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1세대’ 그리고 중 3 아들
‘수능 1세대’ 그리고 중 3 아들
  • 이승환 기자
  • 승인 2019.10.30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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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편집국 이승환 기자

[대학저널 이승환 기자] 취재 현장에서 만난 고등학교 교장이나 교사가 가끔 나이를 묻곤 한다. 생년이나 학번을 말하긴 어색하고…그럴듯한 답변을 찾다 꺼낸 게 ‘수능 1세대입니다’다.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아온 교사들은 대번 나이를 짐작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3년 처음 시행됐다. 돌이켜보면 황망했다. 4지선다는 5지선다로 바뀌어 그만큼 정답을 찍을(?) 확률이 낮아졌다. 영어도 아닌 국어에 듣기평가가, 수학에는 주관식이 등장했다. 한 문항 푸는데 읽고 이해할 지문은 어찌나 긴지 한때 속독학원이 문전성시였다.

무엇보다 한 해 대입 시험을 한여름(8월), 초겨울(11월) 두 번이나 치른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엉덩이에 땀 흘려가며 시험을 치른 경험은 오직 ‘수능 1세대’만의 것이다. 두 번이니 그만큼 좋은 성적을 택할 기회가 늘어났을까? 여름수능에 실패한 친구들은 머리띠 매고 겨울시험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불수능’이었다.

부모의 능력과 인맥이 자녀 입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불신이 급속히 퍼지고 차라리 정시가 더 공정하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대통령은 ‘정시 비중 상향’을 언급하고 교육부는 정시 확대를 기정사실화 했다. 다음 달이면 대입에서의 정시 비율을 어느 정도 높일지, 수시의 경우 공정성과 투명성을 어느 정도나 담보할지 방안이 나온다.

당연 교육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정시 확대를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편은 연일 성명을 발표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열중하고 정치권도 이에 불을 지핀다.

정시와 수시의 불균형 문제가 눈에 띌 정도이고 수시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기에 정시 비중 상향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분명 맞다. 다만 과정이 졸속이다. 일관성도 없다. 

불과 1년 전 결정된 ‘정시 비율 30% 권고’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눈 녹듯 사라졌다. ‘정시 비중 상향’ 언급 뒤 불과 한 달 만에 바뀔 교육정책은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고교 교육의 근간을 바꾸는 중차대한 일임에도 너무 서두르고 있다. 만약, 법무부장관 자녀의 ‘학종’ 특혜 의혹이 없었다면…만약, 내년 4월에 ‘총선’이 없었더라도 이렇게 서둘렀을까?

결국 피해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시행 전 7년 가까이 준비해 야심차게 내놓은 새로운 대학입학시험이었다.

하지만 첫 해 2회 시험은 이듬해 곧바로 1회로 줄었고 문제점이 계속 불거지며 개선에 개선을 거쳤다. 그런 와중에도 책상에 앉아 1~2점 올리려 노력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인생이 바뀔지 모르는 수능 오지선다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가 수능시험에만 매달려 황폐화된다며 수시가 도입됐다. 학생들은 그때도 그 한 가운에 있었다. 생소하고 복잡하기만 한 전형이라는 이름에 자신을 포장해야 했다. ‘시험만 잘 봐서는 대학에 못 가는 시대’에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을 뿐 변한 건 없었다.

정시가 늘어도, 수시가 줄어도 학생들은 여전히 성적에 쫓길 것이다. 그게 우리 사회에서 고 3이라면 겪어야 할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기성세대들은 미안하고 또 미안해야 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공평한 대입제도란 존재하기 어렵다. 때문에 오랜 시간 공들여 연구해 사회 구성원 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교육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등 돌린 민심을 회복하려, 다분히 정치적인 계산으로 손바닥 뒤집듯 바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민심이 정시라 해서 당론을 바꾸고, 우리 의원 자녀들은 정시로 대학에 들어갔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면피하려는 야당 또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학생들을 조금이나마 귀한 사회 구성원으로 생각한다면,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아는 이들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정시가 확대된 뒤) 수능이 몹시 쉽거나, 혹 굉장히 어렵게 나오면 (정책은) 또 바뀔 거야. 이제껏 그래왔으니까.”

자사고, 외고의 일반고 전환 발표로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하다는 대학 동기가 초월한 듯 수화기 너머로 내뱉은 푸념이다. ‘수능 1세대’인 그의 아들은 올해 중 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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