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뛰는 무언가를 만날 때…아이들은 비로소 꽃으로 피어납니다”
“가슴이 뛰는 무언가를 만날 때…아이들은 비로소 꽃으로 피어납니다”
  • 이승환 기자
  • 승인 2019.09.24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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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두 숭문고등학교 교사

 

[대학저널 이승환 기자] 허병두 교사가 33년째 국어교사로 몸담고 있는 서울 숭문고등학교는 그의 모교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고교 시절 항공공학자를 꿈꾸던 이과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사가 된 것은 1980년대 초 격변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
“분노와 연민. 두 단어가 저를 이 자리로 이끌었다고 할까요. 마음을 바꿔 다시 대입을 준비하던 그때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7.30 조치’로 대학별 본고사가 폐지됐죠.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모습을 봤고 한편으론 노력해 오던 진학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던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분노 때문에 이 나라에선 못살겠다며 유학을 결심했고 유학가기 쉽다는 이야기만 듣고 서강대를 택했죠.”

그런데 국문학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유학의 꿈을 접고 우연히 참여한 야학 활동은 삶에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10대 어린 여공부터 환갑이 넘은 택시기사까지…배움에 목마른 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누군가의 앎과 성장에 보탬 되는 일의 의미를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가르침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는 교직의 길에 들어섰다.

가르침의 소중함 체험할 교직의 길로

“남을 도울 수 있는 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그때 제대로 알았습니다. 지금도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제 교육 철학이나 다름없습니다. 1987년 국어교사로 처음 교단에 섰고 2년 후 숭문고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학교 도서관과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그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책을 즐겨 읽었고 ‘수학의 정석’ 보단 수학사나 수학자의 전기가 눈에 먼저 들어올 정도로 책을 가까이했던 그는 학교 도서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부임 후 창고처럼 방치돼 있던 도서관 문을 다시 열었다. 도서반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며 책과 씨름했다. 학교 도서관이 차츰 본 모습을 갖췄다.

“학교 도서관이 없었다면 교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들 정도로 제게 언제나 영감과 에너지를 줬습니다. 보람도 컸고요. 줄곧 어떻게 학교 도서관을 활성화시킬까 고민했고 같은 고민을 가진 여러 교사들과 마음을 모아 결성한 것이 바로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입니다.”

책과 관련한 다양한 시도로 주목...책따세

1998년 결성된 ‘책따세’는 2007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출범, 현재에 이르고 있다. 후원회원만 180여명. 그는 올 2월까지 이사장을 맡으며 후원금을 내고 봉사해 왔다. 책따세는 학교 도서관 활성화라는 결성 당시 목표를 바탕으로 책과 관련한 새롭고 다양한 시도로 주목 받았다. 청소년을 위한 ‘푸른도서관’ 설립 추진, ‘저작권 기부운동’, ‘책쓰기 교육’, ‘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독서 봉사’ 등이 그것이다.

“‘누구나 책을 많이 읽도록 해보자’는 소박한 바람으로 책을 매개로 한 활동을 끊임없이 시도했습니다. 막장에서 탄을 캔다는 생각이었는데 많은 이의 도움으로 금맥도 발견했죠. 우리 학교에서 시작한 ‘책쓰기 교육’은 ‘책따세’로 외연을 넓혔습니다. ‘따봉’도 ‘책따세’의 저작권기부운동의 녹음봉사 활동에서 동기를 찾았습니다.”

따뜻한 봉사활동의 줄임말인 ‘따봉’은 그가 2010년부터 숭문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봉사활동이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사전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스스로 활동분야를 택해 학교 안팎에서 봉사에 나선다. 유니세프, 서울 한강사업본부, 서강대 어학원 등 시민단체와 대학, 기관 등이 따봉 운영에 손을 보탠다. 대부분 환경정화(청소)에 머물던 형식적이고 수동적인 봉사에서 벗어나 학생이 진정으로 원하는 활동을 능동적으로 찾고 이를 통해 진로 설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따봉의 특별함이다.

학생의 가슴이 뛰는 봉사활동...'따봉'

“되돌아보면 우린 학생들에게 진학을 목표로 진로를 정하라 채근하고 진로를 위해 봉사를 억지로 강요하진 않았을까요. 따봉은 학생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분야를 택해 봉사를 하고 흥미를 느끼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러한 활동은 진로 설정에 도움이 됩니다. 가장 가슴이 뛰는 봉사활동이 곧 학생이 꿈꾸는 가장 솔직한 진로입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진로의 성취를 위해 진학 동력을 학생 스스로 찾게 되죠. 선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대입이라는 목표 하나로 학생들은 ‘가슴이 뛰는’ 진로를 찾지 못하고 결국 제때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시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현재의 교육과정 또한 초․중․고 모두 성취 기준을 너무 높여놓은 탓에 선행학습만 늘고, 재능이 떨어지는 학생은 경쟁에서 도태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

“봄에 피는 꽃, 가을에 피는 꽃 다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입시라는 틈바구니 안에서 가을에 필 꽃에게 왜 봄에 피지 않느냐고 채찍질합니다. 과연 그 꽃이 견딜 수 있을까요? 아이들의 ‘가슴’을 울렁이고 두근거리게 만들 무언가를 학생들이 찾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노하고 좌절하며 때론 냉소적이었다가 야학을 통해 가르침의 의미를 깨달은 경험이 제게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허 교사는 교사나 학부모가 먼저 솔선해 학습이건 독서건 이것이 얼마나 재밌는지 학생들에게 몸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호기심과 궁금증을 이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지론이다.

우리 아이들...스스로 잘 해냅니다

“교사가 책에 머리를 묻고 복도를 지나는 모습을 보면 분명 학생 두세 명은 ‘무슨 책을 저리 열심히 읽지?’ 호기심을 갖습니다. 무슨 책? 어떤 내용? 묻기도 하죠. 심지어 책을 숨기기라도 하면 궁금증은 더 커지죠. 그렇게 시작합니다. 몇몇은 그 책을 찾아 꼭 읽습니다.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책을 펴고 공부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스스로 잘 해내는 게 우리 아이들입니다. 필독도서를 억지로 정해 읽기를 강요하고 논술 연습한다고 글을 쓰도록 시키면 시험은 잘 볼지 몰라도 거기서 한계에 부닥칩니다. 시험을 위한 글쓰기일 뿐 창의적 글쓰기는 절대 될 수 없습니다.”

학교 도서관도 마찬가지. 수만 권의 장서, 값진 책들을 꽂아 놓는 것으로 학교 도서관이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줄곧 학교도서관은 ‘학교의 심장’, ‘우주의 영원한 자궁’이라며 중요성을 강조해왔지만 도서관 역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탈바꿈이 필요하다.

“숭문고 교정 내 메타쉐콰이어길 곳곳에 학생들이 필사한 이육사의 시를 나무에 걸어놓았습니다. 이육사의 시와 함께하는 메타쉐콰이어길이 된 것입니다. 학교도서관의 확장입니다. 나아가 메타쉐콰이어가 궁금한 학생이 모바일로 나무를 스캔하면 학교도서관에 비치된 식물도감의 내용을 모바일로 바로 찾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합니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도서관의 진화입니다. 사물인터넷이 이미 일반화되어 있는데 학교도서관은 여전히 종이책, 오프라인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이들을 중심으로 만드는 ‘중심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도서관은 '중심의 중심이 되어야'

교사로서의 경력이 10년, 20년 늘어갈수록 그는 행여 자신이 무심코 던진 말이 학생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진 않을까 고민하며 오늘도 학생들을 만난다.

한편으론 코흘리개 같던 제자들이 자신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힘이 되어줌을 체감할 때는 가르치는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보람을 느낀다.

“저는 그저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자리에만 있다 여겼는데 어느 순간 제자들 없이 성장할 수 없는 위치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제자 중에는 책따세의 살림을 돕는 세무사가 있고 동고동락한 도서반 제자들도 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젠 오히려 그들이 아는 것이 더 많아요. 제자가 와서 모르는 걸 알려준다면 그가 스승이고 저는 제자가 되는 셈이죠. 교직이라는 것이 이런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때론 정적이고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이 있어 슬럼프도 겪었지만, 그는 33년째 교사로 생활하며 만나온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 모습에서 교직 내내 ‘워너비(Wanna be)’로 품어온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 뜻깊었다고 전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교직에 몸담은 동안 우리 학생들이 생기 있고 아름다운 생화로 활짝 필 수 있도록, 시험점수로 매겨진 줄에 선 조화(造花)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볼 생각입니다. 요즘 출근길에 문해학교에 등교하는 어르신들이 더욱 눈에 밟힙니다. 학교를 떠나더라도 누군가의 앎에 도움이 될 일을 찾아서 가르치고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일을 계속 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숭문고 ‘따봉’ 소개 리플릿


▣ 허병두 교사는

서강대 국문과 졸업 후 1987년 처음 교단에 섰으며 현재는 모교인 숭문고에서 국어교사로 있다.
비영리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이사장,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정책기획 소위원장, 교육과학기술부 학교도서관진흥위원, 서울시교육청 학생봉사학습활성화추진단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독서와 도서관교육, 책쓰기교육, 저작권 기부운동, NIE, 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등에 관한 다양한 글을 일간지와 잡지에 기고하고 있으며, EBS ‘책과의 만남’ 진행자, KBS ‘TV, 책을 말하다’ 자문위원, MBC ‘느낌표!’ 선정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대통령 감사장, 독서문화상 국무총리상, 서울시교육감 표창을 받았고 전국 신지식인(2000)과 서울시교육연수원 강의평가 3년 연속(2007~2009) 최우수강사로 선정됐다.
저서로 ‘청소년을 위한 문학에세이’, ‘서툰 청춘을 위한 다독다독(多讀多讀)’, ‘허병두의 즐거운 글쓰기 교실 1~3’, ‘책따세와 함께하는 책쓰기교육’, ‘정보화시대의 학교도서관 만들기’(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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