는, 꼭 다시 교실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학생들의 정성이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며 약속했습니다. 꼭 병을 이기고 다시 돌아와 너희들이 졸업하는 모습을 보겠다고 말이죠.”
제자들의 응원편지가 정말 힘이 됐을까. 노 교사는 1년 만인 2019년 초 암을 이기고 복직했다. 그에게 편지를 전해준 학생들은 이제 졸업을 앞둔 3학년이다.
지난해 2학기부터 1학년 학생들의 ‘진로와 직업’ 수업도 담당하고 있는 노 교사는 많은 학생이 어떤 공부를 해야 하고 어떻게 준비해 대학을 가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상위권 학생조차도 진로에 관한 정립이 되지 않은 채 오로지 부모의 결정에만 의존하는 것은 분명 학교와 학부모 모두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에 더해 그는 정시 비중 확대를 축으로 한 입시제도 개편 또한 시대에 역행하는 방안이라고 했다.

“암기력이 우수한 학생, 해결력이 좋은 학생, 남들과 다른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친구 등 학생이 가진 우수한 능력은 개개인의 생김새, 성격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수학능력시험은 문제를 많이 푼 기계적인 능력을 평가하는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이름 그대로 대학에서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계산으로 입시제도가 쉽게 바뀐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대학 합격을 위해 문제풀이에 ‘올인’하는 입시제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그의 견해는 수업에 관한 그의 철학이라 할 ‘콩나물시루론(論)’과 결을 같이 한다. 콩나물시루에 부은 물은 금세 아래로 빠져 사라지지만 그 물을 자양분으로 콩이 싹을 틔우고 키를 키운다. 교육도 마찬가지.

“‘내가 이렇게 했는데 왜 아이들이 알아주지 않지’라고 실망했다가도 1~2년 지나고 나면 학생들의 지적인 키가 쑥 성장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콩나물처럼요. 교육도 그렇습니다. 당장 지금이 아닌 10~20년 후를 내다봐야 합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말처럼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학생 교육의 밑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정년을 4년 앞둔 노 교사는 인천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 지도도 담당하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조금 늦게 입학한 젊은 학생부터 60~70대 어르신들을 교실에서 만난다.
“비록 내용은 잘 못 알아듣더라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에 열중하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처음 교단에 섰던 1980년대 교실을 떠올립니다. 초임 교사였던 당시 제 마음가짐을 되새기며 남은 교사생활도 ‘교사답게’ 학생들을 지도하려고 합니다. 과학 영재들을 지원하는 ‘한국과학기술지원단(KSS)’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우리 인재들이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며 과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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